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고 어느덧 2017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해 모바일게임 업계의 트렌드는 'IP의 확장'과 'MMORPG'였다. '리니지 2 레볼루션'의 흥행을 필두로 각 게임사들은 자사의 유명 IP를 모바일로 이식하거나 MMORPG 장르의 게임들을 연달아 출시했다. 여기에 출시 이전부터 유명 연예인을 기용하거나 가는 곳마다 게임의 광고를 내거는 등의 대형 마케팅도 다수 등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명 IP를 활용해 대형 MMORPG를 개발하기 어려운 중소 게임 개발사들과 대형 게임사들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중소게임사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형 게임사들만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매출차트 상위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중소게임사의 게임들도 있다. 대형 게임들 혹은 유명 IP 게임들의 사이에서 살아남은 게임들, 이들은 어떻게 골리앗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과금을 선택의 영역으로, X.D 글로벌 '소녀전선'
2017년 한해 흥행에 성공했던 게임들 중 가장 의외였던 게임을 꼽자면 역시 X.D 글로벌의 '소녀전선'일 것이다. 총기 모에화(사물이나 개념 등을 여성 캐릭터로 바꾸는 것)라는 마니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출시 이전에 별다른 광고나 홍보 등 마케팅을 진행하지 않았던 이 게임은 출시되지마자 유저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여기에 '혜자게임'이라 불릴 만큼 게임 내 '페이 투 윈(Pay to win)' 요소가 적었음에도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과금을 하며 구글 플레이 최고 매출 순위 3위와 앱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 5위를 기록하는 등 대단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흔히들 '소녀전선'의 흥행 원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금 피로도를 줄였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각종 패키지들과 과금모델들로 인해, '억울하면 결제하라'는 식의 '페이 투 윈(Pay to win)' 구조의 게임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 모바일게임에서 유저들의 과금 피로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소녀전선'은 이처럼 게임 시작부터 들이대는 결제창에 지친 유저들의 과금 피로도를 최소화했다. 제조시스템을 통해 확률적으로 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지만, 제작에 필요한 재화는 모두 게임 내에서 충당이 가능하다. 또한 게임 내에서 현금을 지불해야 하는 요소들인 스킨이나 가구 배치의 경우, 게임 내 능력치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강해지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지갑을 열어야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혜자게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이 게임의 상업적인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게임을 할 수 있다면 그대로 게임을 즐기면 될 뿐, 유저들은 굳이 지갑을 열 필요가 없다. 유저들이야 좋지만, 게임을 통해 수익구조를 유지해야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말그대로 무료봉사에 가까운 일을 하는 셈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문제를 소녀전선은 새로운 방식의 전략으로 해결해냈다.
바로 각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는 한 편 게임의 전략성을 최대화 한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모여서 만든 캐릭터들에 일본 성우들을 기용, 마니아 층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 유저들로 하여금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체스를 플레이하는 것처럼 상성을 고려하고 전장을 전략적으로 돌파해 나가는 게임 본연의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소녀전선'을 개발한 미카팀의 우중 PD는 "'소녀전선'에서의 과금은 마치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돈을 쓰는 것과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캐릭터들의 매력에 빠지고, 게임 자체의 재미까지 느낀 유저들이 스스로 애착을 느껴 지갑을 열 것이라는 전략은 그대로 맞아들었다. 단순히 이쁘기 때문에 유저들은 내 캐릭터를 꾸미기 위해 아낌없이 금액을 지불했고 '소녀전선'은 '혜자게임' 임에도 매출 상위권을 달성한 역설적인 성공을 이루어냈다.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은 입소문, 베스파 '킹스레이드'
대형 게임사들의 화려한 마케팅에 눌려 마케팅을 포기하는 게임사들도 많지만, 여전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럴 마케팅'이라고도 하는 입소문이 그것. 별다른 마케팅 비용이 들지 않는 것도 큰 장점이며,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 하는 유저들이 전하는 정보이기 때문에 그만큼 파급력과 신뢰도가 높은 것이 큰 특징이다. 때문에 성공만 한다면 저비용 고효율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업 정리까지 생각하고 있던 중소 개발사 베스파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준 '킹스레이드'는 이 입소문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게임이다.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은 입소문이다"라는 말처럼, 유저들이 스스로 나서서 게임을 홍보한 결과, 중소 개발사의 게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출시 후 매출 70위권을 전전하다가 양대 마켓 최고 매출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는 놀라운 역주행을 이루어냈다.
