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개최된 'E3' 현장에서 열린 '레드 어나힐레이션 퀘이크 토너먼트'에서 데니스 퐁(Thresh)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현대 e스포츠의 서막이 오른 지도 어느 덧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흔히 우리나라를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e스포츠가 활성화 되기 이전 이미 1970년대에 최초의 비디오 게임 대회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최됐고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둠'과 '퀘이크' 등의 종목으로 대회가 활발하게 열린적이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와 함께 국내에서 출현한 프로게이머 탄생을 e스포츠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동안 다양한 종목과 스타 플레이어가 등장했고 e스포츠의 저변은 더욱 넓어져 왔다. '트위치' 등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과 맞물린 e스포츠는 멈출 줄 모르고 성장했다.
특히, 최근에는 모바일게임이 발전하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모바일 e스포츠도 활성화 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클래시 로얄'과 '하스스톤', '베인글로리', '서머너즈 워' 그리고 '왕자영요'다.
텐센트와 슈퍼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등 게임업계의 '큰손'들이 하나둘 모바일 e스포츠 시장에 뛰어들어 자사의 모바일게임으로 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상금과 참가 선수 규모 그리고 시청자 수도 PC 기반의 e스포츠 종목에 못지않게 많다.
이렇듯 글로벌 큰 손들이 모바일 e스포츠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국내 모바일 e스포츠 시장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일부 게임사들이 모바일 e스포츠화에 도전했지만 현재 컴투스를 제외하면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
게임포커스는 창간기획을 통해 국내 모바일 e스포츠의 현황과 성공 가능성, 그리고 향후 전망에 대해 살펴봤다.
미개척지 '모바일 e스포츠' 도전하는 게임사들
모바일 e스포츠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수 년 전이다. 포화된 게임 시장에서 e스포츠는 블루오션이며, 그 중에서도 모바일 기반의 e스포츠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곤 했다. 특히 고사양의 모바일 기기의 보급과 LTE 환경의 구축, 모바일게임 개발력의 발달이 겹쳐지면서 기존 PC 기반의 e스포츠에서 벗어난 모바일 e스포츠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높다고 점쳐져 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한민국 게임백서 2017'를 통해 지난 2017년 중국의 모바일 e스포츠 대회 규모가 2016년 250만 달러에서 약 4배 증가한 95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텐센트는 '왕자영요' 리그를 토대로 모바일 e스포츠의 선두주자로 앞서나가고 있으며, e스포츠 저변 확대를 위한 5개년 계획과 약 17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의 투자 금액을 공개하기도 했다.
텐센트 뿐만 아니라 넥슨, 컴투스, 슈퍼셀, 슈퍼이블메가코프,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등 내로라하는 다수의 게임사들이 자사의 모바일게임으로 미개척지인 모바일 e스포츠에 도전해왔다. 대회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상대적으로 짧은 모바일게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새로운 유저 풀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레드오션화 된 현재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차별화되는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국내 모바일 e스포츠는 아직 걸음마 단계
모바일게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름 아닌 특유의 뛰어난 접근성이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이 날 때 잠깐씩 즐기기에 좋다는 것은 PC나 콘솔, 아케이드 게임에 비해 매우 큰 장점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타 국가에 비해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매우 높고 게임 이용률도 높다. 정보통신진흥협회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7월 말 기준으로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약 5,011만 명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1인 1스마트폰 이상의 시대인 셈이다.
또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8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을 즐긴다고 응답한 2,029명 중 88.3%가 모바일 플랫폼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복 응답이 가능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높은 수치다.
액토즈스타즈 김로한 사무국장은 “PC가 없어도 스마트폰은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모바일게임 잠재 고객인 셈이다”라며 “기존의 PC와 콘솔 게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모바일' 단어 의미와 특징을 살린 오프라인 이벤트를 기획한다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뛰어난 접근성을 기반으로, 실력을 갖췄다면 누구나 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인 요소다. 슈퍼셀의 조현조 '클래시 로얄' e스포츠 총괄은 “지난 3월 열린 리그에 참여할 선수를 뽑는 온라인 예선에는 전세계 2,500만 명의 유저들이 참여했으며, 2017년 오픈형 토너먼트는 약 1,200만 시간의 시청 시간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직접 대회를 개최하며 모바일 e스포츠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국내 게임사는 거의 없다. 중국과 북미,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장에서는 모바일 e스포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국내에서는 모바일 e스포츠가 화두에 오른 지 수 년이 지났음에도 컴투스가 '서머너즈 워'로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을 뿐, 이 외에는 여전히 제자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컴투스와 같은 일부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국내 게임사들의 모바일 e스포츠에 대한 시도 자체가 그리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몇 게임사들이 모바일 e스포츠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와 결과물은 거두지 못했다.
높은 인기는 기본, Pay to Win 수익 구조 배제한 게임 필요해
글로벌 시장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모바일 e스포츠 시장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적고 또 의미 있는 결과물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의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바일 e스포츠에 적합한 게임 또는 장르의 발굴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 모바일 e스포츠의 흥행과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관계자들의 공통된 답변은 다름 아닌 '좋은' 종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모바일 e스포츠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게임들은 모두 막강한 유저풀을 보유한 인기 게임이다. ㈜이스포츠커넥티드의 송성창 대표이사는 “'왕자영요'의 경우 일 평균 이용자가 8천만 명 이상이며, 'KPL' 중계의 동시 시청자 수 또한 470만 명에 달한다. 실제로 중국에서 식당에 가면 기다리는 사람들이 '왕자영요'를 플레이하는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현지에서의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많은 유저들이 즐기는 게임이 e스포츠화 하기에 적합하고 그만큼 파급력도 크다는 것이다.
