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4년 하반기 국내 게임업계에서 가장 놀라웠던 소식 중 하나는 액토즈소프트가 스퀘어에닉스의 세계적 흥행작 '파이널판타지14' 퍼블리싱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었다.
스퀘어에닉스, 아니 일본 전체에서도 드물게 MMORPG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겸비한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가 주도한 MMORPG 파이널판타지14는 일본은 물론 북미, 유럽에서 많은 인기를 얻으며 스퀘어에닉스의 최고 효자게임이 됐다.
중국 서비스가 확정된 상황에서 파이널판타지14의 국내 서비스를 위해 많은 국내 퍼블리셔들이 경쟁을 벌였고, 2013년 말에는 N사가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껑을 열어보니 국내 퍼블리싱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액토즈소프트였다.
게임포커스에서는 2015년 상반기로 예정된 파이널판타지14 국내 정식 테스트에 앞서 파이널판타지14 국내 서비스의 한, 일 주역, 스퀘어에닉스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와 액토즈소프트 배성곤 부사장을 번갈아 만나 이야기들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노쇠한 거인' 스퀘어에닉스를 바꿔 놓은 '젊은 피', '파판 14' 요시다 나오키 PD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액토즈소프트 배성곤 부사장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액토즈 게임사업을 이끌어 온 배성곤 부사장은 일찍부터 파이널판타지14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2013년 초부터 파이널판타지14 퍼블리싱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지만 국내 내로라 하는 퍼블리셔들의 경합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액토즈가 뛰어들어 퍼블리싱에 성공할 수 있겠냐는 내외의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해 실제 행동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사실 파이널판타지14가 워낙 좋은 브랜드고 좋은 게임이라 많은 한국 퍼블리셔들이 파이널판타지14 한국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우리는 중간에서 어떤 회사가 어떤 제안을 했고 요시다 PD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보를 쫓아다닐만큼의 여력도 없었고 한편으로 내부 분위기도 스퀘어에닉스가 과연 파이널판타지14를 우리에게 과연 줄까?라는 의구심이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공식적으로 파이널판타지14 퍼블리싱에 대한 논의가 사내에서 진행되지 않던 타이밍이었지만 액토즈소프트에게도 강점은 있었다. 스퀘어에닉스의 '확산성 밀리언아서'를 한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시키며 스퀘어에닉스의 브랜드를 강화시켰다는 점과, 전동해 대표와 스퀘어에닉스 사이의 강력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이었다.
2013년 한 해 동안 배 부사장은 전동해 대표를 만날 때마다 "우리가 파이널판타지14 퍼블리싱 계약을 하면 참 좋을 텐데"라고 운을 띄웠다고 한다.
배성곤 부사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대표님이 농담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나로선 최대한 적극적으로 밑밥을 깔았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도 대표님이 별 이야기가 없이 만날 때마다 '우리가 하면 좋겠습니다'하면 '스퀘어에닉스가 우리에게 주겠어요?'같은 대화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자 전동해 대표가 요시다 나오키 대표에게 퍼블리셔로서 액토즈소프트를 어필할 기회를 마련해 줬다. 그때가 2013년 12월 말이었다.
전동해 대표는 2013년 말 배성곤 부사장에게 2014년 1월 초에 상하이를 방문하는 요시다 프로듀서가 상하이 방문 일정 중 시간을 내서 액토즈소프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뜻을 전해왔으니 시일이 촉박하지만 준비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배 부사장은 정말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지만 시간만 내 주신다면 하겠다고 답을 하고 1시간 정도 시간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배성곤 부사장과 액토즈소프트 파이널판타지14 준비팀에서는 급하게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 상하이로 날아갔다. 요시다 프로듀서와의 약속 하루 전이었다. 상하이에서 전동해 대표를 만나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을 보여주자 이걸론 부족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의 스탭들과 스카이프로 대화하며 프리젠테이션을 수정한 끝에 최종 완성본이 나왔고, 결과적으로 급하게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은 성공적이었다.
