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침몰' 히구치 신지, 그가 말하는 '나디아'와 '에반게리온'

일본 서브컬쳐 업계의 마당발, 'pifan 2013' 위해 방한

등록일 2013년07월30일 18시10분 트위터로 보내기


일본 영화, 서브컬쳐 업계의 마당발 히구치 신지(48세)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대됐기 때문으로 이번이 네번째 한국 방문이다.

 

히구치 신지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특수촬영(특촬) 등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일본 영화, 서브컬쳐 업계의 마당발이다. 인기 애니메이션 '나디아'의 감독(후반기 '섬'편 이후의 감독을 맡음)으로, 그리고 '일본침몰', '로렐라이', '노보우의 성' 등 인기 영화들의 감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1984년 '고질라'의 괴수 조형에 참가한 이래 특수촬영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특촬 관련 최고 권위자 중 하나로도 이름을 알렸다.

 

영화감독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안노 히데아키(에반게리온), 카미야마 켄지(공각기동대), 하라 케이이치(짱구는 못 말려, 컬러풀) 등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들과 친분이 깊어 그들의 작품에 콘티 등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안노 히데아키와 함께 작업한 에반게리온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신지)에 그의 이름을 채택했을 정도.

 

'기동전사 건담 유니콘'의 표지 그림을 그리는 등 출판 쪽 일도 왕성히 하고 있으며 스다 고이치의 걸작 게임 '킬러7'의 추천사를 쓰고 '철권 하이브리드'에 포함된 철권 애니메이션 영화 '철권 블러드벤젠스'의 콘티를 맡는 등 게임 쪽과도 연이 깊다. 히구치 감독 본인부터가 '삼국무쌍', '전국무쌍' 등 무쌍 시리즈의 열렬 팬이기도 하다.

 

히구치 신지 감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대되어 부천을 찾았다

 

게임포커스는 바쁜 심사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앞둔 히구치 신지 감독을 만나 한국 팬들이 궁금해하는 '에반게리온'과 '나디아'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나디아 제작비화, 젊어서 가능했던 모험
히구치 신지 감독에게 가장 먼저 '나디아' 후반부 감독을 맡은 사연을 들어 봤다.

 

그는 안노 히데아키가 떠넘긴 나디아 감독으로 고군분투한 경험에 대해 "한국 애니메이션 팬들이 정말 이런 이야기를 궁금해할지 모르겠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나디아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가 그 '섬'편 즈음해서 지쳐 버렸다. 딱 22화까지 만들고는 지쳐버린 거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나에게 뒷부분 감독을 맡을 것을 부탁했다.

 

사실 그의 스승 미야자키 하야오도 비슷하게 '미래소년 코난' 제작 중 도중에 지쳐서 딱 4화 분량만 다른 사람에게 감독을 맡긴 뒤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돌아와 감독을 맡은 적이 있다. 미래소년 코난은 전체 26화 중 딱 4화만 맡긴 거라 괜찮았지만, 아무튼 안노는 한 명의 감독이 계속 노력해 모든 걸 직접 맡는 건 22화가 한계라며 그래서 자신도 22화로 한계가 왔다는 거다.

 

나 말고는 대안이 없어 감독직을 수락하긴 했지만, 그 즈음해서 기존 작화팀도 다 사라져 버렸다. 그 때까지 같이 하던 작화팀이 22화까지 만들고 없어져 완전히 새로운 팀을 써야 하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팀, 다른 사람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팀은 절대 기존 팀만큼 양질의 그림을 뽑아낼 수 없었다. 안노가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걸 못참고 나에게 떠넘긴 측면도 있다. 도망친 거다. 도망쳐선 안 되는데...

 

감독을 나에게 맡기고 안노는 미래소년 코난처럼 마지막 부분만은 제대로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클라이막스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쉬는 동안 대타로 내가 투입됐다.

 

나에겐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그림의 질에서 전반부와 차이가 나는 인력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줘야 할 것인가?

 

뭘 어떻게 해도 작화 퀄리티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전까지, 22화까지는 진지한 이야기였고 작화가 이야기를 제대로 받쳐줘야 했다. 작화가 별로인데 내용이 진지하면 시청자들은 혼란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나에겐 그림은 이제까지의 나디아와 안 닮았지만 이야기는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제약이 걸린 셈이었다. 그 결과가 섬편 이후의 나디아다"

 

당시 20대였던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 히구치 감독은 NHK의 의뢰로 나디아 제작에 뛰어들었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전반부와 마지막 부분을, 히구치 감독이 중반부터 후반까지의 감독을 맡았다.

