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겹다. 그만하자...
한 해에도 수많은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는 국내 게임시장에서 삼국지의 위력은 대단하다. 장르와 플랫폼의 영역을 넘나들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삼국지'라는 이름만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성공하는 게임은 '삼국지'의 삼국통일을 향해 혼을 태웠던 영웅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게임포커스는 국내 삼국지 게임의 현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원작과 게임을 구분하기 위해 원작은 '삼국지'로 게임은 <삼국지>로 표기하기로 한다.
삼국지(三國志])란?
보통 '삼국지'라 말하면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의 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연의는 '사실을 부연하여 재미나게 설명하는 것'이란 뜻을 가지며 그러한 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반면 '삼국지'는 '사기','한서','후한서'와 함께 전사서로 불리는 진나라의 진수가 지은 기전체의 정사이다. 진수가 죽은지 130년 후 남조의 송에서 배송지라는 사람이 삼국지에 주를 달았는데 본문의 분량의 몇 배에 달하는 것이었으며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이 쓰여졌다고 한다. (출처:네이버 용어 사전)
삼국지에 열광하는 이유
당대 최고의 무장들이 등장하며 들려주는 무용담,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머리싸움, 대의와 명분, 사랑과 우정까지 담아낸 모든 이야기 거리가 존재한다. 훌륭한 인생지침서로 통할 정도로 한 명의 인간이 태어나서 겪을 수 있는 인간사를 담아낸 인생의 축소판인 셈이다.
또 내 앞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영웅들이 무수하게 등장하며 소설 전편을 수놓는 가운데 각종 지략과 전술, 변화무쌍한 전투 장면은 책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들이 삼국지에 빠져드는 것도 다채로운 영웅들의 제각각 다른 성격을 자신과 일치시키려는 또 다른 몰입인 셈이다. 이전 '메카닉 게임의 불운, 과연 징크스인가'라는 기사에서 언급했던 메카닉에 열광하는 이유와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이러한 상상은 삼국지를 소재로 한 게임이 등장했을 때 또 다른 현실을 느끼게끔 만들어주는 훌륭한 도구다.
게임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
이유는 간단하다. 타인의 운명을 내 손으로 개척해주고 싶은 욕망(欲望) 때문이다. *욕망(欲望):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예를 들면,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자신은 패배할 줄 알면서도 승리라는 한낱 희망을 걸고 출사표를 올리는 제갈량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없다. 단지 패배자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비장함을 느낄 뿐이며, 이를 지켜보는 독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아쉬움을 표하는 것이 전부다.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적벽대전'이나 '삼국지 용의 부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단지 다른 것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CG 효과, 시나리오 각색)로 극적인 상황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손에 땀을 날 정도로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만을 만들어 관객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요구한다.
이에 비해 게임은 아슬아슬한 줄타기 대신에 모니터-마우스-키보드와 때로는 공략 집으로 이들을 구해내며, 때로는 선인을 악인으로 악인을 선인으로 만들 정도로 원작에서 불가능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한다.
예로 든 상황이 게임으로 녹아낸다면 퀘스트나 이벤트로 등장한다. 유저는 예 혹은 아니오처럼 '만약 나였다면 제갈량처럼 했을 것이다' 혹은 '나라면 그렇게 무모하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선택을 하게 된다. 비록 게임이지만 제갈량의 삶을 대신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고충 내지 희열을 느낀다면 단순한 퀘스트나 이벤트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영웅들의 고충을 모니터에서 구현한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코에이(KOEI)社의 <삼국지> 시리즈이다. <삼국지>시리즈도 턴제 시뮬레이션에서 액션을 강조한 무쌍, 여기에 건담까지 가세한 건담 무쌍으로 등장했으며, 플랫폼을 온라인으로 확장하여 진삼국무쌍 온라인과 삼국지 온라인으로 등장했다.
최근에는 웹게임들이 '삼국지'의 후광을 노리고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삼국지라는 명성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삼국지를 소재로 한 게임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온라인 플랫폼으로 국내에 등장했던 게임들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이는 웹게임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공언하지만, 기자가 판단하기엔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명색이 좋아 삼국지 게임이지 무늬만 삼국지 게임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삼국지를 전면에 부각시키거나 삼국지를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이 많았음에도 열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성공이라는 단어보다 서비스 종료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설령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유저들의 눈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그래서 실패한 게임들을 통해 몇 가지 요인을 살펴본다.
첫째, 온라인 게임이라는 특수성을 간과했다.
