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 '아버지' 멀고도 먼 그 이름

등록일 2015년09월25일 17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못 보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였거늘
1724부터 1776년까지, 재위기간이 무려 52년에 이르렀다는 조선 최장수 임금 영조(英祖), 그는 손자인 정조(正祖)와 함께 18세기 조선을 중흥기로 이끈 왕이라 평가받고 있는 한편 제 자식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뒤주에 넣어 8일 만에 굶겨 죽인 비정한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나이 마흔 둘에 얻은 귀한 아들 이선(李愃), 훗날 사도세자가 되는 영조의 늦둥이. 영조도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을 끔찍이 아꼈다고 하지만 선(愃)이 자랄수록 문예가 아닌 무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며 크게 실망했고 점차 이를 표출하며 부자지간의 갈등을 야기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아들이 가진 재능은 외면한 채, 무시하고 무안을 주며 불호령만 내렸으니 멀쩡했던 이도 미쳐버릴 수밖에...

권력은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
'사도'는 그런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를 큰 틀로 잡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다. 과거는 '비정한 아버지와 미쳐버린 아들'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며, 교차하는 현재는 과거로 인하여 더욱 비참하다.
 
정치와 권력 그리고 당쟁. 사도세자의 왕위 계승을 위한 또 하나의 시험대였던 대리청정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기회이자 위기의 대리청정은 노론의 이간질, 소론의 줄서기, 영조와 세자의 생각차이 등으로 외려 (가뜩이나 멀었던) 부자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것을 꾸짖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태산(泰山)같은 임금, 아버지
붓을 쥐는 것 보다는 검과 활을 쥐는 것이 좋았다. 글을 읽는 것 보다는 무를 연마하는 것이 좋았다. 학문에 정진하라는 아버지의 그 말이 참 싫었다. 가만히 앉아 글만 보고 있자니 좀이 쑤셨다.

조선의 종묘에 잠들어 계신 선왕들 중에는 분명 무인의 기질을 타고난 인물도 있었는데 내 아버지는 오롯이 문예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딴에는 한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기준에는 당연하게도 늘 미치지 못하였고 칭찬보다도 많았던 불호령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이 무서웠다. 두려웠다. 또한 싫었다. 혼날까봐, 무안을 주실까봐, 이미 바닥난 자존심이 사라질 때까지 짓밟으실까봐 옷을 걸치고 싶지 않았다. 옷을 걸치면, 복장을 갖추면 아버지를 뵈러 가야하기에 걸칠 수가 없었다. 왕위에 오를 때 신하들에게 잡힌 약점이, 지극히 사적인 그의 열등감이, 그런 아버지가 나를 옥죄였다.

실망만 주는 세자, 아들
어릴 때는 그토록 총명하고 영특하던 아이가 어찌하여 지금에 이르렀는지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왕위에 올랐을 때 신하들에게 휘둘리거나 무시당하지 말고 뜻을 펼치라는 의미에서 늘 학문에 힘쓰라고 하였건만 좀 하는 것 같다가도 수업 빠지는 것이 부지기수요, 대리청정 때에는 정세파악 제대로 못하여 아비 망신을 주었으니, 이게 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못나다 못해 밉상이다. 그 뿐인가, 얼마 전에는 내 아들의 손에 죽은 신하의 형이라는 자가 세자의 실상을 적어 고발을 했다. 아주 가관이었다. 귀와 입을 씻어내는 것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자가 올린 글에 배후세력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발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내 아들은 더 이상 세자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왕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사 속 진실은 물론 본인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정확하게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록이 있고 그 기록을 토대로 추측할 뿐이다.

한쪽에서는 붕당의 희생양으로 영조와 사도세자를 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서자 출신인 영조의 개인사를 토대로 하여 영조와 사도세자를 본다. 다만 과정은 달라도 영조는 조선왕조에 다시는 없을 엽기적인 방식으로 아들을 (굶겨)죽인 비정한 아버지이고 사도세자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미쳐 날뛰다가 아버지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아들이라는 결과는 나란히 하고 있으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그냥 둘 다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대체 왜?
'사도'는 '왜'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 아들을 대하는 영조의 태도와 아버지로 인하여 변해가는 사도세자. 그리고 그들 부자사이에 있는 노론과 소론, 중전, 영빈, 혜경궁 홍씨. 영조의 개인사와 당파 싸움에의 희생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제목이 '사도'이니 영조 보다는 사도세자의 시각에 더 가까운 영화이긴 하다. 그래서 더 외롭고 처절하고 처연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고 부터의 이야기라 그런지 너도 슬프고 나도 슬프고 쟤도 슬프고 다 같이 슬픈 전개라 계속되는 슬픔의 과잉에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갈 때에는 집중하기 좀 힘이 들었다. (에필로그의 경우엔 순전히 정조로 나오는 소간지의 재롱을 보기 위하여 버텼다.) 그래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에는 의의를...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글 : 키위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duddjw1004 / 자료제공: 애니포스트(www.anypost.co.kr

* 본 리뷰는 게임포커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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