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게임, 내가 직접 알린다" 게임사의 또다른 홍보팀 '게이머', 그들은 왜 '구조선'을 띄울까

게이머가 직접 나서 게임 알리는 '구조선', 새로운 마케팅 기회로 거듭날까

등록일 2020년04월07일 13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OO게임 커뮤니티에 구조선 띄우고 왔다"
"우리 게임도 슬슬 구조선 띄워보는게 좋지 않나요?"
"망한 게임 유저가 구조선 요청합니다"

 

국내 모바일 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난민' 구호활동이 한창이다. 물론 진짜로 난민들을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을 찾아 헤매는 이용자들을 위해 게이머들이 직접 발벗고 나서 게임을 홍보하는 것. 모바일 게임 시장의 새로운 놀이 방식인 소위 '구조선' 문화에 게임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쪽배에 몸을 맡겨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서는 난민들을 보호하는 구조선에서 착안한 신조어 '구조선'은 최근 모바일 게임 커뮤니티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았다. 기존에도 이용자가 무의식 중에 게임에 대해 알리게끔 유도하는 '바이럴 마케팅' 또는 'WoM(Word of Mouth)' 등의 마케팅 기법이 존재했지만, 게임사의 전략과는 별개로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나서 게임을 알리는 '구조선' 문화는 이전까지의 마케팅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행태다.

 

특히 이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틈에 홍보 활동을 하게끔 만드는 기존의 마케팅 기법과 달리, 소비자가 홍보 행위임을 인지하고 스스로 게임을 알리는데 이어 이를 일종의 놀이 문화처럼 여기는 것이 '구조선' 문화의 독특한 요소. 대규모 마케팅 전쟁이 활발한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인 만큼, 최근에는 게임업계도 '구조선' 문화를 의식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에픽세븐' 대란 기점으로 정립된 '난민'과 '구조선' 문화

 


 

앞서 말한 것처럼 모바일 게임에서 '구조선'은 게이머들이 타 게임 커뮤니티에 자신이 즐기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신규 이용자들의 정착을 지원해 이용자 수를 늘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단순히 게임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매력 포인트부터 장점, 게임에 쉽게 적응하는 방법까지 일일이 알려주며 타 게임 이용자를 적극적으로 자신 게임의 신규 이용자로 유치하는 등 일종의 구호 활동을 펼치는 것이 '구조선' 문화의 특징.

 

기존에도 게임에 불만을 가지고 이탈하는 이용자나 이들에게 자신이 즐기는 게임을 추천하는 일이 있었던 만큼 '구조선' 문화의 기원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난민'과 '구조선'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정립된 것은 2019년 여름 게임 커뮤니티를 뒤흔들었던 '에픽세븐' 대란이라는 게 게이머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여름,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가 서비스 중인 모바일 게임 '에픽세븐'에서는 게임 내 이슈와 미숙한 운영 논란에 대한 불만이 폭주하면서 이용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에픽세븐'의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새로 시작할 게임을 찾는 이용자들의 문의가 이어졌는데, 이런 상황을 틈타 '에픽세븐'의 이용자들을 '난민'이라고 지칭하고 자신이 즐기는 게임을 '구조선'으로 내세워 홍보하는 이용자들이 등장하면서 '구조선'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넥슨이 서비스 중인 '클로저스'의 게임 외적인 이슈로 인해 스마일게이트가 서비스 중인 게임 '소울워커'가 반사이익을 얻은 소위 '클로저스 대란' 역시 '구조선' 문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평가다. 당시 '클로저스'의 대체재로 '소울워커'가 부각되면서 기존에 게임을 즐기던 이용자들이 신규 이용자들을 위해 친절히 공략법을 알려주고 아이템을 지원하는 소위 '소매넣기(소매치기의 반대를 의미하는 신조어)'가 지금의 '구조선'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 성향 변화, 놀이 문화로 진화한 '구조선'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모바일 게임 커뮤니티 사이에서 '구조선' 문화를 일종의 놀이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구조선' 문화 정립 초창기에는 '에픽세븐' 대란처럼 대규모 이용자 이탈이 발생하는 등의 큰 사건이 있을 때만 '구조선'을 띄운 반면, 최근에는 별다른 이슈가 없이도 정기적으로 '구조선'을 보내거나 타 게임 커뮤니티의 여론에 맞춰 신규 이용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이 최근 커뮤니티를 단위로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거 게임에서는 같은 게임 내에서도 '길드' 또는 친구 등 하위 커뮤니티 내에서만 소속감을 느낀 반면, 최근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은 같은 게임을 즐긴다는 사실 만으로도 '소속감'을 느끼는 것. 자신들이 즐기는 게임의 이용자 수를 비교하며 경쟁의식을 갖는 모바일 게임 커뮤니티의 행보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모바일 게임에 대한 수요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 역시 '구조선' 문화가 활성화되는데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과거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은 특정 게임에 대해서만 매력을 느끼고 게임을 즐겼던 반면, 최근에는 남는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여가 문화로서 모바일 게임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성이 충분히 괜찮다면 언제라도 새로운 게임을 즐기고 현금을 소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핵심 소비자 층의 새로운 성향으로 인해 게임 간의 이용자 이동 역시 활발해지고 '구조선' 문화가 일종의 놀이처럼 진화했다"라고 말했다.

