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훌륭한 완성도 보인 '극장판 사이코패스', 후속작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

등록일 2015년06월18일 10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극장판 사이코패스'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틸샷들은 보도를 위해 애니플러스에서 배포한 것입니다.

시빌라 시스템에 의해 인간의 심리 상태나 성향을 측정해 수치화가 가능해진 세계. 시스템은 인간의 마음을 계측하여 사이코패스(PSYCHO-PASS)라는 수치를 부여하고 개인의 미래를 판정한다. 그중에서도 범죄에 대한 잠재적 수치, 범죄계수가 기준치를 넘는 사람들은 등급에 따라 도미네이터를 든 감시관과 집행관에 의해 즉결 심판을 받게 된다.

2012년 일본에서 방영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는 '춤추는 대수사선'으로 유명한 모토히로 카츠유키가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여기에 '블러드C-라스트 다크'로 고어 액션 연출력을 인정받은 시오타니 나오요시와 설명이 필요없는 우로부치 겐이 스토리를 담당해 큰 기대를 받았다. 원작이 따로 없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임에도 상당한 호응을 받은 이 시리즈는 1기와 2기를 거쳐 극장판이 제작되었고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관객들과 만났다.

범죄자 예측이라는 소재 탓에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영감을 받았나 싶던 사이코패스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제작사 프로덕션 I.G의 과거 명작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됐다. 뒤로 갈수록 범죄 예측이라는 소재보다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사회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1기는 기만적인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는 가짜 평화의 민낯과 주인공이 대면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파국보다는 평화라는 현상 유지에 방점을 찍는다는 점에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시리즈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사이코패스의 총감독인 모토히로 카츠유키는 애니메이션 오타쿠로 잘 알려져 있는데, 에세이를 통해 "자신이 해온 작업이 오시이 마모루 작품을 실사로 뒤쫓고 있을 뿐이 아닌가 싶다"고 했을 정도라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사이코패스는 프로덕션 노트를 통해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사이코패스 2기의 경우 '공각기동대 S.A.C 2nd GiG'의 '개별 11인'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1기의 면죄체질자였던 마키시마 쇼고와 달리 아예 시빌라 시스템에 인식조차 되지 않는 2기의 카무이 키리토. 일종의 같은 뜻을 공유한 단일 군체이기에 인식되지 않았던 카무이 키리토는 역설적으로 시빌라 시스템을 거울처럼 비추며 시빌라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큰 공헌을 한 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카무이의 테러로 인해 시빌라 시스템은 자정 능력과 자기 수정 그리고 진화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극장판은 TV시리즈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시빌라라는 법치와 질서의 시스템과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무력인 드론을 타국에 수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빌라 시스템을 처음으로 시험 도입한 것은 동남아시아 연합의 도시 샴발라 플로트. 그런데 시안에서 도쿄로 테러리스트들이 잠입하고, 이 테러리스트들이 소속된 단체에서 사라졌던 집행관 코가미 신야의 모습이 포착된다. 그 조사를 위해 츠네모리 감시관이 시안의 샴발라 플로트로 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극장판 사이코패스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심도깊은 메시지들뿐 아니라 극장판이란 이름에 걸맞은 액션도 가득하다. TV판과 달리 내전 중인 타국을 무대로 하는 만큼 여태까지 거의 등장하지 못했던 화약 병기가 대거 등장한다. 공각기동대에 이어 프로덕션 I.G의 여주인공이 한 번쯤 맞닥뜨리게 되는 사족보행전차와의 전투는 여전히 볼만하며, 특히 CG애니메이션이면서 거의 실사 영화에 가까울 정도인 주요 캐릭터 간의 '체술' 액션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다만 의도는 알겠으나 시빌라 시스템의 개입으로 인한 사건 해결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러우며, 시리즈가 진행되며 두드러지는 고질적인 설정 충돌은 다소 아쉬운 면으로 남는다.

극장판의 스토리 얼개는 일본보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공감하기 쉬울 것 같다. 국민에게 눈에 보이는 안락을 제공하는 군벌 출신 독재자, 한쪽 다리를 저는 민주화 운동 리더, 이 두 세력에 각각 도움을 주는 일본, 마지막으로 선거를 통해 다시 독재자를 선출하는 국민이라는 쿠키 영상에 이르면 무대는 동남아시아이지만 군사 독재 시절부터 '88 서울 올림픽' 시기까지의 한국 역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기 때문이다.

극장판의 엔딩과 쿠키영상을 통해 시빌라 시스템은 1기에서 언급했던 시빌라 시스템의 본 모습을 공개할 수 있는 단초를 얻었다. 독재자의 재선이란 현실에 비추어 보아 시빌라 시스템 역시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당성까지 얻을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시리즈의 진행을 통해 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브컬처에서 이 질문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은하영웅전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은하영웅전설이 철인이 다스리는 최고의 제정 앞에서 중우정치의 최악의 민주정이더라도 온존할 가치가 있다는 대답을 하고 있다면, 사이코패스 극장판은 그 철인의 통치 체제가 민주적인 방법으로 추인되어 정당성마저 확보할 수 있음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시빌라 시스템은 츠네모리 감시관에게 제안했던 것처럼 자격을 갖췄다면 적이라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에 주저함이 없고, 뇌밖에 남지 않았기에 평범한 인간보다 사사로운 욕구의 정도가 극단적으로 낮으며, 자기 구성원을 처단할 수 있을 정도로 자정 능력을 발휘해 스스로 진화하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사이코패스 각 시리즈의 엔딩은 츠네모리 감시관의 분투가 시빌라 시스템의 음모를 분쇄하고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이는 시스템 업그레이드의 단초가 된다. 마치 양웬리가 전투에는 이겼지만 전쟁에는 이길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코패스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시빌라 시스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과연 계속하여 진화하는 정의(시스템) 앞에 츠네모리 감시관은 언제까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사이코패스 시리즈의 후속작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극장판 사이코패스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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