 


 

히구치 신지 감독은 당시 NHK와 함께 일하는 게 어땠는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나디아 제작과정에서 기본 각본은 NHK에서 준비해 보내줬다. 하지만 NHK가 보내주는 각본은 놀랄 만큼 재미가 없었다. 교육적인 내용이고 진지한 내용, 도덕적인 이야기만 보내오는 거다.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고 하질 않나.

 

사실 나디아의 당초 설정은 그저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그런 설정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안노나 내가 심술궂었던 면도 있고. 이왕 동물을 좋아하니 고기나 생선도 안 먹는다거나 하는 설정을 붙여 나디아를 제멋대로인 성격의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건 싫어하는 걸로 묘사해서 캐릭터를,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이렇게 고치다 보니 NHK가 준 각본을 못 쓰는 상황이 되어 갔다. NHK의 각본을 기본적으로는 써야 했으므로 재미가 없어서 계속 고치면서도 이야기의 전체 틀은 안 바꾸고 거기에 올라가는 알맹이만 NHK가 준비한 것과 다 반대로 올려 버렸다. 캐릭터의 성격도 바꾸고 내용도 보다 재미있게 바꿔서 제작했는데 그걸 NHK에서 매주 방송했으니...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작업을 '방송테러'라고 불렀다.

 

어차피 NHK에 말을 해도 안 통했겠지만 방송 직전에 완성된 애니메이션을 보내도 거부하거나 다시 만들라고 할 수도 없으니 NHK는 우리가 보낸 걸 그대로 방영할 수 밖에 없었다. 안노와 나는 '이러다 우리 체포되는 거 아닌가'하는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국내에는 오랫동안 '나디아 섬편은 한국에 하청을 줘서 퀄리티가 저하됐다'는 설이 회자되어 왔다. 히구치 감독에게 한국과의 협업 부분에 대해서도 물어 봤다.

 

"나디아는 작업의 반을 한국에서 했는데 제작 시 NHK에서 내건 조건이었다. 한국과 협업하는 게 나디아 시리즈 제작의 전제조건이라 그렇게 진행을 했는데 원화를 그린 시점에서 작화감독이 체크를 하고 그 뒤 동화 등을 다 한국에서 그려서 색을 넣고 배경 만들고 촬영, 현상까지 한국에서 진행했다.

 

작화감독의 체크를 통과한 원화를 보내면 결과물이 3개월 후에 오기도 했는데 의도 전달 과정에서 오해도 있고 그림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지는 것도 있고 해서 다시 만들게 시키기도 했다.

 

한국에 맡겨서 확실한 장점은 동화 장수가 평균적인 TV애니메이션을 월등히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TV 애니메이션이 일본의 경우 동화를 한 화에 6000장 정도 밖에 못 쓴다. 요즘은 4000장인 것도 있더라. 하지만 NHK의 조건은 동화를 몇 장을 써도 OK라는 거였다. 한국 회사에는 동화 매수에 대한 조건이 없으므로 몇 장도 상관없다는 거다.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엄청 세밀한 애니메이션을 주문하면 한국 분들이 열심히 만들어냈다. 나디아에서 액션 등이 엄청 좋았던 게 다 일본 TV시리즈에선 안되는 동화 매수를 써서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와선 죄송한 이야기지만 한국 회사들에 수고를 다 떠넘겨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 덕에 타임시트에서 일본 TV 애니메이션이 1초에 8장을 써서 3프레임에 한 번 화면이 움직이는 데 비해 나디아는 거의 풀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 작업하신 분들에게 심한 짓을 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다 NHK가 허용해서 한 것으로 나쁜 건 NHK다.(웃음)

 

그런 '설'과는 반대로 오히려 한국에서 열심히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높은 퀄리티의 TV 애니메이션은 다시는 못 만들 것이다. 당시 나나 안노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였다. 젊어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완결편 제작 시작됐다
에반게리온은 히구치 신지 감독의 이름이 주인공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그와 연이 깊은 작품이다. TV시리즈에서 히구치 신지 감독은 주로 '아스카'가 등장하는 부분에 참여했다. 그는 아스카를 "딸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에게 먼저 극중 자신의 이름이 계속 불리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들어 봤다.

 

"솔직히 녹음 과정에서 내 이름이 계속 불리는 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계속 '바보'(ばか)라고 하고 말이지. 아스카는 TV시리즈와 구 극장판에선 내 이름에 바보를 붙여 부르다가 신 극장판에선 꼬맹이(がき)가 되었다. 듣고있기 괴로웠다"

 

다음으로 신 극장판에서 '서'의 '야시마 작전' 신 등  그가 담당한 부분들에 대해 물어 봤다.

