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노년을 지켜보는 것은 조금 쓸쓸한 일이다. 거침없이 적들을 때려 부수고 총알 한 두개 정도는 맞아도 금세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영웅도 세월 앞에서는 무력하다. 나이가 든 탓에 상처도 잘 아물지 않으며, 잘 갖춰져 있던 근육들도 줄어들어 몸은 앙상하게 변해간다.
그런 영웅이 다시 한번 세계를 구하기 위해 늙은 몸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2008년 플레이스테이션3 전용 타이틀로 발매된 '메탈기어 솔리드4 건즈 오브 더 패트리어트'는 노병이 되어버린 솔리드 스네이크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루는 한편, 기존 시리즈의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영화에 버금가는 연출을 통해 스토리를 진행하는 한편, 깔끔한 마무리를 통해 오랜 세월 시리즈에서 고생했던 영웅 '솔리드 스네이크'를 보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그런 '메탈기어 솔리드4'가 일본 유명 SF 작가 이토 케이카쿠에 의해 소설로 재탄생 되었다. 이토 케이카쿠는 2007년에 데뷔, 2009년에 폐암으로 사망하여 작품 활동 기간은 짧은 편이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아직도 일본 SF의 명작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는 특히 '메탈기어' 시리즈의 팬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메탈기어' 시리즈 동인지를 인상깊게 읽은 코지마 히데오가 제작 중인 2편을 먼저 플레이할 수 있게 한 일과 이토 케이카쿠가 세상을 떠난 뒤 출시된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를 그에게 헌사한 것은 유명한 일화.
그런 그가 집필한 소설판 '메탈기어 솔리드4'는 원작의 스토리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여기에 전작 시리즈와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는 소설 내에서 따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원작 시리즈의 단순한 소설판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느꼈다.
원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점의 변화다.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원작과 달리, 소설판에서는 그를 보조하는 프로그래머 '오타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인 이토 케이카쿠는 후기에서 게임에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소설로 옮기는 데에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화자를 설정해야 하지만, 가공의 제 3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원작을 파괴할 우려가 있어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오타콘'으로 화자를 변경시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소설의 가능성은 이야기 이외의 장소에서도 깃드는 것이라는 이토 케이카쿠의 말처럼, 소설판 '메탈기어 솔리드4'에서는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부상을 입고 잠든 스네이크에게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주변 인물들의 대화와 감정, 작중 등장인물인 나오미의 정체를 느낄 수 있는 복선, 몸이 찢어져가는 고통을 겪는 스네이크를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오랜 친구의 감정 등 관찰자를 화자로 설정했기에 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매력적이었다.
다만 이야기 전개상 오타콘이 화자로 등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스네이크의 시점으로 시점이 변화하는데, 이 변화 과정이 다소 매끄럽지 않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화자가 변하는 데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은 아쉬웠다.
이 밖에도 '메탈기어' 시리즈 특유의 CQC 액션이 글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부분도 아쉬웠다. 근거리 전투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심리전과 긴장감에 대한 묘사를 생략하고 단순히 '두 등장인물이 CQC를 했다'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다소 있었던 점도 아쉽다.
'메탈기어' 시리즈의 '덕후'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메탈기어 솔리드4'의 공식 소설을 집필한 이토 케이카쿠. 시리즈에 대한 그의 애정이 담긴 만큼, 소설판에서는 원작 게임의 이야기가 충실히 담겨있으며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들도 전체 내용을 알기 쉽게 구성하여 하나의 소설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됐다.
여기에 스네이크를 지켜보는 친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원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감정과 이야기들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도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CQC의 묘사가 부족했던 점이나 시점 전환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점은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게이머들과 함께 나이를 먹은 스네이크의 마지막 이야기에 충분히 어울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새로운 이야기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이토 케이카쿠의 새로운 소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아쉬워졌다. 노병은 비록 죽지만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처럼, 이토 케이카쿠 역시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 |
| |
| |
| |
|
관련뉴스 |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