멀티 엔딩과 유저의 플레이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게임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간과했다. <삼국지>시리즈를 개발한 코에이(KOEI)社도 유독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성공과는 멀었다. 게임이라도 엔딩이 있는 PC패키지와 네버엔딩스토리로 진행되는 온라인 게임은 달랐으며, 플랫폼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코에이(KOEI)社는 <삼국지>시리즈를 통해 게이머의 영웅 심리를 자극하고, 간접 체험을 넘어서 대리 만족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제공했다. 예를 들면 일기토, 장수 등용과 군사 운용, 외교와 내정을 통해 게이머들은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옛 기억을 떠올려보자. 통일을 앞두고 세이브 버튼을 누르기 전 마지막 턴에서 바라보는 영토와 영웅, 백성들은 게임에서 그저 수치와 기호로 표시된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게이머에게 그 순간은 조조이자 유비이며 손권이자 또 한명의 군주이다. 게임에서 원했던 군주의 역할임에도 실제로 게임에서 원했던 것은 게이머의 성공 내지 통일이었다.
각종 치트와 에디트, 마스터 세이브 파일과 공략집을 멀리하고 손수 일궈낸 삼국통일은 단 한명의 게이머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단 한명이 아니라 MMORPG를 즐기고 있는 수많은 유저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조조나 여포의 닉네임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삼국통일에 기여하고 싶거나 통일을 원했던 수많은 군웅들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지 온라인>이다.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 전국 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넓은 전장을 온라인에 담아내고자 했지만, 영웅 심리를 자극하기엔 역부족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목받는 영웅이 아닌 일개 병사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누가 게임을 하겠는가.
둘째, 다채로운 영웅이 있다고 성공을 맹신한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삼국지'를 소재로 한 게임들은 항상 캐릭터에 주목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만 하더라도 수백 명이 넘으니까 등장만 시켜도 무조건 성공한다는 안일한 생각이 실패를 초래했다. 물론 영웅이 등장한다.
그러나 게임에 등장하는 영웅의 모습은 일러스트나 NPC로 등장하는 것이 전부다. 시쳇말로 병풍처럼 서있는 영웅만 보일 뿐이다. 정말 유저들은 영웅의 저런 모습을 좋아할 것인가. 설령 영웅을 적과 동지, 군주나 병사의 관계로 설정하더라도 이들과 연결고리가 있다면 말은 달라진다.
결국 어떻게 등장하느냐에 따라 영웅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셋째, 애초에 삼국지를 담아내려는 고민은 없었다.
다양한 영웅들과 넓은 전장을 표현할 때 가장 이상적인 장르는 MMORPG, <삼국지>시리즈의 턴 방식을 계승해서 출시한 플랫폼은 웹브라우저였다. 전투만을 강조했던 진 삼국무쌍 온라인도 액션 RPG의 골격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고정관념의 시작이다.
우선 이상적인 조합이라 생각했던 삼국지와 MMORPG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삼국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국가 대 국가의 전쟁과 인물간의 대결 구도는 역사의 물줄기를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유독 MMORPG에 오면 보상(아이템, 경험치, 게임머니)을 주는 퀘스트나 이벤트에 불과했다. 더욱 MMORPG의 주인공은 유저로서 이러한 서사적 장치는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레벨 업하고 장비 마련하고, 세력 만들어서 서버 내에서 유명해지거나 힘을 키우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삼국지를 소재로 한 웹게임들도 과거 턴제 시뮬레이션 방식에 치트키가 캐시 아이템으로 바뀐 것 외에는 별반 다를 바 없다. 그저 <삼국지>시리즈를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는 투박한 도트 그래픽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신선한 게임 방식이나 콘텐츠 없이 향수만을 자극하는 것은 상술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까지 등장한 삼국지 소재의 온라인 게임들은 2D-3D, MMORPG-MORPG, 턴-리얼타임, 액션-시뮬레이션 등으로 삼국지와 결합을 시도했지만, 성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게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는 어떠한가. 코에이(KOEI)社에서 개발한 삼국지 온라인과 진 삼국무쌍 온라인조차 국내 서비스를 종료했으며, 삼국지 소재 웹게임은 원조논쟁을 벌일 정도로 서로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설령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삼국지의 세계를 게임에 구현했는가 되묻고 싶을 정도다.
<삼국지>시리즈에서 시스템을 바꿔가며 대의명분과 개인의 성취 사이에서 고민했던 사항조차 온라인-웹게임들은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단지 장수 중심의 RPG 혹은 군주 중심의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단순화시켜버린 셈이다.
삼국지 게임, 변형보다 창조부터 제대로
'삼국지'가 플랫폼을 바꿨을 뿐인데 온라인 게임에서는 애물단지 혹은 사골로 불릴 정도로 천대를 받고 있다. 항상 삼국지 소재 게임이 등장할 때마다 '계승, 해석, 창조'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그러나 어떠한 온라인 게임도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했고, 유저들의 감정에만 호소했을 뿐이다.
기자조차 삼국지를 소재로 한 게임들의 실패를 몇 가지 기준을 두고 살펴봤을 뿐, 명확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고전은 새로운 형태로 끊임없이 재창조되어야만 한다는 말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하며, 적어도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 노력이 변형이 아닌 온라인 게임으로 또 다른 창조를 시도하는 숭고한 노력이길 바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 지겹다,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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