"프리젠테이션을 마치자 요시다 프로듀서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이 마음에 들었고 감명 깊었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악수를 하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아, 이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발표까지 시일이 걸렸지만 결국 그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스퀘어에닉스 내에서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사장실로 쳐들어간다거나, 정규직을 마다하고 계약직으로 있을 테니 월급을 많이 달라고 요구하는 등 범상치 않은 일화들로 유명한 개발자다. 그런 요시다 프로듀서가 한 말이었으니 단순히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식으로 파이널판타지14를 액토즈소프트가 국내 퍼블리싱한다는 발표는 2014년 9월에 나왔다. 그 사이에 스퀘어에닉스와 액토즈소프트의 역할, 책임, 계약조건 등 실무적인 협의가 진행됐고, 그 와중에도 다른 국내 퍼블리셔 사장단이 스퀘어에닉스 임원진과 접촉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액토즈소프트를 긴장시켰다.
그런 상황 하에서 결국 액토즈소프트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액토즈소프트는 분석하고 있다.
배성곤 부사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일본 업체와 비즈니스를 진행하면 일본에서 프로젝트 리더, 소위 '키맨'에 대한 존경심과 중요도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복잡하게 임원들에게 어프로치를 한다거나 하는 작업보다는 오직 요시다 프로듀서에게만 파이널판타지를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게임을 얼마나 많이 플레이하고 이해했는지를 어필했다"고 밝혔다.
배 부사장의 이런 접근은 정확한 것이었다. 실제 요시다 프로듀서는 망해가던 프로젝트를 떠맡아 잘 마무리하고, 재창조해 세계적 흥행작으로 발전시킨 실적과 자부심을 모두 가진 파이널판타지14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가 액토즈에 맡기기로 했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파이널판타지 퍼블리싱 경쟁을 꾸준히 취재해 본 결과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퍼블리싱 계약을 추진한 곳은 세 군데 이상이었다. 그중에는 임원진끼리 만나 게임을 거래하던 평소 방식으로 접근한 곳도 있었고 파이널판타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한국에서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고 자신한 회사도 있었다.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가 퍼블리싱 계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는 조금 간지러운 표현이지만 상대방이 파이널판타지를 얼마나 이해하고, 애정을 갖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액토즈소프트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지 않고 일본어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준비팀 내에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열성 팬도 다수 포진되어 있었던 점도 플러스로 작용했다. 배성곤 부사장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나는 어릴 적에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플레이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마니아는 아니다. 하지만 함께 준비한 직원 중에는 요시다 프로듀서를 깜짝 놀래킬 정도의 마니아가 다수 포진되어 있다. 요시다 프로듀서가 장난을 좋아해서 게임 OST같은 걸 은근슬쩍 틀어놓곤 하는데 우리 직원들이 5~6초 듣고 어떤 테마, 어떤 곡인지를 다 맞춰낸 적이 있다.
일본에서 같이 회의를 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요시다 프로듀서가 음악을 세 곡 정도 틀었는데 세 곡을 다 5초 내에 맞췄다. 그때 요시다 프로듀서가 '이 사람들이 정말 게임을 열심히 하는구나'라며 깜짝 놀라더라"
액토즈소프트, 배성곤 부사장은 직원들의 게임을 업무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장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 부사장은 평소 "우리가 게임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게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게임으로 비즈니스하는 과정에서 언밸런스한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지론을 펼쳐 왔다.
흔히 비즈니스는 비즈니스고 게임은 게임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하고, 알고 게임으로 사업을 하는 기본적인, 근본적인 부분이 이번 파이널판타지14 퍼블리싱 전쟁에서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대학에 특강을 하러 갔는데 '실습실에서 게임하다 걸리면 F'라는 경고가 붙어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니 게임관련 공부하는 학생들이 실습실에서 게임을 안하면 뭘 하는 건가 물어보니 수업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게 우리나라의 게임학과에 써있다는 게 아직까지의 시각, 한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게임 플레이는 수업의 일환이 아니라는 것 같아 아쉬웠다.