 

"야시마 작전 부분은 TV 시리즈에선 마사유키가 혼자 맡은 부분이다. 마사유키는 대단히 뛰어난 스토리보드, 콘티를 그리는 친구로 나는 신 극장판에서도 그대로 써도 좋다고 봤지만 안노가 바꾸고 싶다고 해서 내가 맡게 됐다. 어떻게 묘사해야할지 고민 끝에 그려낸 결과물이 좋은 평가를 받아 기쁘다.

 

'파'에서도 TV 시리즈 19화를 새롭게 바꾸는 부분의 콘티를 맡았는데 이 부분도 TV 시리즈에선 마사유키가 담당한 부분을 내가 리빌드하게 됐다. 둘 다 마사유키의 작업이 워낙 훌륭해 보기 좋게 바꾸는 게 힘든 작업이었다.

 

그리고 큐. 나는 TV 시리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야시마 작전 부분과 19화의 전투 부분, 그리고 카오루군이 등장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그 가장 중요한 세 장면을 모두 마사유키가 담당했던 거다. 그 중 야시마 작전과 19화의 전투 리빌드를 나에게 맡겨 큐에서 설마 카오루군도 나에게 맡기는 건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에다 마히로에게 맡겼다.

 

솔직히 나는 카오루군을 제대로 그려낼 자신이 없다. 지금와서 말하지만 주인공에게 내 이름이 붙어서 가장 싫었던 것도 카오루군이 등장하는 신이었다. 카오루군이 '신지군'이라고 할 때마다 닭살이 돋아 견딜 수가 없었다(웃음)"

 

다음에는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가장 궁금해할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완결편 제작 상황에 대해 물었다. 히구치 감독은 완결편 제작이 시작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지만 어떤 내용이 될지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른다고 밝혔다.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완결편 제작은 준비가 시작되었고 당연히 나도 참가하고 있다. 내용이 궁금하시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사실 신 극장판에서는 늘 몰랐다. 모든 게 안노의 생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은 제작위원회 방식이 아니라 안노가 직접 돈을 대서 제작하고 있다. 대개는 돈을 끌어와서 만들며 투자자의 의향을 들어줘야 하지만 지금은 안노가 직접 돈을 대서 만드는 거라 그의 맘대로 진행할 수 있다.

 

안노가 다시 만들라고 하면 다시 해야 하고 이게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처음에는 TV시리즈를 편집하고 약간 살을 붙인 극장판인가 했는데 참여해 보니 아예 새로운 작품이었고 계속 바뀌었다. 지금 정해진 것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일이 아주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히구치 감독은 정말 한국 팬들이 이런 이야기를 궁금해할지 궁금해하면서도 모든 질문에 시원스런 답변을 해 줬다

 

마지막으로 히구치 신지가 감독해 에반게리온 큐 일본 개봉시 동시 상영된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에 대해 들어 봤다.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는 국내 개봉 시에는 판권 문제 등으로 동시 상영이 불발되어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는 특촬박물관 상영을 위해 만든 짧은 영화다.

 

당초 계획엔 없었지만 안노 히데아키가 관객들에게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특촬박물관 상영용으로 만들 당시에는 CG를 안 쓰고 옛 특촬 표현으로 만들었는데 역시 CG라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고. 안노가 CG로 이거 넣어 달라, 저거 넣어 달라 요구가 많았다. 거신병이 공중을 날 때 날개의 표현 같은 건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했고.

 

에반게리온 앞에 동시 상영 영화로 붙이자고 이야기가 되어서 빛의 창 등 모든 걸 CG로 다시 입혔다. 빌딩 등 도시가 파괴되는 부분도 그렇고. 전봇대가 더 필요하다고 하면 미니어처 촬영을 추가로 할 순 없으니 미니어처 같은 느낌을 주도록 CG를 만들어 추가하는 등등. 소리도 5.1채널로 새로 녹음했다.

 

왜 이걸 에반게리온 큐 앞에 붙였냐고 하면 설명하기 어렵다. 에반게리온과 아예 관계가 없진 않고 파와 큐 사이에 14년이라는 시간이 비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보여줘서 '어쩌면 이렇게 된 걸지도 몰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던 건지도 모르겠다. 역시 그런 게 아닐까?

