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왓 스튜디오에서 '야생의 땅: 듀랑고'의 콘텐츠 디자인을 담당한 양회진 디자이너가 '2018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석, '창발과 통제 그 중간 어딘가'라는 강연을 통해 듀랑고의 콘텐츠 변화 과정을 공개했다.
좋은 '듀랑고' 콘텐츠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야생의 땅: 듀랑고'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공룡 시대로 워프한 현대인들의 생존기를 그린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야생의 세계에서 직접 아이템들을 만들고 다른 생존자들과 교류하며 고난과 갈등을 헤쳐나가야 한다. 샌드박스 MMORPG라는 장르에 맞게 유저들은 하나의 문제 직면할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양회진 디자이너는 이런 '듀랑고'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창발'과 '통제'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게임의 자유도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오래 즐길 수 있어야 하지만 유저들이 게임 시스템에 쉽게 적응하기 위해 복잡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는 듀랑고 내의 유저들의 선택이 의미를 가지고 이것이 창발적인 결과를 낳는 구조가 반복되도록 듀랑고의 콘텐츠를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창의적 콘텐츠의 폭발, FGT
그는 FGT 당시의 듀랑고 내의 콘텐츠를 '발산'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가리개라는 재료에 나뭇잎을 더할 경우 나무옷이, 가죽을 넣으면 가죽옷이 나오는 등 초기 버전의 '듀랑고'에서는 재료에 따라 다른 제작품이 나왔다. 또한 같은 완성품인 '활'을 만드는 경우에도 다양한 제작 방법을 마련했으며 가죽이 마른 가죽인지, 젖은 가죽인지, 제작의 성공 정도에 따라서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등 유저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디자인했다.
그러나 이처럼 유저들의 창의성을 보장한 결과, 유저들이 콘텐츠의 규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양회진 디자이너는 이를 '창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라고 표현했다. 이 밖에도 의미있는 즐길 거리가 없다는 점, 수집이나 성장 등의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들도 등장했다. 또한 자유도를 보장하기 위해 레벨에 따른 제약이 없다보니 콘텐츠의 수명이 짧아지는 문제가 발생했으며, 저급 제작물이나 고급 제작물에 필요한 재료의 수가 같아 1주일 정도 게임을 플레이하면 게임 내의 모든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문제가 발생했다.
콘텐츠를 보강했던 3차 LBT
양회진 디자이너는 지난 FGT에서 드러났던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우선 '듀랑고' 내의 콘텐츠 수명을 늘리고 일정한 규칙을 부여했다. 먼저 각 재료의 단계를 수직적으로 구분, 금속 막대의 상위 단계인 연결 부품을 추가하는 등 가공 제작을 통해서만 재료의 단계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고급 제작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상위 단계의 재료가 필요하도록 했다.
여기에 맡김 제작이라는 시스템을 추가했다. 가죽 말리기나 광석 제련 등 시간이 필요한 제작들이 추가되었으며 유저는 맡김 제작 시스템을 통해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시간, 재료, 도구 및 건설 스킬 등의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양회진 디자이너는 특히 맡김 제작을 통해 듀랑고 내의 핵심 자원인 공간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고 밝혔다. 더 많은 맡김 제작 구조물들을 건설하기 위해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공간을 소모하게 된 것.
제작에 필요한 재료의 수가 동일하다는 문제를 개선하는 과정도 공개되었다. 양회진 디자이너는 우선 고급 제작물로 가면서 필요한 비용을 증가하는 한편, 다른 분류의 고급 제작물들끼리의 비용은 비슷하게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서는 각 재료들의 가치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노력값'이라는 수치가 새롭게 등장했다.
'노력값'은 재료의 채집부터 제작까지 소모되는 모든 노력을 임시적인 값으로 치환한 것으로, 아무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의 노력값이 1이라면 특정 군락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마의 경우 노력값이 2로 배정되는 것. 각 재료들의 노력값을 통해 비용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노력값들의 합이 제작품의 제작 비용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다.
이처럼 3차 LBT에서 문제점들을 보완한 결과, 콘텐츠의 소모 속도가 줄어들었으며 상위 제작물을 만들기 보다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유저들은 상위 제작물을 만들면서 힘든 만큼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재료, 도구, 공간, 재화 등 종합적인 콘텐츠가 소모되며 제작법과 아이템에 어느정도의 기준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양회진 디자이너는 '노력값'이 실패한 디자인이라고 밝혔다. 아이템의 가치가 단순히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노력만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 그는 일례로 '개선 손잡이'에 대한 유저들의 피드백을 공개했다. 금속칼을 만들기 위해서는 칼날, 연결부품, 개선 손잡이가 필요했는데, 대부분의 유저들이 금속 칼날, 연결 부품, 손잡이의 순서대로 아이템들을 만들어서 결합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인 개선 손잡이에서는 많은 재료들이 필요했는데, 칼의 정체성이라 볼 수 있는 칼날에 비해 손잡이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지면서 유저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게임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
결국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레시피를 간결하게 바꾸고 중요한 핵심 재료를 만드는 데에 더 많은 재료가 필요하도록 변경하는 등의 수정이 이루어졌다.
