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점수가 미처 이야기해주지 않은 즐거움, 스퀘어에닉스 '브레이블리 디폴트2'

등록일 2021년03월09일 09시10분 트위터로 보내기



 

게임에 대한 평가는 되도록 직접 즐겨보고 내리자는 주의다.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요소도 다르고, 또 어렴풋이 기자 본인의 취향이 대중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해서일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모든 게임을 직접 경험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에, 어느정도는 대중의 평가에도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RPG 장르가 주로 그렇다.

 

점수에만 의존하다가는 귀한 게임을 놓칠 뻔했다. 스퀘어 에닉스가 2월 발매한 '브레이블리 디폴트 2(BRAVELY DEFAULT 2)'는 감히 2월에 깜짝 등장한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는 탓에 JRPG에서 파고들기 요소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시간을 틈틈이 내서 '브레이블리 디폴트 2'의 끝을 보고자 하고있다. 

 


 

무난함의 끝을 달리는 초반부 스토리와 설정, 아쉬운 최적화 등 '브레이블리 디폴트2'에 대한 혹평들도 그 나름의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분명한 점은 고전 JRPG를 좋아하고 즐겨 플레이했다면 '브레이블리 디폴트2'에서 반가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혀 겁 먹을 필요가 없다. '몬스터헌터 라이즈'의 발매까지 남은 시간을 채우고, 또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타이틀이다.

 

알파이자 오메가인 '반복', 그러나 불쾌하지 않다

 


 

엔딩까지의 플레이타임은 아무리 빨라도 50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대형 게임이다. 다만 이중에서 직접적인 던전 돌파, 연출이나 스토리 등에 할애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데 나머지 플레이 타임을 채워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RPG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위 '노가다'라고 부르는 '반복'이다. 그런대로 플레이해도 적정 레벨, 스펙을 맞춰주는 어드벤처 게임과 달리, RPG는 성장을 위한 '반복'이 덤으로 딸려오는 편이다.

 

이 '반복'이 달갑지 않은 것은 의도적으로 플레이 타임을 늘리려는 속셈이 다소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최종 보스까지 앞으로 한 계단만 남겨뒀는데 갑자기 적들의 레벨이 널뛰기를 뛰거나, 희귀 등급의 장비를 얻지 않고는 돌파하기 어려운 구간들이 나오기도 한다. 플레이어의 실력 자체보다는 게임에 투자한 시간만큼 강해지는 RPG의 룰 때문이기도 하겠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짧으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원하는 게이머들에게 '반복'이란 여러모로 김이 새는 부분이다.

 

탄력이 붙으면 반복 작업의 속도가 대폭 빨라진다

 

'브레이블리 디폴트2'는 '반복'을 강요하는 축에 속하는 게임이다. 선택지조차 없어 '폐관수련'을 하지 않고는 보스 돌파는 꿈도 꾸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다. 게임에서는 여러 직업을 오가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 대략 20종이 넘는 직업들을 전부 마스터하고 다양한 어빌리티를 조합하며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핵심 콘텐츠.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브레이블리 디폴트2'는 '반복'하는 과정 자체를 즐겁게 만들려는 노력들을 엿볼 수 있는 게임이다. 어느정도 스토리를 진행하고, 중반부에 접어들면 '반복' 사냥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여러 장치들이 생겨나는데 이때부터는 '반복' 작업에도 속도가 붙는다. 복잡하게 필드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특수 아이템을 사용하고 연속 전투만 잘 노린다면 한 두시간 내에 마스터한 직업 한 두개 정도는 거뜬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다. 하루 날 잡고 게임기만 붙들어야 했던 고전 RPG와 비교하면 퍽 친절한 셈이다.

 

새 잡을 얻으면 또 어떻게 활용해볼까 두근두근해진다

 

직업(게임에서는 잡), 그리고 어빌리티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반복' 작업을 기꺼이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각 '잡'을 마스터할수록 새로운 어빌리티가 해금되는데, 이 어빌리티를 다른 직업 또는 장비들과 조합해서 의외의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것이 게임의 매력 포인트다. 새 직업을 얻으면 “또 언제 육성하지”보다는 “빨리 육성해서 이것저것 시험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흥미롭다. 탄력이 붙으면 반복 작업도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다 보니, 직업을 얻자마자 빠르게 육성하고, 편하게 스토리를 즐기는 패턴이 반복된다.

