“세상 참 좋아졌어요, 내가 현직에 있을 때만해도 기사를 쓰려면 전화기 확보가 가장 중요했는데 이제는 언제 어느 때나 전화를 할 수 있고 언제 어느 때나 뉴스를 볼 수 있지요.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前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 이수근 위원장의 뒤를 이어 배정된 백화종 위원장이 기자를 보고 가장 먼저 건낸 말이었다. 신임 위원장으로 취임한지 100일 남짓, 백 위원장은 잠시 과거를 회상하듯 기자에게 40년 전의 기자일이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백 위원장은 국민일보 창간 멤버로 시작,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부사장까지 역임하면서 근 40년간을 신문사에서 보낸 베테랑 언론인이다. 전임 위원장인 이수근 위원장은 “조직이 사후관리체제로 바뀌는 중대한 시점에서 필요한 대외 섭외력과 설득력을 갖춘 인재”라며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게임포커스는 5월 넷째주 마지막 등급심위를 하루 앞둔 지난24일, 게임물등급위원회 백화종 위원장을 만나 향후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운영 방안을 놓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신경 쓴 일은 ‘조직정비’
백 위원장은 취임이후 현재까지 조직정비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게임위 업무의 일부 이양과 조직개편, 올해 말로 끝나는 국고지원 문제 등 쌓여있는 난제들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직의 책임자로서 조직의 생존권을 우선시 하겠다는 백 위원장의 의지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백 위원장은 게임위 본연의 업무도 강조했다. 백 위원장은 “조직의 생존권도 중요하지만 본연의 업무인 등급 심의 역시 중요하다. 민간 이양을 앞두고 있는 만큼 향후 민간 이양 업체가 정해진다면 모든 것을 원활하게 이양할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이전문제와 관련해서는 백 위원장은 “부산 이전 문제도 현안 중 하나지만 솔직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이건 좀 앞서가는 생각이지만 부산 이전이 완료되면 아마 민원 문제로 찾아오시는데 더 불편하지 않겠느냐”며 짧게 웃었다.
업계의 의견 모두 달라 “최대한 의견을 들을 것”
취임이후 업계와의 상생을 강조해온 백 위원장은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PC방 협회),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한국어뮤즈먼트산업협회(아케이드 게임 협회) 및 게임 업계 등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백 위원장은 아케이드 협회와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게임위는 심의기관이다. 냉정하게 게임법의 기준에 의거 서비스 불가능한 이유가 있다면 딱 잘라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라며 “아케이드 업계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눠봤다. 일부에서는 심의 규제 완화와 심의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납득가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적법성 여부를 잠시 접어두고 그들에게는 적지 않은 돈으로 개발한 게임들이다. 심의 기간을 최소화해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내부에서도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게임위의 업무를 방해하는 악성 사업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불법 게임을 통과시켜 달라고 전문위원이나 내부 직원들에게 협박/고소 등 갖가지 일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업무 방해를 하는 이런 업자들에게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법적 조치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게임포커스에서 공개한 게임위 직원 폭행 영상(기사 바로가기)
3번째 언론인 출신 위원장, 게임은 “손이 느려서 힘들어”
백 위원장은 김기만, 이수근 전 위원장에 이어 3번째 언론인 출신 위원장이다. 백 위원장 스스로도 이와 같은 언론인 출신 인선이 놀랍다고 밝혔다.
게임위 위원장으로서 게임에 대한 이해도는 필수 불가결이다. 취임 이후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인 맥고니겔이 쓴 ‘누구나 게임을 한다’라는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접해본 게임은 바로 모바일 게임. "게임을 많이 즐겨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백 위원장은 “최근 틈틈이 모바일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답하며 “최근 앵그리버드를 즐기고 있다. 나이 먹은 사람이 별3개 받기가 쉽지 않더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백 위원장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디아블로3’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손이 느려서 ‘디아블로3’와 같은 액션게임을 직접 하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전문위원이 ‘디아블로3’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처음에 설명을 들었을 때는 알 수 없는 용어들로 가득해 이해하는데 상당히 애를 많이 먹었다”며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다.
언론인에서 위원장이 되기까지 “게임엔 별로 관심 없었다”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언론계에서 연관성이 전혀 없을 법한 게임업계 한 가운데에 서게 된 백 위원장은 신임 위원장 결정 이전까지도 게임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게임에 대한 관심은 각종 뉴스와 매체를 통해 들은 것이 전부라고 밝힌 그는 위원장이 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 중 하나로 게임에 대한 세상의 왜곡된 시선을 꼽았다.
백 위원장은 “최근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게임이 꼭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긍정 혹은 부정을 떠나, 게임은 더 이상 현대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여가 문화 중 하나로 정착했다.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면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며 게임위 역시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알리는데 일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임하자마자 맞닥뜨린 수많은 난제, 여느 위원장들보다 힘들게 출발선을 끊은 백 위원장에게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3년여의 시간 동안 가장 하고 일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 얘기지만 현재 게임의 심의 규정을 좀 완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문제가 이랬으니 지금도 그래야 된다는 생각을 탈피하고 싶어요. 물론 이런 내 생각에 우려의 목소리나 시선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좀 더 많은 사람과 많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준이나 일관성, 과거 게임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는 만큼 신중히 고민해봐야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내 임기 중이 아닌 다음 위원장에서 해결될 문제라 할지라도 분명 현재의 심의 규정은 어느 정도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완화만을 생각하면 그것도 문제겠죠. 훗날 게임 산업이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초석을 다지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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