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주도로 흘러갔던 모바일게임 업계와 달리, PC와 콘솔 시장에서는 중소, 인디 개발사와 대기업 간의 경쟁이 다소 치열했던 한 해였다. '스팀'이라는 게임 플랫폼을 통해 다소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도 자신들의 게임을 소개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작년 10월 이후로 급부상한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의 등장으로 방송을 통해 유행을 타게 된 게임들도 다수 등장했다.
2017년 한 해에만 수십에서 수백 개가 넘는 게임들이 출시된 바, 이중에서 그 누구도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던 게임들도 등장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흥행을 이끌어낸 의외의 게임들, 과연 이 게임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복고풍 감성으로 승부한다, 컵헤드
지난 'E3 2015'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어 잊혀져 가던 스튜디오 MDHR의 '컵헤드'는 12월 말, 스팀스파이 집계 기준 약 114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인디게임으로서는 독보적인 흥행기록을 세운 '컵헤드'의 성공을 예상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비주류 장르로 내려선 2D 횡스크롤 슈팅 액션 게임이라는 점도 그러했으며, 편리한 컴퓨터 작업을 두고 굳이 손으로 한땀 한땀 작업을 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효율적이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컵헤드'는 특유의 분위기와 게임성으로 이런 우려를 단번에 종식시켰다. 193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게임으로 가져온 듯한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그래픽과 빅밴드를 채용하여 만들어낸 1930년대 재즈 풍의 음악은 게임 특유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팬층을 만들 정도로 큰 호평을 받았다. 여기에 개발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가득 담겨있는 보스와 스테이지 구성 역시 게임의 큰 장점 중 하나이다.
단순히 분위기 뿐만 아니라 오락실에서 플레이하던 2D 횡스크롤 액션 슈팅의 게임성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점도 유저들에게 잘 먹혔다. 각 보스들의 난이도는 기존의 게임들에 비하면 높은 편이지만, 시간을 들이고 여러 번 도전한다면 충분히 공략이 가능하게끔 구성이 되어있다. 여러 번 도전하고 게임을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성취감까지, 게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충실함으로서 컵헤드는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개발자인 몰덴하우어 형제는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집을 담보로 걸 정도로 게임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 도박은 결국 성공으로 이어졌다.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재밌게 만드는 게임을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겨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개발자의 이런 믿음이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런 판매량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인터넷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다,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컵헤드'를 개발한 몰덴하우어 형제가 '유저들을 어떻게 재미있게 할까'에 대해 고민했다면 통칭 '항아리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Getting Over It with Benett Foddy(이하 Getting Over It)'을 개발한 베넷 포디는 '어떻게 하면 유저들을 고통스럽게 할까'에 대해 고민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 인터넷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유명세를 타고 이름을 알린 'Getting Over It'은 '유저 친화적'이라기보다는 '유저 적대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한 게임이지만, 12월 말 스팀 스파이 집계 기준 34만 9천 명이 다운로드하는 등 흥행 열풍이 불고 있다.
게임은 마우스로만 플레이하며 망치를 들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해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순한 구조이다. 그러나 플레이하는 사람의 편의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불편한 조작감,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게임 초반으로 돌아가버리는 여러가지 함정들, 여기에 실수할 때마다 흘러 나오는 제작자의 약 올리는 듯한 나레이션까지, 플레이어의 멘탈을 붕괴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게임 곳곳에 숨어있다. 팔과 다리를 따로 움직이며 달리기를 해야하는 게임인 'QWOP'를 통해 좌절감을 안겨줬던 개발자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게임이다.
