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 게임을 선호하는 소위 '덕후' 게이머 층은 유목민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기존에 게임을 잘 즐기고 있더라도 특별한 이유 없이 이탈해 새로운 게임을 찾아 나서는가 하면 이용자들끼리 게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 게임 저 게임을 순회하면서 게임을 즐긴다. 이런 성향 탓에 신작이 나오면 일종의 신고식처럼 서브컬쳐 마니아 층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서브컬쳐 게이머 층이 새롭게 주목한 게임은 15년차 중소 게임사 블루솜이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미소녀 수집형 RPG '야생소녀: 잃어버린 낙원'. 게임은 동물을 의인화한 '아니마'를 소재로 내세워 이들을 수집하고 PvP나 길드 협력 콘텐츠를 즐기는 것을 핵심 재미로 내세웠다. 게임의 준수한 일러스트를 통해 대규모 마케팅 활동 없이도 어느정도 이름을 알려 많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다만 올해 2월 중 진행됐던 프리미엄 테스트에서는 게임의 콘텐츠나 편의성 측면에서 가다듬을 점이 많다는 아쉬운 평가들도 나와 '야생소녀'가 국내 서브컬쳐 게이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의견들도 많았다. 이에 블루솜은 테스트 당시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해 출시일을 미루는 결정을 내리는 등 게임의 내실을 가다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수집형 RPG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의 매력 자체는 확실하지만, 이용자들을 좀더 많이 끌어 모으고 이들이 게임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게임 전반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단순히 “캐릭터가 예뻐서” 불편함을 참고 게임을 즐기기에는 이제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 대체재가 너무 많다.
동물 모에화 소재 선정 탁월, 일러스트 퀄리티는 준수하다
수집형 RPG의 기본은 캐릭터 일러스트의 퀄리티다. '소녀전선' 이후 다양한 서브컬쳐 계열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용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 이에 조금만 어설프거나 무성의한 부분들이 드러나면 이용자들이 금세 눈을 돌려버리는 것이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상황이다. 다양한 캐릭터의 일러스트 퀄리티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한편, 스킨이나 라이브2D 등 추가적인 요소들을 선보여야하기 때문에 후발주자들이 시장에서 이용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생소녀'는 이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일러스트 퀄리티를 선보였다. 여기에 동물을 의인화한 '아니마'를 통해 서브컬쳐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2차 창작물을 위한 소재들도 어느정도 마련한 편. 게임의 서비스가 장기화될 경우 소재가 고갈될 수 있겠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같은 고양이더라도 '먼치킨' 등 품종을 따로 나눠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어 무한한 창작의 가능성도 기대해볼 수 있겠다.
특히 일러스트의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준수한 편이다. 등급에 관계없이 캐릭터 하나하나에 어느정도 공을 들인 티가 난다는 점은 서브컬쳐 마니아로서는 만족스러운 부분. 라이브2D의 퀄리티가 조금 들쭉날쭉하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부분은 향후 게임 서비스가 안정화에 접어든 뒤에 개선을 기대해본다. 중소 게임사가 게임을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력적인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마스코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얻기도 힘든데 육성도 쉽지 않은 캐릭터
매력적인 캐릭터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것이 수집형 RPG의 재미이지만, 최근에는 캐릭터 수집에서 오는 피로감을 기피하는 게이머들도 많다. 이에 게임사들 역시 이용자들의 수요에 맞춰 스테이지에서 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하거나 뽑기에 필요한 재화를 대량으로 배포하는 등의 보조 수단을 통해 피로도를 낮추는 추세.
반면, '야생소녀'는 좋게 표현하면 '클래식'하고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조금 구시대적인 캐릭터 획득 BM을 선보였다. 일부 구간에서는 스테이지 클리어를 통해 캐릭터 조각을 획득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뽑기를 통해 캐릭터를 주로 획득하게 된다. 출시 초반 임을 감안하더라도 획득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지만, 뽑기에 필요한 재화 수급처가 적은 편이라 캐릭터 획득 난이도가 타 게임에 비해 높은 편이다.
캐릭터를 얻는 것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육성 자체도 조금은 부담되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많은 모바일 게임들이 획득한 캐릭터를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게끔 경험치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만, '야생소녀'에서는 스테이지 클리어 이외에는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팀에 편성할 수 있는 캐릭터의 수도 4명으로 한정되어 있어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는 정예 멤버들을 위한 자리를 빼고 나면 새롭게 얻은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한 편은 아니다.
여기에 육성 요소들도 많은 편이라 피로도가 높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레벨을 올리더라도 별도의 재화를 소모해 캐릭터의 능력치를 높여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아이템의 수급량이 소모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게임의 특성상 초반 성장 구간에는 출전 멤버를 자주 교체하게 되는데,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다 보니 멤버의 교체가 더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게임 서비스 초기에는 잘 부각되지 않지만, 향후 게임의 서비스가 장기화될수록 캐릭터의 한계 돌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등급에 관계없이 모든 캐릭터가 최고 등급인 'UR'까지 성장할 수 있는데, 여기에 필요한 조각의 양이 게임 내에서 획득할 수 있는 양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결국 게임 내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재화의 양을 극단적으로 통제하면서 이용자들의 과금을 유도하는 상황인데, 서브컬쳐 게임을 선호하는 이용자들의 성향과 맞지 않다.