각종 모바일 게임 커뮤니티에 '킹스레이드'에 대한 입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중순이다. 여타 모바일 수집형 게임과 비교하더라도 월등한 수준의 3D 캐릭터 모델링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 캐릭터들을 얻기 위해 전혀 과금을 할 필요가 없다는 소위 '갓겜'이 등장했다는 것. 기존의 캐릭터 수집형 게임들은 전부 뽑기를 통해 확률적으로 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확률 의존형 게임에 지쳐있던 유저들은 '킹스레이드'의 이런 시스템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혜자게임'이기만 해서는 높은 매출 순위를 기록할 수 없다. '킹스레이드'의 높은 매출성과에는 장기적인 관점의 과금 모델이 있었다. 정해진 금액으로 원하는 캐릭터를 얻을 수 있지만 이렇게 얻은 캐릭터의 성능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전용 무기가 필요하다. 전용 무기는 뽑기를 통해 획득할 수 있으며, 게임 내 재화로도 뽑기가 가능하지만 그 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무기를 뽑기 위해 과금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출시 초기에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달리 '킹스레이드'가 이런 큰 그림을 그린 데에는 게임 본연의 재미를 제공할 수 있다면 수익은 그에 맞게 따라 올 것이라는 개발사의 믿음이 있었다. 카툰렌더링 기반의 깔끔한 캐릭터 모델링과 레이드의 재미, 모바일게임에서는 드물게 스토리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여기에 1달에 6번 정도 업데이트를 할 정도로 유저들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게임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등 유저들로 하여금 게임에 빠지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출시 초반 매출 순위 70위권에 위치함에도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고 꾸준히 재미있는 게임을 위해 노력한 끝에, 마침내 유저들의 입소문을 타고 매출 상위권에 오르는 기적을 달성했다. 아무런 마케팅 없이 입소문 하나만으로 매출 상위권을 달성한 '킹스레이드'는 현재도 계속해서 게임 본연의 재미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흥행은 타이밍, Playrix '꿈의 집'
한편, 올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게임이 등장했다. 시장의 대세처럼 화려하고 예쁜 여자 캐릭터를 내건 것도 아니거니와 그래픽도 기존의 화려한 게임들과 비교하면 부족해보이기만 한 Playrix의 '꿈의 집'이 그것이다. '꿈의 집'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17위를, 앱스토어 매출 순위 8위를 기록하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꿈의 집'의 의외의 선전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꿈의 집'이 어떤 게임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꿈의 집'은 퍼즐 게임으로 3매칭 게임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서 별을 모아 주인공 오스틴의 저택을 리모델링하는 게임이다. 다양한 3매칭 퍼즐과 현관, 주방 등의 다양한 장소를 스스로 꾸미는 재미와 소셜 요소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퍼즐 게임의 특징과 집을 꾸며 나가는 확실한 목표 부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게임을 하게 만들고 다음 스테이지로 도전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 이 게임의 큰 매력 요소다.