한편, 제작에 있어 규칙을 부여한 결과 선택이나 변화 요소가 약해졌다는 문제 역시 드러났다. 제작에 필요한 재료의 수가 고정되어 있으며, 결과물의 능력치 역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아이템을 만들더라도 자신이 변화시킬 수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아이템을 직접 제작하기도 전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을 즐기는 재미가 줄어들게 되는 것. 양회진 디자이너는 "창발과 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선택의 폭을 넓혀라, CBT 빌드
CBT 단계에서의 목표는 분명했다. '플레이어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를 위해 재료의 선택에 따라 아이템의 개성이 드러나게 콘텐츠를 디자인하는 한편, 재료부터 개조까지 유저가 전부 선택할 수 있게 제작 시스템을 개편하는 등 단조로운 LBT에서의 제작 방법을 탈피하기 위한 실험들이 진행되었다.
양회진 디자이너는 먼저 재료를 다양화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에는 공룡의 다리뼈는 개체 간 특징이 없이 전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위해 재료에 직접적인 효과를 부여하는 방안이 제안되었지만, 공격력 강화 능력을 지닌 뼈를 음식에 사용하는 등의 경우의 수가 많아 직접적으로 개성을 주는 방법은 기각되었다.
직접적인 개성 대신 '속성 매트릭스'라 불리는 시스템이 등장했다. '가벼움'이라는 속성을 지닌 재료를 무기로 만들면 '정확도'가 증가하고 이를 의상으로 만들 경우 '회피'가 증가하게 되는 등 제작 방법에 따라 각 속성이 다양한 효과로 변화하게 된다. 잠재된 속성과 성능으로 구현된 속성을 바탕으로 유저들은 자신이 원하는 성능을 위해 자원을 선택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가공, 제작 방법에 따른 속성 변화도 추가되었다. 가죽에 무두질을 하는 경우 섬유 가공을 통해서는 밀도가 올라가고 명반 무두질을 통해서는 무게가 가벼워지는 등 유저들이 원하는 가공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하였으며 옷에 주머니를 추가하거나 털을 덧대는 등의 개조법들도 다변화하여 선택의 폭을 보다 넓히게 되었다.
그러나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정답이 하나로 고정된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유저들이 특정한 방식의 가공만을 선호해 메타의 고착화가 발생하게 된 것. 이로 인해 유저들의 기대감이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재료나 가공의 속성에 따른 변화값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잠재 속성만 보고서도 결과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제작을 시도하지 않게 된다.
무작위가 주는 즐거움, 라이브 서버
행동에 따른 결과가 예측 가능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저들이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확정 보상을 제공하는 경우 반복 작업으로 인해 유저들이 게임을 숙제처럼 느끼게 되며 완전하게 무작위로 보상을 제공할 경우 유저들의 성취감이 사라진다. 양회진 디자이너는 "그동안의 '듀랑고'는 확정 보상의 영역이 너무 컸다"라며 "확정 보상을 조정하여 유저들에게 기대감을 줄 필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먼저 무작위 보상을 위해 '무작위 잠재속성'이 추가되었다. 다리뼈는 항상 같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던 기존의 시스템과 달리 라이브 서버에서는 자연물을 채집할 경우 무작위로 '뾰족함' 등의 잠재속성이 붙게 된다. 또한 잠재속성 만으로 얻을 수 있는 속성들도 있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채집 과정에서 기대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
여기에 '희귀 속성'을 추가하여 적중 시 출혈 효과를 부여하는 등의 특별한 성능들을 추가하였다. 기존의 '잠재속성'의 경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희귀 속성'의 경우 어떤 능력이 발현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제작이 완료되는 순간까지 유저들이 기대를 하게 된다는 것. 여기에 희귀한 속성을 지닌 무기들이 등장하면서 이슈를 생산하고 유저들의 성취감 또한 높일 수 있었다.
듀랑고 콘텐츠는 아직 미완성이다
강연을 마치면서 양회진 디자이너는 "듀랑고의 콘텐츠는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말했다. 실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로부터 밸런스 측면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신규 콘텐츠의 부족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도 나오는 상황.
이에 양회진 디자이너는 기존 콘텐츠를 보강하는 한편, 새 콘텐츠를 추가하는 등 두 축을 통해 '듀랑고'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존 콘텐츠 중에서는 신규 속성, 제작법 등이 추가되고 농사와 요리 시스템이 개편되며 전투 역시 개선된다. 그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잘 가꾸고 싶지만 항상 하나를 만들고 나면 다른 이슈가 발생해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라며 "동물의 교배나 교감, 신규 스토리 팩 등의 새로운 콘텐츠가 계속 추가될 예정이다. 속도가 조금 느리더라도 게임을 사랑해주고 기대해 달라"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번에 완벽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큰 계획을 세운 뒤 작은 단위부터 콘텐츠를 쌓아 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대와 변칙을 섞을수록 재미있는 콘텐츠가 나오며 발산 후 이를 제어하기보다는 어느정도 상황을 제어한 뒤 자유를 발산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고 유저들의 거부 반응이 적다는 점 역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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