세로 인터페이스의 장점 제대로 살리지 못해, 직관적이지 못한 UI
인터페이스의 직관성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야생소녀'는 모바일 게임 중에서는 드물게 세로 인터페이스를 채용했는데, 세로로 넓은 화면 구성의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화면 중앙에 중요한 진행 상황을 몰아넣고 조작이나 플레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위아래에 배치했는데, 한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전투 중에는 캐릭터의 속도에 따른 행동 순서를 화면 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캐릭터 순서를 확인할 수 있는 아이콘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다. 같은 턴 내에 행동하는 아군들은 사실상 순서를 파악하기 어려운 수준. 아이콘들도 요즘 상황에 맞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캐릭터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도 하단에 모여있는데, 세로로 넓은 화면 구성을 감안하면 좀더 크게, 또는 조작하기 편한 위치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전 화면으로 이동할 수 있는 버튼의 배치도 불편하다. 스마트폰의 경우 사용자의 손가락 위치를 고려해 우측 하단에 취소 또는 뒤로 가기 버튼을 배정하는데, '야생소녀'의 경우 우측 상단에 버튼이 배정되어 있다. 반면 대부분의 조작 키는 하단에 배치되어 있어 뒤로 가기 또는 취소 기능을 이용하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다. 스마트폰 UI와 비슷한 세로 인터페이스를 채용한 의미가 무색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최근 모바일 디바이스의 화면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버튼의 크기나 배치도 좀더 과감하게 변했으면 좋겠다.
반복 플레이 지향하지만 분노 유발하는 AI 성능
한편, '야생소녀'는 스테이지를 반복해서 클리어하며 장비나 재화를 수집하는 일반적인 모바일 게임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에 게임 내에서는 오토 플레이를 통해 반복 작업에서 오는 피로도를 줄일 수 있도록 했지만 AI의 성능이 너무 비효율적이라 결국 수동 플레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각 캐릭터는 최대 3개의 액티브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오토 플레이를 사용할 경우 가장 강력한 궁극기 공격부터 일반 공격의 순서대로 사용한다. 상위 스테이지로 나아갈수록 적재적소에 상태이상 스킬을 사용하거나 상대의 속도를 늦추는 등 전략적인 플레이가 필요해지는데, 오토 플레이의 효율이 워낙 떨어지는 탓에 수동 플레이가 강요되는 수준이다.
스테이지 하나를 클리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긴 편은 아니지만 모바일 디바이스를 붙잡고 하루에도 20판 정도를 수동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결국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캐릭터의 배치 등을 통해 최적의 조합을 갖추더라도 상태 이상 등 주요 스킬에 확률이 붙어있어 매 게임마다 결과를 100% 확신할 수 없다는 것도 파밍 게임으로서는 감점 요인.
캐릭터를 연구하고 오토 플레이로도 100% 클리어할 수 있는 조합을 찾아나가는 것이 최근 수집형 RPG의 재미인데 블루솜이 이런 지점을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AI 성능 개선이 어렵다면 소탕권 등 플레이 시간을 줄여줄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흔치 않은 기회 잡은 '야생소녀',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수 있을까
출시 초반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이용자들의 주목을 받은 '야생소녀'이지만 서브컬쳐 마니아 층을 보다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의 퀄리티는 기존의 경쟁작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국내 게이머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게임성 전반 역시 흥행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
게임사의 입장에서도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선 캐릭터의 획득과 육성이 너무 어렵다는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돈을 써서 캐릭터를 얻더라도 육성하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리면 결국 게이머들의 의욕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험치를 단번에 획득할 수 있는 재화나 콘텐츠를 추가해 육성의 부담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 특히 게임 내에서 업적이나 일일 미션으로 수급할 수 있는 다이아의 양이 조금 적은 편인데 게이머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밖에도 세로 인터페이스를 채택한 이유가 무색한 불편한 UI나 모자란 AI의 성능들도 차차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오토 플레이 이외에는 플레이어의 피로도를 줄여줄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수동 조작에 비해 오토 플레이의 효율이 지나치게 낮으면 코어 게이머들도 금세 지칠 수밖에 없다. 상위 스테이지로 진입할수록 몬스터에게 너무 많은 버프를 주는 등 조금 치사한 레벨 디자인이 드러나는데, '맛있게 매운' 게임 난이도를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 낡은 게임으로 치부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는 신예가 등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유독 '야생소녀'에게 애착이 간다. 15년차 중소 게임사 블루솜이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는 더욱 바삐 움직일 필요가 있다. 서브컬쳐 게이머들은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기다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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