이처럼 즐겁게 하기 보다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집어 던져버리고 싶은 게임이 유례없이 흥행한 데에는 '인터넷 방송'이 큰 몫을 했다. 올 12월 초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를 통해 'Getting Over It'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들이 등장했다. 게임 특유의 난이도와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요소들로 인해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유행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스트리머가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재미를 느끼다가, 이내 자신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보게 되면서 지금의 흥행 돌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제작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Getting Over It'은 당초 패키지 상품인 '험블번들'에 포함할 게임으로 개발되었다. 그렇기에 '비상업적'이면서도 '불친절한' 게임으로 개발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런 '유저 적대적' 요소들이 인터넷 방송의 소재로 사용되고, 유저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매니아 게임에서 A급 타이틀로, 니어 오토마타
한편, 2017년에는 전작의 흥행 부진을 딛고 일어나 당당히 A급 타이틀로 올라선 게임도 있었다. 스퀘어에닉스가 유통하고 플래티넘게임즈가 개발한 '니어 오토마타'가 그것. 전작 '니어 레플리칸트'가 뛰어난 BGM과 심오한 스토리로 매니아들에게 호평은 받았으나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에 개발자들까지도 정식 후속작인 본 게임 역시 마니아 층에게 어필하는데 그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작부터 지속적으로 호평을 받아왔던 OST와 게임의 대표 캐릭터인 '2B'의 디자인과 모델링으로 큰 관심을 모았고, 여기에 스토리에서는 기존의 심오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한편, 화려한 액션 연출과 화면 구성, 시점 변화 등으로 2B라는 캐릭터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호평을 받았다. 대중성을 더하고 작품 내적인 요소를 강화한 '니어 오토마타'는 발매 첫 주에 20만장을, 9월 21일에는 출하 및 다운로드 합계 200만 장을 돌파하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특히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요코오 타로 특유의 스토리이다. 그의 첫 작품 '드래그 온 드라군'부터 이어져 온 그만의 심오하고 우울한 이야기들이 대중들에게 제대로 통한 것. 여기에 좋은 스토리텔링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기술적인 측면이 부족했던 요코오 타로와 기술적인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스토리와 연출에서 아쉬움을 보였던 플래티넘 게임즈의 협력으로 인해 한층 더 보완된 게임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자칫 아는 사람만 아는 매니아 층 게임으로 남아있을 뻔했던 '니어' 시리즈는 단번에 A급 타이틀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 의외의 게임의 탄생에는 자신이 만들고자하는 게임을 끝까지 고수했던 요코오 타로의 고집과 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었던 플래티넘 게임즈와의 만남이 있었다.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연출, 'What Remains of Edith Finch'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처럼 개성 넘치는 캐릭터나 화려한 액션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과 연출 하나로 스팀 스파이 집계 기준 약 118만 장의 판매를 기록한 게임이 있다. 자이언트 스패로우에서 개발한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 'What Remains of Edith Finch', 주인공 에디스 핀치의 눈으로 핀치 가문 구성원들의 생애를 담담히 그려내는 작품이다.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특유의 스토리텔링이다. 가문 구성원들은 모두 길게 살지 못하고 사고로 죽게 되는 운명을 타고 난다. 이들의 기구한 이야기를 가문의 막내 에디스 핀치가 가족들이 살던 옛 집으로 돌아가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가운데 펼쳐낸다. 삶과 죽음을 통해 인생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는 동시에,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도 상당하기 때문에 금세 몰입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연출 역시 이에 걸맞게 상당하다. 때로는 만화책 속 이야기를 다루면서 카툰렌더링 그래픽으로 게임이 진행되기도 하며, 게임 중독을 겪고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진행할 때는, 나도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텍스트 배치 또한 훌륭하다. 화면 하단에 텍스트를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게임 곳곳에 잘 스며들 수 있게 만들어 플레이어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한편, 게임 자체의 미학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What Remains of Edith Finch'는 이처럼 화려한 액션이나 연출 없이 잔잔한 게임 진행과 심오한 메시지로 유저들의 호응을 얻었다.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 위주의 게임에서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연출을 통해 차별화를 노린 점이 이 게임의 성공 비결이다.
2017년의 의외의 게임들을 돌아보며...
2017년 우리에게 나타난 의외의 게임들은 저마다의 특색있는 분위기를 추구하고 있다. '컵헤드'는 1930년대 셀 애니메이션 감성으로 통하는 게임 분위기를 구축했으며, '니어 오토마타'는 '드래그 온 드라군'에서부터 이어져오던 제작자 특유의 감성을 정립하였다. 'What Remains of Edith Finch' 역시 특유의 연출과 분위기로 무장하고 있다. 'Getting Over It'에는 유저들의 고통을 극대화시키며 성취감과 상실감이라는 게임 본연의 목적을 담아내고자하는 제작자의 철학이 잘 담겨있었다.
또한 2016년 후반부터 급부상한 인터넷 방송의 힘도 실감할 수 있었다. '컵헤드'의 경우 복고풍 장르에 대한 감성을 가지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감성을 자극한 부분도 있지만, 인터넷 방송에서 통칭 '스트리머'들이 게임 플레이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Getting Over It'의 흥행 돌풍 역시 인터넷 방송의 힘이 컸다. 이처럼 인디게임들의 새로운 활로로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17년 한해가 지나고 2018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가올 2018년에는 또 어떤 의외의 게임들이 우리들을 즐겁게 해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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