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진도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역사상 5번째 강진이며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진자체가 육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최소화 되었지만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에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가끔 TV뉴스를 통해 지진에 대처하는 일본인, 지진대처를 생활화 하는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한번은 들었을 것이고 실제로 대지진 발생 후 일본 국민이 보여준 시민의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물론 일부 부정적인 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삶과 죽음이 뒤엉킨 아수라장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지진 발생비율과 비교해 봐도 일본에는 진도 6이상의 강진이 다른 나라보다 많기 발생하기 때문에 지진과 관련된 공익사업이나 물품들, 문화 콘텐츠 역시 그와 비례하게 존재한다. 일본국민들이 보여준 놀랄만한 침착성과 질서는 아마도 재난의 극복 방법을 이런 다양한 방법으로 녹여내면서 사회 환경에 따른 무의식적인 재난 대처 요령의 습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진을 소재로 한 일본의 문화 콘텐츠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금부터 게임을 위주로 지진 혹은 쓰나미 등을 소재로 한 일본의 문화 콘텐츠에 대해 알아보고 간단히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소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원제목은<Ather the Quake>, 한국어 번역 제목으로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로 발매된 이 소설은 일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연작 소설이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 아닌 3인칭 관점의 이 소설은 1995년 일본을 강타한 고베 대지진을 모티브로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지진 속에서 겪게 되는 생존자들의 삶과 죽음, 사랑, 크고 작은 사건 등을 통해 하루키 특유의 인물 내면 표현과 그것을 극복해내는 과정 속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
게임 <절체절명도시> 시리즈
대지진으로 인해 발매가 중지된 아이렘사의 절체절명도시 시리즈는 대재앙으로부터 홀로 남아 탈출하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을 플레이 하면 행동을 할수록 갈증이 심해져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거나 여진으로 인한 화재나 연기로 체력이 줄어들고 보행이 힘든 곳을 걷게 되면 불안, 긴장, 공포심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등 게임의 액션은 최대한 배제하고, 리얼리티를 표방했다.
올 봄 발매 예정이었던 절체절명도시 4의 발매 중지 소식은 개발사가 실리보다는 명분을 택했다는 점에서 많은 누리꾼의 찬사를 받았다.
게임 <모터스톰3 : 아포칼립스>
다양한 소재의 오프로드 레이스가 컨셉인 모터스톰 시리즈의 최신작 <모터스톰 3 : 아포칼립스>는 지진을 소재로 한 점에서 일본 및 일부 국가에서 발매연기가 된 타이틀이다(우리나라는 정상 발매).
기존 아케이드성의 레이싱 게임에서 벗어나 상대방 차를 파괴하는 배틀 레이싱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영화 <데쓰 레이스>와 같이 무장한 무기를 통해 지진이 일어나는 도심 속에서 상대 레이서를 몰살 시키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이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시기적으로 민감한 상황에서 출시되었다는 점에서 이 게임이 가진 장점보다 단점이 더 부각되는 웃지 못 할 헤프닝이 생기고 있다.
게임 <Disaster : day of crisis>
닌텐도 Wii로 발매가 된 이 게임은 제목 그대로 단 하루의 생존 배틀이 주제다. 주인공은 지진, 화산 폭팔, 해일, 태풍, 홍수 등의 자연재해를 피해 다니며 죽은 동료의 여동생을 인질로 잡은 테러리스트로부터 여동생을 구하고 테러리스트로부터 핵을 되찾아 온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절묘하게 혼합되었다는 점에서 닌텐도 Wii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게임의 진정성에선 많은 의문과 비판을 받았지만 비현실적인 재난 상황에서 유저가 영화주인공의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재미요소로만 무장했다는 점은 '게임'으로써의 본질적인 재미를 잘 살렸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일본 침몰>
지역적으로 가깝지만 마음은 가장 멀 수도 있는 일본에서 자신의 나라 전체 침몰이라는 충격적인 주제를 안고 개봉한 <일본 침몰>은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국내의 사회적인 요소와 맞물려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렇지만 일본에선 흥행 순위 4위, 수익금 약 53억 엔의 히트작이 되었다.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좋고/나쁘고의 평가는 주관적인 의견이 상당히 많이 반영되지만 지진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이 보여주는 제각각의 휴머니즘은 뻔히 보이는 전개의 재난 영화에서 단지 외적인 요소만을 의식한 유희로써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애니메이션 <도쿄 매그니튜드 8.0>
TV용 총 11화 구성의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며 이를 한 대 모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상영이 된 <도쿄 매그니튜드 8.0>은 최근 생겨난 일본 지진으로 인해 다시 한 번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핸드폰성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핸드폰을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생인 미라이, 여러 가지 환경으로 일상생활에 불평불만을 호소하고자 평소에도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는 핸드폰에 "이딴 세상 따위 부서져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적는 순간 거짓말처럼 도쿄 중심부에 진도 8.0의 강력한 지진이 들이 닥친다.
지진을 통해 주인공의 눈으로 겪게 되는 재난의 모습과 여러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소녀의 내적 성장을 표현해주는 감성적이고 섬세한 애니메이션이다.
만화 <생존게임> <드래곤헤드>
재난관련 만화들 중 <생존게임>과 <드래곤헤드>는 상당히 많이 알려진 작품임과 동시에 상반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로 보는 독자층의 차이도 있겠지만 같은 재난 속에서 추구하고 알리고 싶었던 표현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생존게임>은 재난 상황이라는 환경 속에서 만화의 밑바탕이 되는 생존의 방대한 지식과 전문적인 내용으로 생존 과정에서 극도의 이기심에 빠진 사람들에게 '빛'으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만화다.
<드래곤헤드>는 재앙을 겪고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간들의 갈등과 공포, 대립이라는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통해 <생존게임>보다 좀 더 현실에 가까운 광기어린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상황, 점차 '어둠'으로 몰락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암울한 미래를 맞이하는 모습을 그려낸 만화이다.
지진관련 콘텐츠가 많은 이유는?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화산대에 존재하고 있는 일본은 서문에서도 언급했듯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으로부터 잠재된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한 내재된 불안감을 문화 콘텐츠로써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김후련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일본인들은 지진과 쓰나미에 대해 큰 불안감을 가져왔다. 지진을 다룬 만화와 소설들은 일본인에 내재하는 불안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지리/환경적인 특성, 그것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통해 현실에서 느껴지는 삶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진을 주제로 했던 일본의 문화 콘텐츠를 소개했다. 어려움과 슬픔을 이겨내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처럼 현재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의 이재민들도 하루빨리 어려움을 이겨내고 모두가 원래의 삶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