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넷플릭스 결제'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넷플릭스에 월 정액을 납부하고 있지만, 게임을 하거나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정작 한달에 넷플릭스에서 보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매달 월 정액 납부일이 다가오면 이를 해지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넷플릭스를 계속해서 구독하는 것은 매달 기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이달의 월 정액의 가치' 상은 '러브, 데스+로봇'에게 돌아갈 것 같다. 별다른 흥미 없이 시청 버튼을 눌렀다가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잡을 만큼 '러브, 데스+로봇'은 강렬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러브, 데스+로봇'은 '파이트 클럽'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연출한 감독 데이빗 핀처와 '데드풀'로 이름을 알린 팀 밀러가 힘을 합쳐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모음집이다. 옴니버스 식 구성이라는 점과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감독을 기용해 다양한 화풍과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점에서는 매트릭스의 외전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애니매트릭스'의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총 18편의 독립적인 이야기들은 저마다 세계관이나 화풍이 확연하게 다르다 보니, 이들 작품을 묶어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러브, 데스+로봇'이라는 이름에 맞게 사랑이나 죽음, 로봇을 다루는 작품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다수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러브'는 아름다움을, '데스'는 폭력과 선정성을, '로봇'은 SF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제각기 따로 움직이는 듯한 '러브, 데스+로봇'의 작품들은 근미래를 다루는 세계관과 과감한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청자들을 처음 맞이하는 '무적의 소니'는 마치 '리얼스틸'을 연상시키는 듯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유혈이 낭자하는 고어한 표현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목격자' 에피소드에서는 디스토피아적인 홍콩을 배경으로 신체의 특정 부위나 주인공의 스트립쇼가 굉장히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등 여타 작품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수위를 자랑한다. 공공장소나 해당 요소에 대해 면역력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다소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수준.
그럼에도 '러브, 데스+로봇'의 비주얼은 아름답다. '아이스 에이지' 에피소드(해당 에피소드에도 일부 3D 애니메이션이 들어있다)를 제외하면 모든 에피소드들이 3D 혹은 2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어 있다. 완전 실사 풍 그래픽을 지향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3D 애니메이션임을 잊어버릴 수준.
개인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흑마법을 통해 소환된 구울과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숨겨진 전쟁' 에피소드와 '행운의 13' 에피소드가 최고 수준의 3D 애니메이션 퀄리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카툰 렌더링으로 사막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해저의 밤'도 인상적.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만큼 몰입감이 상당한 편이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아이디어도 '러브, 데스+로봇'의 매력이다. 각 에피소드들의 분량은 최소 5분에서 10분 이내로,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짧은 편에 속한다. 다소 아쉬울 수 있는 분량을 충족시키는 것이 번뜩이는 아이디어인데 마찬가지로 옴니버스 구성을 가진 '블랙미러'가 치밀한 서사와 반전 요소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전문 이야기꾼이라면, '러브, 데스+로봇'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시시콜콜한 농담에 가깝다. 단편적이지만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늘어놓고 '우리의 생각이 어때?'라는 물음을 건네는 것이 '러브, 데스+로봇'이 관객을 사로잡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무적의 소니'와 '행운의 13', '숨겨진 전쟁'과 '굿 헌팅'은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전체 줄거리를 밝힐 순 없지만, 스팀펑크 세계관의 홍콩과 영국을 배경으로 마법의 힘을 잃은 구미호가 스팀펑크 기술로 로봇이 되어 여성들을 억압하는 남자들을 사냥하러 나선다는 '굿 헌팅'의 이야기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면 '알리타: 배틀엔젤'과도 유사한 분위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 밖에도 완벽하진 않지만 어딘가 엉뚱한 상상력이 담긴 에피소드들도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 놓치지 않고 전편을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러브, 데스+로봇'은 지금까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색채를 지닌 작품이다. 사회가 철저하게 배척하는 폭력성과 선정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잘 만들어진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기 보다는 매력적인 아이디어들의 '물량 공세'로 승부를 보는 점도 기존에는 만나볼 수 없던 새로운 느낌이다. 선정성이나 폭력성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작품에 다소 불만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러브, 데스+로봇'을 어서 시청하는 것이 어떨까. 넷플릭스가 이겼다. 당분간은 월 정액을 놓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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