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애니메이션 실사판의 역대급 퍼포먼스 '인랑', 일반 관객의 실망도 이해된다

등록일 2018년08월01일 12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을 원작으로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만든 영화 '인랑'을 봤다.

 

오키우라 감독 및 각본을 맡은 오시이 마모루의 팬으로서 이 영화는 시사회에서 볼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보며 제대로 음미해야겠다고 생각해 시사회도 넘겼는데, 갑작스런 해외출장 스케쥴 때문에 개봉 후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겨우 극장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개봉 후 쏟아지는 악평들을 이미 봤기에 기대를 많이 낮췄던 게 사실이다.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일본에서 공수해 와 밤새 몇번이고 돌려보던 오시이 마모루 실사영화 박스셋, '켈베로스', '붉은 안경', '토킹 헤드'. 그리고 일본에서 보며 너무 당황스러웠던 '입식사열전'을 떠올리며 그런 영화를 다시 보게 되어도 놀라지 말자고 다짐하고 인랑을 감상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사람들의 악평이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액션도 훌륭하고 슈트도 멋지게 재현했고 배우들도 나름 열연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키우라 감독의 애니메이션 인랑을 보며 '이건 왜 이럴까', '여기서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라는 의문이 생겼던 것이 김지운 감독판 인랑을 보니 많이 해소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옮긴 실사영화로서는 매우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줬고 원작 이해를 돕는 영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단점이기도 했다. 아마 원작 인랑을 보지 못했다면 이 영화를 보며 인물들의 감정이 와닿지 않고 뜬금없이 느껴졌을 것 같다. 사건 진행도 잘 이해가 안되고 '왜 저러지?'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을 듯 싶다.

 



 

김지운 감독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판권을 가져와 실사영화로 만들 때 내용을 바꾸고 캐릭터를 바꾸고 감독의 색을 입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었던 과거 사례들과 달리 일본식 '애니메이션 실사화'를 시도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인랑을 그야말로 그대로 실사로 옮긴 것인데, 이 과정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생략되고 간소화된 감정을 배우들이 연기해야 했으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90%가 원작 그대로인데 결말만 바뀌었다. 원작은 그 결말 때문에 제목이 의미를 가지고 완성도가 한층 높아지는 것인데, 김지운 감독은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다 결말만 바꿔놓아 이야기를 조금 엉뚱하게 만들어버렸다. 원작 그대로의 결말이었다면 단순하게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매우 잘 옮긴 사례 정도로 평가해도 되었을 것 같다.

 



 

원작 인랑은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맡아 자신이 만든 실사영화 '켈베로스', '붉은 안경'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오시이 마모루의 실사영화 구 3부작은 연출력 부족, 예산 부족 등으로 싸구려 느낌이 풀풀 나는 특수효과와 허술한 액션, 이해하기 힘든 롱테이크와 시퀀스가 뒤섞인 부조리극이 되어버렸다.

 

긴긴 시간 대사 한마디 없이 등장인물들이 새우를 까먹는 롱테이크 신이나 대학생 시절 '오오~' 하며 봤던 '개의 시점'을 그린 핸드헬드 촬영도 요즘 관객들이 보면 실소가 나올 텐데...

 



 

오시이 감독이 김지운 감독의 인랑을 극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례적으로 한 코멘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영화를 보니 진심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지운 감독의 인랑은 젊은 시절의 오시이 마모루가 머리 속에서 그렸지만 할 수 없었던 영상을 좋은 배우와 많은 예산, 연출력을 동원해 대신 찍어준 듯한 영화였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인랑을 본 일본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좋은 평을 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배우들이 제대로 연기를 하고 멋진 액션이 나오고 제대로 돈을 써서 특수효과를 낸 이런 애니메이션 실사판은 정말 드문 사례니까.

 

들리는 말로는 넷플릭스 버전에서는 편집을 다시 한다고 하는데, 원작과 결말이 같아진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실사판의 전설로 남을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키우라 감독의 애니메이션 인랑에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면, 혹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팬이라면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한번쯤 봐두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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