또 액토즈스타즈 김로한 사무국장은 “모바일 e스포츠가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종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내에는 모바일 e스포츠 시장이 형성될 만한 좋은 종목이 없다”고 설명했다. '왕자영요'와 같이 'e스포츠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기를 가진 모바일게임'이 필요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이러한 인기를 가지면서 동시에 e스포츠에도 적합한 게임이 없다는 이야기다.
국내 서비스되는 모바일게임들을 살펴보면 MMORPG와 수집형 RPG, 또는 '모두의 마블' 등 캐주얼 게임의 인기가 높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퍼즐(22.7%)과 RPG(14.2%)를 주로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2개까지 응답 가능)
여기서 e스포츠화를 하기에 다소 적합하지 않은 퍼즐 장르를 제외하고 RPG 장르를 살펴보면,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대부분의 모바일 MMORPG에는 1대1부터 길드전까지 다양한 PVP 콘텐츠들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다. 또 매출 순위 상위권을 늘 차지할 정도로 대중적이며 이름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얼핏 보기에 모바일 e스포츠에 적용하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대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Pay to Win 과금 구조가 e스포츠화의 발목을 잡는다. 공정한 대결이 스포츠의 기본이지만, 국내 게임 중에서는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는 수익 모델을 배제하고 이와 동시에 e스포츠까지 염두에 둔 게임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클래시 로얄', '하스스톤' 등 현재까지도 꾸준히 대회가 개최되고 있는 게임들 조차도 처음 접근은 용이하지만 강력한 '덱'을 완성시키기 위해 일정량 이상의 과금이나 육성 등이 사실상 필수로 여겨지는 등, 프로 진입의 허들이 높다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스포츠는 공정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과금 요소가 게임 밸런스나 운적인 요소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액토즈스타즈 김로한 사무국장은 모바일게임을 서비스하는 게임사들이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에 중점을 두는 등 e스포츠화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김 사무국장은 대회가 운영되는 각 게임의 밸런스에 영향을 주는 극단적인 패치는 지양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바일 e스포츠의 대중화 가로막는 플랫폼의 한계 극복해야
더불어 모바일 플랫폼이기에 존재하는 한계점도 모바일 e스포츠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플레이 하기 쉽다는 측면에서의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조작 자체가 터치 디스플레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교한 컨트롤에 제약이 있고 프로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와 퍼포먼스를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대회를 위해 규격화된 게임 전용 모바일 기기의 출시, 그리고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즐길 때 흔히 사용하는 '트리거'와 같은 보조 기구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게 해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대회 자체가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이기에 논의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이 외에도 플레이하는 선수는 물론이고 시청하는 이용자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스포츠 특성상, PC 플랫폼에 비해 소위 '그림'이 잘 살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자세가 올곧지 못하고, 방송에서 카메라로 선수들을 비출 때에도 얼굴이나 표정 등이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역동적이지 못하다는 점도 해결해야할 과제 중 하나다.
더불어 타 플랫폼에 비해 짧은 게임의 라이프 사이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e스포츠는 게임의 흥행 여부에 따라 함께 울고 웃는 존재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게임 하나를 즐기는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 1,792명중 35.6%(637명)가 1개월 미만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신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게임 시장의 특성상 e스포츠를 정착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e스포츠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철학을 갖고 게임 자체의 완성도를 높여 유저들이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수다.
또한 모바일 e스포츠 자체에 대한 게임사들의 관심도 필요하다. 오피게이밍 권평 총감독은 모바일게임 프로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게임사에 바라는 점은 무엇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모바일게임의 특별함을 살릴 수 있는 대회를 지속적으로 기획 및 개최하고 홍보도 이루어졌으면 한다”라고 주문했다. 잠깐의 홍보를 위한 단발성 대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회가 기획 및 운영되고, 또 앞장서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바일 e스포츠, 발전 가능성 높은 '블루오션'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아직 모바일 e스포츠는 플랫폼에서 오는 특유의 한계점과 해결해야할 과제 그리고 조건들이 많다. 하지만 1인 1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현재 국내 시장에서는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중국이나 북미/유럽과 같이 모바일 e스포츠가 제대로 뿌리내리지는 않은 상황이며, 좋은 종목이나 콘텐츠의 발굴이 이루어지고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되면 충분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난 9월 말 텐센트, OGN, FEG(Fighting Esports Group)가 함께 발표한 '왕자영요' 국내 리그인 'KRKPL'이 이러한 모바일 e스포츠 대회 개최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중국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KPL'의 첫 번째 글로벌 진출 시장이 한국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모바일 e스포츠 시장의 전망과 성장 가능성에 대해 오피게이밍 권평 총감독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e스포츠 시장에서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모바일 e스포츠가 크게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자본 규모가 거대한 북미와 유럽 구단들이 모바일 e스포츠에 속속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또한 슈퍼셀의 조현조 '클래시 로얄' e스포츠 총괄은 “e스포츠라고 해서 다른 스포츠와 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 선수 층의 확대,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 게임 자체의 저변 확대 등이 연결되는 선순환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앞뒤 가리지 않는 '묻지마'식 투자와 대회 유치를 한다고 해서 e스포츠가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유저 층이 두꺼워야 하며, 보는 재미와 하는 재미가 모두 있어야 한다. 또한 플랫폼이 갖는 한계도 극복해야하며, 게임 내 밸런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과금 구조를 통해 스포츠의 핵심 정신인 '공정성'도 지켜야 한다.
많은 조건과 한계점을 이겨내고 뿌리내릴 수만 있다면, '왕자영요'나 '클래시 로얄'과 같이 대회 자체가 그 게임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태동하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국내 게임사들이 모바일 e스포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대회 유치 및 홍보 그리고 e스포츠화에 적합한 게임과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높은 '블루 오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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