스테이지에 처음 입장하는 비용은 무료지만, 한번 클리어에 실패하고 나면 입장에 하트를 소모하게 된다. 문제는 이 하트의 충전시간이 30분으로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친구들에게 하트를 요청해서 받을 수도 있지만 게임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수직상승하기 때문에, 최대 충전 가능한 양인 하트 5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결국 유저들은 게임 내에서 소액결제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골드로 하트를 충전하느냐, 아니면 하트가 다 찰 때까지 손가락만 빨며 기다리는가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루 일과를 진행하는 동안 틈틈이 게임을 하는 것이라면 30분은 긴 시간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올해에는 무려 10일간의 연휴인 추석 연휴가 있었다. 시간이 남으면 남았지 부족할 리는 없었을 터,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시간이나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전을 부치고 난 뒤 쉬는 시간 동안의 30분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여기에 게임도 적절하게 우리의 승부근성을 자극하니 하트를 충전하고 아이템을 사기 위해 흔쾌히 지갑을 열었던 유저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 계속해서 매출 순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꿈의 집'이 추석 연휴를 맞아 성황을 이룬 배경에는 유저들의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재들의 추억을 자극한 원작의 모방, 재현, 라인콩코리아 '대항해의 길'
2017년 상반기 입소문의 주역이 '킹스레이드'였다면, 하반기에는 '대항해의 길'이 입소문을 타고 흥행몰이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특히 과거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 대한 향수가 있는 30~40대의 이른바 '아재'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진 것이 큰 특징이다. '대항해의 길'은 바다 위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해, 모험, 무역, 해상 전투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출시 초기 양대 마켓 인기게임 1위에 이어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10위권의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대항해의 길'은 이 게임의 롤모델이었을 '대항해시대'를 완벽하게 모방하며 대항해시대를 플레이 했던 아재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출시 초기부터 '대항해시대'의 느낌을 모바일로 재현하겠다고 공헌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전투에 집중되어 있던 기존의 MMORPG와 달리 항해, 탐험, 무역 등 기타 콘텐츠만으로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 여급에게 선물을 줘 친밀도를 올리거나 항구에 투자를 하여 나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다는 점 등 '대항해시대'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냈다.
이처럼 충실한 모방은 '대항해시대 온라인' 이후로 명맥이 끊겨버린 '대항해시대' 시리즈에 대해 추억과 향수를 가지고 있던 아재 유저들에게 제대로 통했다. 출시 이전 별다른 대형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CBT부터 '대항해시대'의 모바일 버전이 등장했다는 내용의 글들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며, 정식 출시 이후에는 더욱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다.
여기에 전투가 주가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컨트롤이 필요 없다는 점도 아재 유저들에게 어필했다. '대항해의 길' 관련 커뮤니티에는 전투가 존재하지만 메인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탓할 필요가 없어 좋다는 의견들도 많았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조직을 구성하여 움직이는 등의 시스템에 주력하여 아재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기자가 지하철 퇴근길에서 '대항해의 길'을 플레이하고 있을 때, 뒤에서 어떤 아저씨의 시선이 자꾸만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 확실한 타겟층과 충실한 원작 고증으로 아재들의 감성을 자극한 '대항해의 길'은 이번 대륙 업데이트를 통해 다시금 매출 상위권에 안착했다.
게임 본연의 재미가 결국 성공의 열쇠다
2017년 혜성처럼 등장한 의외의 게임들의 키워드는 결국 '게임 본연의 재미'이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설명에 비해 다소 당위적인 결론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기본적인 요소가 결국은 성공의 비결이다. '소녀전선'은 캐릭터의 매력과 전략적인 재미를 바탕으로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과금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캐릭터 수집형 게임인 킹스레이드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와 수준 높은 3D 모델링으로 유저들의 입소문을 탔다. '대항해의 길' 역시 대항해시대를 완벽히 모방하며 아재들의 감성을 자극했으며, 추석 연휴를 맞아 성황을 이룬 '꿈의 집' 역시 게임이 주는 본연의 재미와 특유의 성취감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적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 등장한 의외의 게임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면 유저와 매출은 자연스레 뒤따라 온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최근 출시되는 많은 게임들의 경우 여전히 당장 최대의 수익을 뽑아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 아쉽다. 게임의 재미를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온갖 패키지들이 나와있는 결제창을 들이미는 경우도 허다하며, 일단 돈을 써야 게임이 원활하게 플레이 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일부 개발사들의 조급한 태도에 지친 유저들은 등을 돌리고,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게임들이 다시금 재조명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꾸준하게 '게임 본연의 재미'를 추구하는 의외의 게임들이 등장하는 한 상황이 언젠가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유저들에게 여유를 주고 과금을 선택의 영역으로 돌려 성공하는 게임이 많아질수록 모바일게임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도 바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8년에는 이런 의외의 게임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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