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는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캡콤의 신작 '바이오하자드 빌리지', 수준 높은 게임성과 높은 난이도로 입소문을 타면서 관심을 모은 PS5 독점 타이틀 '리터널', 캡콤의 또 다른 대표 프렌차이즈이자 오랜 만에 포터블 기기로 회귀한 '몬스터헌터 라이즈' 등 다수의 신작들이 출시되면서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가운데 익스페리먼트 101(Experiment 101)이 개발한 신작 오픈월드 액션 RPG '바이오뮤턴트(BIOMUTANT)'도 5월 25일 정식으로 발매됐다. 이 타이틀은 '저스트 코즈' 시리즈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스웨덴의 아발란체 스튜디오 소속 개발자들이 따로 나와 차린 회사의 첫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타이틀 정도의 취급을 받았지만, 음성을 포함한 정식 한국어화가 이루어지면서 게이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직접 해본 소감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픈월드 액션 RPG는 아무나 만드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타이틀이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게임성과 클리셰 덩어리인 스토리
사실 게임을 플레이 해보기 전 감상한 트레일러 영상들은 게임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설정들, 화려한 액션과 오픈월드에 걸맞는 모험과 탈것, 나만의 아이템을 만들어 나가는 크래프팅 등 설명만 봐서는 못해도 수작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바이오뮤턴트'는 기존에 게이머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던 다양한 오픈월드 게임, 액션 게임, 슈팅 게임들의 장점들을 구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게임을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은 이러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다른 게임들의 장점들을 한데 모으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 나머지 넘쳐 흘러버린 느낌을 준다.
전투는 기본적인 시스템부터 미완성 수준으로 파편화되어 있고, 스토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다루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평이하고 클리셰 덩어리다. 그래픽은 준수한 편이며,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크래프팅 시스템은 그럭저럭 잘 만들어졌지만 게임이 가진 단점들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다.
그나마 게임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크래프팅 시스템을 온전히 활용하게 되는 시점 또한 수 시간 이상을 참고 '투자'해야만 경험할 수 있다. 전투 시스템이 매력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바이오뮤턴트'의 전투는 튜토리얼 전투부터 맥빠진 타격감과 조작감으로 게이머들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한다.
게임에 대한 평가 중 타격감, 특히 근접 무기들을 사용할 때 매우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나 또한 이에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타격감 뿐만아니라 전투 시스템 자체도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파편화되어 있고 직관적이지 못하다.
익숙해지면 '데빌 메이 크라이'처럼 스타일리쉬한 액션이 가능할 정도로 다양하게 준비는 되어있지만, 그저 많이 준비만 되어있을 뿐 각 액션들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공격, 회피, 패링, 점프와 적점프, 각종 내가기공 기술들이 지나치게 많고 혼재되어 있다. 나레이션과 마찬가지로 과도하고 장황하기만 하다. 심지어 그 흔한 타겟 고정 시스템도 찾아볼 수 없다.
개발사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 깨달음에서 오는 재미의 부재
특히 더빙, 세계관 측면에서 개발사는 큰 실수를 했다. 캐릭터의 과거부터 현재 세계가 변화하게 된 이유까지 구구절절 모든 것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데, 이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며 몰입해 직접 보고 느끼며 해석하거나 이해하며 예측하는 재미 자체를 완전히 없애버린다. 김이 빠지는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오픈월드 RPG를 지향한다면 게이머의 몰입을 방해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러한 장치는 소설, 영화, 드라마 등 현대인들이 즐기는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들은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숨기며 독자와 관람객들에게 예상하고, 이해하도록 유도하여 '깨달음에서 오는 즐거움'을 주려 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게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이러한 과도한 설명과 나레이션은 말 그대로 극도의 지루함을 유발한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은 지루하고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옵션에서 나레이션의 빈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이러한 옵션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과도한 나레이션과 설명이 게임과 어울리지 않고 실패했음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바이오뮤턴트'는 이러한 측면에서 완벽하게 실패했다. 선과 악, 세계포식자, 탐욕과 과오로 인해 만들어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상이한 신념을 가진 부족간의 전쟁 등 이미 흔하디 흔한 이야기들을 지루하게 풀어내는 초반 시점부터 플레이하는 게이머를 지치게 만든다.
AAA급인척 하는 B급, 풀프라이스 가격은 조금 그렇습니다
결국 유저들 사이에서 '바이오뮤턴트'의 평가가 갈리는 이유 그리고 가장 큰 패착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한 게임에 담으려 했다는 점, 그리고 AAA급 게임이라고 할 수 없는 게임성임에도 6만 원 대로 과감히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어화가 일반적으로 자막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음성까지 모두 한국어화 한 로컬라이징에 대해서는 두말할 여지 없이 칭찬해 마땅하다. 이러한 한국어화를 위해 노력했을 유통 관계자, 더빙에 참여한 성우 분들께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게임성이 부족했을 뿐, 성우나 유통 관계자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이러한 음성 한국어화가 '바이오뮤턴트'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최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사이버펑크 2077'이 바로 그것이다. 발매 전 예고되었던 것과는 달리 대폭 축소된 팩션별 스토리라인, 아쉬운 게임성과 넘쳐나는 버그, 지나치게 높아졌던 기대감 등을 '더빙' 하나로 무마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게임의 첫인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이 타인을 보고 첫인상과 이미지를 결정할 때 채 10초가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 영화에서도 첫 러닝타임 20분의 구성에 심혈을 기울인다고도 한다. 게임에서는 처음 주어지는 약 1~2시간 가량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바이오뮤턴트'는 이러한 첫인상이 매우 좋지 않았다. 게임을 하는 내내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억지로 소개팅을 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결론적으로, 풀프라이스 가격과 그 가격에 대한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임이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또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오픈월드 RPG를 아무나 만드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고도 덧붙이고 싶다. 새삼 공장식으로 찍어낸다며 유비소프트의 '유비식 오픈월드'에 지루함을 느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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