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월드 게임의 명가, 유비소프트의 '톰 클랜시의 더 디비전 2(이하 디비전 2)'가 지난 15일 드디어 정식 발매됐다. 프라이빗 베타 등 테스트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각종 서버 문제와 게임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웠던 짧은 분량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여전히 재미있는 TPSRPG'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프라이빗 베타를 플레이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전작과 크게 다른 점을 느낄 수 없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새로이 옷을 갈아입은 그래픽은 꽤나 신선했지만, 플레이 측면에서는 별다른 점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야심 차게 선보였던 시그니쳐 웨폰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디비전' 시리즈의 특징을 생각했을 때 너무 극초반 콘텐츠만 단편적으로 즐겨볼 수 있었던 프라이빗 베타였기에, 당시 기자는 평가를 유보했다. 몇 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바뀐 점이 없다'거나, '디비전 1.1'이라고 평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식 출시 이후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 프로젝트 등 콘텐츠들을 천천히 둘러보니 많은 곳에서, 또 세세하게 신경을 쓴 부분이 느껴졌다. 전작에서 불편했던 점이나 아쉬운 점들은 대부분 개선됐고, 장점이라고 평가받았던 것들은 계승됐다.
이러한 변경점 및 개선점들은 정말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게임 속에 녹아 들어 있어, 실제로는 마치 '바뀌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디비전 1.1'이라거나, 후속작이 아닌 확장팩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짧게 플레이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디비전 2'에는 충분히 녹아 들어있다.
과연 앞서 진행된 베타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게임의 진면목은 무엇이었을까? 약 300시간의 전 '디비전' 요원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자가 직접 플레이 해봤다.
완성형 전투 시스템에 개선된 AI와 스킬 사용의 재미를 더하다
우선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전투다. 엄폐를 베이스로 하는 전투 자체는 전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1편의 전투 감각과 완전히 똑같다. 유리한 자리를 잡아 엄폐하고, 스킬을 활용하며 위험한 적부터 천천히 처리해 나가는 전투는 전작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곧바로 적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바뀐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전작에서는 치명타 관련 버프를 제공했던 펄스와 생존에 필수였던 힐 스킬이 사실상 반 강제 수준이어서 일부 아이템 세팅을 제외하면 스킬을 활용하는 재미는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다양한 스킬을 활용하는 재미가 상당히 뛰어나 전작보다 전투가 훨씬 다채로워진 느낌이다.
펄스는 아쉽게도 크게 너프 되었으나, 작은 거치형 터렛과 하이브, 화학물질 발사기, 파이어플라이 등 전문 요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근 미래형 첨단 장비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사용해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아직 몇몇 스킬은 버그가 많아 제대로 활용이 불가능하고 유저들 사이에서 아이템 세팅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지만, 향후에는 전작의 '파이어 크레스트'를 활용한 것처럼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세팅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약점을 노려 적을 쉽게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도 그대로 가져왔다. 단순히 딜을 위해 적의 머리만 쏘는 지루한 플레이가 아닌, 각 적의 특징에 따라 적극적으로 방어구나 폭발물 등의 약점을 노리는 플레이가 쾌적한 전투를 가능하게 한다. 특히 전작과 달리 적이 죽더라도 약점 요소는 그대로 남아있어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방어구를 파괴하면 전작보다 낮아진 체력으로 인해 녹아 내리는 적을 볼 수 있다.
또한 적들의 개선된 AI도 인상적이다. 프라이빗 베타 당시에도 느꼈지만, 이번 작의 적들은 공격적이면서도 전술적인 움직임을 통해 플레이어가 엄폐물 한 곳에서 전투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괴롭힌다. 저격수들은 실명을 걸고, 척탄병과 유탄발사기병은 강제로 엄폐물 밖으로 이동하도록 만든다. 심지어 몇몇 적은 정면에서 대치한 상태에서 뒤로 돌아 '양각'을 만드는 영리한 모습도 보여준다.
유비소프트는 엄폐를 기반으로 한 슈팅 플레이는 사실상 전작에서 완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슈팅 플레이를 크게 갈아엎는 대신, 지나치게 TTK가 높다거나 전투가 단조롭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작은 개선점들을 도입한 선택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더불어 '디비전' 시리즈의 전투 방식이 슈팅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기본은 아이템 파밍이 주가 되는 'RPG'라는 것을 망각 하지 않았다는 점도 칭찬하고 싶다.
