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흔히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라고 이야기한다. 미래에 일어날 끔찍한 일을 미리 알고 과거로 돌아가 해당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나간 시간은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결코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간의 염원을 담아 영화나 게임을 비롯한 각종 문화 콘텐츠에는 '시간'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특히 '루프물'에서는 하루나 일주일 등의 일정 시간 간격이 반복되는 가운데, 시간이 반복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 사건을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 특징.
인트라게임즈가 한국어 번역판으로 발매한 '섹시 브루테일'은 토요일 하루의 12시간을 반복하며 대저택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사건들을 해결하는 '루프물'이다. 플레이어는 피투성이 소녀로부터 알 수 없는 힘을 받은 손님 '부네'가 되어 저택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살인사건들을 해결해야 한다.
기본은 미행과 탐색
'섹시 브루테일'에서는 거대한 저택에서 12시간 동안 일어나는 살인 사건에서 피해자들을 구해야 한다. 저택은 각각의 방으로 단위가 나누어져 있으며, 게임 내 설정 상 '부네'는 다른 피해자들은 물론 저택의 직원들과 접촉할 수 없다. 각각의 방은 문을 통해 엿볼 수 있으며, 다른 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통해서도 대화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저택의 크기가 거대하고 구해야 하는 인물들도 많기 때문에 자칫 플레이어가 느끼는 부담감이 클 수 있지만 '섹시 브루테일'은 구해야 하는 피해자들의 순서를 정하고 한번에 하나의 피해자를 구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게임 시스템을 구성했다. 플레이어가 게임 초반부터 헤매지 않도록 배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구해야 하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나면 해당 피해자의 뒤를 쫓으며 무슨 이유로 죽은 것인지, 죽기 전까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해야 한다. 엿보는 것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미행하는 대상을 놓치는 경우도 있으며,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를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몰래 숨어서 정보들을 캐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치밀하게 구성된 타임라인
12시간 동안의 저택 내의 모든 사람의 움직임은 마치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 각자 개별적인 이유들로 저택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다른 연관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게임을 진행하고 피해자들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각 인물들의 동선과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게임 진행 도중 갑작스런 정전이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피아노 소리와 노래소리 등 사소하게 지나갈 수 있는 모든 부분들이 결국에는 서로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게임을 진행할수록 진상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이벤트들이 반복되는 '루프물'의 특성상 단조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섹시 브루테일'은 치밀하게 구성된 타임라인과 이를 통해 비밀을 파헤쳐가는 구성을 통해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매력적인 분위기를 느긋하게 즐기자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특유의 분위기이다. 피해자들이 살해 당하는 방식이 잔인하지만, 만화 풍으로 구현된 3D 그래픽 덕분에 표현이 다소 완화되었다. OST 역시 수준급이라 사운드트랙을 따로 가지고 다니고 싶을 정도. 게임을 전부 클리어한 뒤에도 OST가 한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게임은 이런 분위기를 최대한 즐기기 위해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택 내의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경우 발생하는 패널티가 미미하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면 그냥 누군가 있는 방을 가로질러 건너도 될 정도. 또한 게임 내에서 사망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게임 오버에 대한 부담 없이 언제라도 시간을 돌리며 느긋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점도 좋았다.
피해자들의 사고를 방지하는 방법 역시 퍼즐게임답게 한가지로, 게임 내에서 인물들의 대화나 동선에 집중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시간을 여러 번 돌리지 않아도 금세 문제의 해결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도 많지만, 해결 방법을 파악하더라도 인물들의 대화나 행적을 끝까지 추적하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의 본질은 사건의 해결보다는 게임이 제공하는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밝혀 나가는데 있다.
수집 요소에 대한 설명 부재와 프레임 저하 현상은 아쉽다
'섹시 브루테일'에서는 손님들의 초대장과 약 50장 정도의 트럼프 카드를 모을 수 있다. 특히 트럼프 카드의 경우 전부 모았을 경우 숨겨진 엔딩을 감상할 수 있지만 게임 내에서는 카드와 관련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일부 유저들은 카드를 모을 필요성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초대장은 메인 스토리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한 손님들의 자세한 인적사항을 알려준다. 초대장은 각 손님이 사망한 뒤 시체를 조사하면 얻을 수 있는데, 보통 손님이 사망하면 그 뒤의 시간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바로 시간을 돌려버린다. 초대장의 존재 역시 게임 내에서 알려주지 않아 아쉬웠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저택이 워낙 크고 방도 많기 때문에, 일부 방에 들어가면 프레임이 저하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게임 진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발생하는 프레임 저하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수수께끼가 가득한 저택에 어서 오세요
게임의 전체 플레이 타임은 6시간 정도로, 최근 출시된 대형 게임과 비교하면 짧은 분량이다. 게임은 한정된 시간 내에 같은 장소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타임라인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저택에 숨겨진 더 큰 비밀들을 파헤쳐 나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여기에 OST를 비롯한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당장의 문제 해결보다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게임의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퍼즐이나 잠입 액션 게임에 자신이 없는 유저들이라도 부담없이 '섹시 브루테일'의 매력적인 세계관과 이야기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토요일의 12시간 속에서 '부네'는 모든 손님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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