 

사실 걱정한 건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목소리가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의 나레이션으로 나오는데 에반게리온 본편 앞에 이걸 붙여버리면 아야나미 레이의 인상이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거였다. 하지만 완성된 걸 보니 의외로 아야나미 레이는 대사도 거의 없어서 '뭐 그렇군' 정도의 느낌이었다"

 

히구치 신지가 애니메이션 감독을 안 맡는 이유
히구치 신지 감독은 나디아 감독을 맡은 후 애니메이션 감독을 다시는 맡지 않았다. 그는'반드레드'에도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기존 시리즈를 편집한 총집편의 감독으로 편집만 맡았을 뿐이라고 했다.

 

왜 애니메이션 감독을 다시는 맡지 않았을까? 실사 영화 감독으로 잘 나가게 되어 애니메이션 일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쉬지 않고 실사 영화를 선보이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셀 애니메이션, CG 애니메이션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참여해 왔다.

 

히구치 신지 감독은 애니메이션 감독을 다시 맡지 않은 이유로 자신의 성격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사정을 들었다.

 

먼저 성격에 대해서는 "사실 나서는 걸 싫어해 감독일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충격 발언과 함께 "책임 지는 것도 싫고 남이 나서서 해주고 서포트만 하면 좋겠는데 아무도 안 하니 하는 수 없이 내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애니메이션 감독을 다시 안 맡은 것도 그런 성격 탓일 것"이라며 "잘 하는 감독이 많으니 감독은 맡기고 난 돕기만 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실사 영화도 사실 더 잘 하는 감독이 있어 이 사람에게 맡기면 더 잘 하겠다 싶으면 맡기고 난 돕기만 하고 싶다"며 "결국 내가 하는 일들은 아무도 안 하려는 화장실 청소 같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사정을 들어 봤다.

 

"심각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감독만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못 만든다. 가장 중요한 건 원화를 그려줄 애니메이터다. 그 애니메이터가 일본에도 쓸만한 사람은 5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몇몇 거장들이 그 50명을 독점해 버려 나같은 사람에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일단 미야자키 하야오가 신작을 한다고 하면 우르르 그리로 가버린다. 오시이 마모루가 만든다고 하면 또 그리 가버린다. 오시이씨는 지금은 좀 덜하지만. 프로덕션 IG나 오토모 카츠히로가 신작을 하면 또 그리로 간다.

 

요즘은 호소다 마모루가 신작을 한다고 하면 다 그리 가버린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이 50인 정도의 실력좋은 애니메이터를 누가 더 차지하는가의 경쟁이다.

 

콘 사토시가 살아있을 때는 그가 가장 사랑받았다. 아쉬운 사람을 잃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카미야마 켄지(공각기동대), 하라 케이이치(짱구는 못말려, 컬러풀), 호소다 마모루(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에 나까지 네 명이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네 명이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가 콘 사토시가 없으면 (실력있는 애니메이터들을 확보할 수 있어) 내 작품도 퀄리티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거였다. 원래 만화가로 시작한 분이라 '만화의 나라로 돌아가 버려' 같은 말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콘 사토시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워낙 매력적이라 모두가 그의 일을 하고 싶어했다. 실력 좋은 애니메이터가 자기 일은 안 맡아주는 게 다들 고민이었다.

 

카미야마 켄지가 이번에 '009 리사이보그'를 선보였다. CG 애니메이션이다. '난 애니메이터를 안 쓰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겠다'는 거다. 실력좋은 애니메이터들은 희소가치가 워낙 크다 보니 다들 제멋대로기도 하고 통제가 힘든 게 사실이다.

 

그 치열한 경쟁에 들어가도 그 경쟁에서 이길 것 같지가 않았다. 애니메이터들은 그림 좋은 사람을 존경하므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과 일하고 싶어한다. 난 그림을 못 그려서 인기가 없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역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맡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히구치 감독도 카미야마 감독처럼 CG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CG가 더 힘들 수도 있다"며 "그림은 고칠 수 있지만 CG는 고치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우리의 애니메이션을 키워온 건 좋은 그림, 멋있는 그림, 멋진 캐릭터의 포즈 같은 것"이라며 "CG에선 그런 게 아직은 시스템으로 되어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히구치 신지 감독은 지난 2011년 이누도 잇신 감독과 공동 감독으로 '노보우의 성'을 내놓은 뒤에는 소식이 뜸했다. 하지만 이미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차기작은 준비에 들어가 각본을 기다리고 있다"고 운을 뗀 뒤 "한국에는 네번째 온 거지만 늘 새로운 발견이 있는 나라로 좋아하고 일본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다음 영화는 아마 한국 분들도 깜짝 놀랄 만한 영화가 될 테니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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