초반부터 느껴지는 파밍의 재미, 다채로운 아이템 세팅
한편, 인벤토리 관리와 UI도 만족스러웠다. 프라이빗 베타에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다소 변경된 UI들이 하나같이 복잡하게만 느껴졌는데, 실제로 플레이를 하며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상당히 편해졌다는 것이 체감됐다. 전작의 잡동사니 등록을 기반으로 한 '폐지' 관리, 자신의 세트 아이템을 쉽게 등록하고 사용할 수 있는 로드아웃 시스템 등도 그대로 옮겨왔다.
특히 파밍과 관리가 번거로웠던 총기 부착물은 해금 식으로 변경되어 한 번만 만들거나 획득하면 돌려쓰는 것이 가능하도록 개선되었고, 옵션 또한 단순히 스탯을 뻥튀기 시켜주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의 스탯이 오르면 또 다른 하나는 감소되는 형태로 변경되어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브랜드 세트 아이템과 다양한 종류의 탤런트도 여전히 흥미롭다. 특히 브랜드 세트 아이템은 게임 초반부터 '디비전'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이자 주 장르가 결국 RPG라는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준다. 각 브랜드마다 특화된 옵션들을 제공하고 또 각 아이템 부위마다 붙는 탤런트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향후 '디비전 1'보다도 더욱 다채로운 아이템 세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유비소프트 특유의 세밀하게 구성된 오픈월드와 변화무쌍한 환경
세밀하게 구성된 유비소프트 특유의 오픈월드도 여전히 건재하다. 전작의 뉴욕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는 워싱턴 D.C.가 무대가 되었는데, 말 그대로 도시 하나를 통째로 빼다 박았다. 메인 퀘스트를 하지 않고 그냥 돌아다니기만 해도 즐겁다는 기분을 상당히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고 자란 나라가 한국이다 보니 미국 수도에 대한 느낌이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본토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굉장히 색다른 경험일 것 같다. 한국 게이머가 서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레이시티'나 '시티레이서'를 플레이하며 '여기는 이렇게 구현되었구나' 하고 느끼는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또 이번 작품에서는 지나가며 만나는 적대 세력과의 교전 외에도, 임무 중 발생하는 추가 교전과 인질 공개처형, 선전 방송, 통제구역 점령 등 맵에서 발생하는 이벤트이 상당히 다양해 레벨 업 과정에서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어쌔신크리드 오디세이' 급의 다채로움은 아니지만, '유비소프트식 오픈월드'의 강점이 그대로 녹아 있다.
특히나 전작에서는 아군이었던 JTF와 적대세력이 대립하는 구도 자체가 상당히 단편적이고 의도적으로 구성되어 텅텅 빈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디비전 2'에서는 위에 언급한 각종 이벤트들이 맵 전체에 생동감을 더하고 있어 만족스럽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나 자욱한 안개 등의 기후 변화 그리고 시가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밤낮의 자연스러운 흐름도 인상적이다. 특히 야간에 벌어지는 폭우 속 시가전은 전작 이상의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직 갈 길이 남은 '더 디비전 2', '갓겜'으로 거듭나기를
앞서도 언급했듯이, 프라이빗 베타와 같이 짧은 플레이나 영상 시청만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개선점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개선점들은 정말 '시나브로'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디비전 2'를 즐겨본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해본 만큼 보이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위의 평가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게이머에게는 구매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특히 시리즈를 해보지 않은 유저라면,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요원의 시가전을 다룬 완성도 높은 근현대 슈팅 RPG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게임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작품에서는 유비소프트가 자랑하는 세밀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오픈월드는 전작보다 더욱 발전했고, 수면을 유도하는 지루한 전투는 향상된 AI와 방어구 파괴 시스템 등으로 보완했다. 물론 전투 자체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 즐겨도 또 다시 즐겨도 충분히 재미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템 파밍의 재미는 그대로이고, 이러한 아이템 파밍을 통한 세팅도 충분히 재미를 줄 것으로 보인다.
후속작이라고 해서 반드시 천지개벽급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자 또한 프라이빗 베타를 플레이 했던 당시만 하더라도 무엇이 바뀐 것인지 느껴지지 않아 고개를 갸웃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개선과 변화만 하더라도 유비소프트는 충분히 힘을 썼다고 느껴진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공개된 로드맵 대로 업데이트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서버 문제는 전과 달리 크게 발목을 붙잡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버그가 산재해 있고 8인 레이드 등 최고레벨 이후 즐기게 될 엔드 콘텐츠를 얼마나 잘 다듬었는지도 중요하다. 유비소프트는 이전부터 출시 이후에도 사후관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기에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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