실습실에서 프로그래밍하다가 게임도 한 판 할 수 있고,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원들 게임하는데 쟤 놀고 있네라고 생각할 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일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부터가 자리에서 넥서스7이나 화면 큰 PC로 게임 한판 하곤 한다. 게임쪽 아닌 분들도 가끔 만나러 오는데 '부사장님 게임하고 계시네요, 일은 언제 하세요'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저 일하고 있는데요' 해도 이해를 못하더라.
그런 관점은 우리 게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본질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거다. 결과론적이지만 파이널판타지14 계약경쟁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저 사람들 이 게임이 아니면 죽겠구나, 우리 게임을 주면 죽을만큼 열십히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 열정, 저 사람들은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만든 기본적인 마인드에 있었던 것 같다"
힘겨운 경쟁을 이겨내고 퍼블리싱권을 획득한 파이널판타지14는 액토즈소프트에게, 배성곤 부사장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일까.
"업계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유저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감히 액토즈가', '한낱 액토즈가' 이런 대작을 잘 서비스할 수 있겠어? 라는 느낌을 좀 받으시는 것 같다. 처음에 파이널판타지14를 퍼블리싱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주변 분들에게 이야기하면 스퀘어에닉스가 너희에게 주겠어? 같은 반응이 있었다.
액토즈소프트가 온라인 게임산업에서 활동한지도 2014년 10월로 18년을 맞이했다. 액토즈가 초기에는 순수한 개발사였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도약하지 못하며 부족한 자리를 퍼블리싱으로 채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개발 명가를 재건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게임들이 개발이 중지되거나 실패하면서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좀 잃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2000년 초반 액토즈에 합류했을 때부터 액토즈에게는 두 가지 비전이 있었다. 하나는 액토즈 내부에서 개발 대작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훌륭한 타이틀을 퍼블리싱해 보자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개발 부분에서는 아직 꿈을 못 이룬 상태에서 모바일 산업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온라인 게임 개발이 위축된 면도 있다. 액토즈에 다시 합류한 것이 올해로 3년차인데, 멀티플랫폼을 추구하자고 이야기하던 부분이 회사 체력이 아직 그정도가 안되어 참아야 할 부분도 있었다.
파이널판타지14는 액토즈의 두 가지 비전 중에 하나, 정말 좋은 게임을 퍼블리싱해 보자는 것을 실현해 줄, 액토즈소프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이널판타지 브랜드가 리딩하겠지만 이를 통해 액토즈 브랜드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운 좋게 유저들이 우리가 느끼는 파이널판타지14의 재미를 공감하고 같이 느끼고 즐길 수 있다면 파이널판타지14를 통해서 발생하는 매출로 다시 좋은 투자를 해서 액토즈에서 좋은 대작게임을 개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어 줄 타이틀이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케터 생활 20년 만에 원하는 타이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진짜 좋은 작품으로 마케팅을 해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얻었다. 마케터에게는 그것만큼 고마운 건 없을 것이다. 드디어 어떻게 좋아보이게 할까가 아니라 정말 좋은 것을 잘 드러나게 하는 일을 할 기회가 왔다.
부족한 회사다보니 흠결이 많이 보일 수 밖에 없는데, 질책은 언제나 감사히 받아들이고 개선하려 하니 유저 분들도 너무 내놓은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대기업만 게임산업, 업계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건 아니다. 우리도 체력이 안 되어 못하는 것도 있지만 고민하고 있다는 건 알아주시면 좋겠다. 유저들 주머니만 털려는 게 아니라 게임산업에서 게임을 사랑하고 산업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시각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도 우리가 좋은 게임을 만들어 보여드리는 게 길일 것이다. 잘 부탁드린다"
액토즈소프트는 2015년 상반기 파이널판타지14 테스트를 진행한 후 여름에 상용화까지 나아갈 계획이다. 무엇보다 서버 구축에 공을 들여 초기에 15만명의 동시접속자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준비하고 있다. 서버 구축 부분에서도 스퀘어에닉스와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파이널판타지14 퍼블리싱에 성공한 배성곤 부사장과 액토즈소프트가 서비스에서도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 시장에서 파이널판타지14를 통해 화려하게 도약할 수 있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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