 

불합리에는 불합리로 맞선다

 

양날의 검인 '브레이브'와 '디폴트'

 

일반 전투는 사실상 일격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기에 게임의 깊이 있는 전투는 강적과의 싸움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반복 작업을 통한 레벨, 능력치 상승폭이 가파른 편인데, 이에 맞게 보스들은 결코 녹록치 않다. 피해량을 웃도는 치유량을 선보이는 첫 보스, 일격에 아군의 머리를 쪼개 버리는 보스 등 '브레이블리 디폴트2'의 세계에서의 보스전은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이에 맞서는 플레이어의 무기는 (넉넉한 시간과 반복 작업은 제외하고)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브레이브'와 '디폴트'에 있다. 턴을 넘기는 대신 다음 턴에 한번 더 움직일 수 있는 두 요소를 통해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거나 통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의 피해를 한 턴 안에 입힐 수도 있다. 욕심을 내서 '브레이브'로 턴을 당겨오는 방법도 있지만, 그만큼 무방비해지기도 하니 여러모로 어떤 타이밍에 턴을 소비하고 또 비축해 둘 것인지 고민해보는 재미가 있다.

 


 

무기 종류에 따른 상성 관계는 분명 있지만, 무효나 반격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게임 내에서 그렇게 체감될 정도는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보다는 상대가 특화된 요소가 무엇인지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 중 최적의 돌파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 '브레이블리 디폴트2'의 숙련도를 가르는 요소다. 데미지 자체보다는 보스가 가진 기믹에 핵심이 있기에 난이도 변경에 따른 변화 폭이 크게 체감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캐주얼부터 하드까지 난이도가 구성되어 있는데, 난이도 상승에 따른 명확한 변화는 거의 없는 편이다. 반대로 말하면 쉬움 난이도에서도 장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있겠다. “이쯤 되면 엔딩까지 직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때부터 급작스럽게 난이도가 상승하는 구간들도 몇몇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반복 작업이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니 부담없이 시간을 투자하고 게임을 즐겨보자.

 

취향이 갈리는 요소, 그리고 명백하게 부족한 요소들

 


 

발매 이후 '브레이블리 디폴트2'에 대한 주된 평가 중 하나는 정석 그대로를 걷는 스토리라인이다. 분명 최근 출시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캐릭터의 세부 설정에 대한 언급, 성격의 당위성을 제대로 묘사해주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어느정도 게임을 플레이하고 게임 속 세계에 익숙해지고 나면 큰 단점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세하게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게임을 조금 더 진행하다 보면 의외의 면모도 마주할 수 있다.

 


 

그래픽 역시 취향이 분명히 갈릴 수 있는 요소다. 엉성한 캐릭터 모델링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또 배경은 배경대로 아름답게 잘 꾸며진 것을 보면 의도한 사항인가 싶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어딘가 엉성해 보이지만, 멀리서 놓고 보면 미니어처를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트 스타일은 “좋으면 좋지만, 또 나쁘면 나쁜” 것과 달리, OST의 퀄리티는 상당하다. 배경에 맞는, 그리고 게임 속 상황에 잘 어우러져서 게임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이다.

 


 

다만 명백하게 불만스러운 요소들도 있다. UI가 이용자들에게 불편하게 구성되어 있는 편으로, 턴 기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적들이 어떤 버프를 걸었는지 혹은 아군의 공격에 대해 어떤 반응이 일어났는지를 놓치면 허무하게 당하는 경우들도 많더라. 버프 부여, 해제 효과 역시 마찬가지로 아군의 능력 변동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다 보니 게임을 즐기면서도 여러 애로사항이 꽃핀다. 던전에서 미니맵이 없다는 점도 마이너스 요소로, 그다지 길이 복잡하지 않은 곳에서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는 점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메인 스토리에 곁가지로 서브 퀘스트를 수행할 수는 있지만, 심부름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다. 고전 JRPG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주는 보상에 비해 던전을 두세 번씩 왕복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간간히 볼만한 이야기나 흥미로운 설정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켜줄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점수로는 미처 보지 못한 재미 '브레이블리 디폴트2'

 


 

'브레이블리 디폴트2'는 점수, 그리고 발매 초기의 평가만 보고 지나치기엔 아쉬운 게임이다. 

 

반복 작업을 강요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여러 편의 기능들을 배치해 두었으며 또 다양한 잡과 어빌리티 간의 조합을 통해 이용자들이 기꺼이 반복 작업에 뛰어들도록 했다. 정석을 추구한 나머지 조금 단조롭다는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으며, 아트 스타일과 OST 역시 일품이다.

 

여러모로 닌텐도 스위치로 즐기기 좋은 게임이라는 느낌이다. 거치 모드와 휴대 모드 간의 그래픽 품질 차이가 거의 없으며, 게임이 추구하는 반복 작업 역시 휴대 모드와의 궁합이 아주 좋다. 전투에서의 밸런스도 중간 지점을 잘 찾아냈다는 느낌으로,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최적화된 전략을 찾아나가는 재미가 일품이다. 

 

혹시라도 지나친 반복 작업, 진부한 스토리라는 평가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면 흔쾌히 게임을 한번 구매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고전 JRPG를 즐기고 좋아해봤다면, 그리고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분명 마음에 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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