 

장점 못지 않게 후폭풍 분명한 '구조선' 문화, 게임사의 영리한 판단 필요해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 '구조선'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최근에는 게임업계 역시 이런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게임사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게임을 알리고 신규 이용자가 유입되면서 사전에 신규 이용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준비를 갖춰놓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구조선을 통해 신규 이용자의 유입 시기가 언제라도 찾아오는 만큼, 어느 시점에 즐겨도 좋은 게임이 되기 위해 사전에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많은 게임들이 상시 지원책을 갖추거나 다양한 아이템을 지원하는 쿠폰 등을 통해 신규 이용자의 정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의 전반적인 안목과 정보력이 상승하면서 게임사의 포트폴리오 관리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모바일 게임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게이머들의 안목과 정보력이 발전, 새로운 게임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게임사의 과거 작품도 기준이 된다는 것. 과거 미숙한 운영을 보였거나 가혹한 BM 등으로 혹평을 받은 게임들은 '주홍글씨'처럼 게임사를 따라다닌다.

 

블루솜이 4월 8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인 모바일 게임 '야생소녀'는 별다른 마케팅 활동 없이도 이용자들이 직접 게임을 알리는 소위 '구조선'을 통해 인지도를 높였지만, 과거 개발했던 게임 다수가 단기간 내에 운영을 종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위 '먹튀' 의혹을 겪기도 했다. 게임사의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의혹이 일단락되었지만, 게임사의 과거 행적이 신작의 평가 및 홍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바 있다.

 

한편, 게임사의 입장에서는 별도의 마케팅 집행 비용 없이도 이용자들이 게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구조선' 문화의 장점이지만 이 못지 않게 '구조선'으로 인한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구조선'을 통해 신규 이용자들을 유치한 기존 게이머들이 자신들이 게임에 기여한 것에 대한 보상을 원하게 되는데, 게임사가 이에 걸맞는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기대 이하의 운영을 제공하게 되면 기존 게이머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

 

게임개발자연대의 김환민 사무국장은 "당장은 별도의 마케팅 비용 없이도 게임이 알려져 게임사의 입장에서는 이득을 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구조선을 띄우는 기존의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원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며 "향후 운영 관련 이슈가 발생할 경우에는 몇 배 더 강력한 반발을 맞이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은 이제 대규모 마케팅으로 흘러가는 과포화 상태에 도달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게임들이 출시되는 상황에서 대형 마케팅 활동 없이는 게임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 이 가운데, 게임사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이용자들이 발 벗고 나서 게임을 알리는 소위 '구조선' 문화가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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