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위 최고의 이직률을 보이는 부서가 바로 여깁니다."
게임위 직원들이 게임물 등급 심의와 관련해 일부 민원인에게 폭언과 협박, 폭행까지 당하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게임위 직원 그 누구도 그런 사실에 대해 속시원히 말하지 못했던 것은 외부에서는 알수 없는 그들만의 절박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원인이 두렵다"던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 직원의 말, 그저 가볍게 흘려들었을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왜?'라는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게임위를 찾았다.
게임위에 취재를 나갈 때 마다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설마, 민원인이 공무원을 폭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 때문에 그 동안 흘려들었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게임위 직원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단골메뉴다.
게임위 직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은 자세한 얘기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욕설, 협박은 물론, 폭행과 미행, 가족위협까지...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힘들정도로 그들은 일부 민원인들에게 고통받고 있었다.
경찰에 의지한 것도 몇 번인지 모를 정도로 빈번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지 못했던 것은 남들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어떤 일을 맡고 있는가?
신청된 게임물의 검토, 부수적으로 게임물의 심의와 관련된 민원 및 연구업무를 맡고 있다. 사실상 게임위의 전반적인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업무 처리량은 어떻게 되는가?
주당 약80~100건의 일(심의검토)을 분류에 따라 각 8명씩 팀장을 포함해 총 17명이 일을 처리하고 있다. 여기에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거나 민원요청이 오면 직접 현장으로 나가기도 한다.
업무 처리량이 생각보다 많다. 모든 일을 한 주에 처리하는가?
사실상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는 위치다(웃음). 몸이 여러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많고 인원이 추가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업체의 자료 추가요청 등 특별한 문제가 없지 않는 한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일(폭행, 협박, 위협 등)을 겪은 이들은 얼마나 되나
사실 전부 다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수의 인원만 겪는 일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내 주변에도 여럿있었고 나도 겪을 뻔 했다.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민원업무를 처리하는 로비에는 수많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이유야 여러가지지만 게임이 등급거부 판정을 받거나 사후관리를 통해 적발돼 영업이 정지가 되면 "내 게임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하면서 시작된다. 사실 적발된 게임의 대부분은 현금환전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현행 게임법상 이러한 행위는 모두 불법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직접적인 행정권한이 없기 때문에 의심가는 업체들을 직접 조사할 자격은 없다. 다만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아래 현황조사를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참 많은 일을 겪게 된다. 욕설만 듣고 끝나면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한다.
CCTV로 녹화했다면 관련 동영상을 우리에게 공개 할 수 있는가?
모든 동영상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일어난 폭행사건에 대한 동영상은 공개 가능하다.
<게임위 측에서 공개한 민원실 로비 CCTV영상(게임포커스 최초 공개)>
해당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었나?
당시 경찰을 통해 고소 입장을 밝혔었지만 결국 고소를 취하하면서 사건은 일단락 됐다.
왜 고소를 취하했나?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사건을 진행하면서 겪게 될 업무 공백의 리스크, 업자들의 추가 위협 등이다. 결국 고소는 개인과 개인이 하는 것인 만큼 위원회 차원에서도 나서기가 민감한 부분도 없지않아 있다.
한번은 한 직원의 집으로 한 업자가 전화를 걸었는데 부모님이 전화를 받자 욕설과 함께 "당신 아들 때문에 내가 망하게 생겼다. 집으로 가는 길에 길조심해라"며 협박전화를 일삼은 적도 있었다.
결국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승소해도 다른 악덕 업자들을 통해 또 다시 피해를 입는다. 고소를 진행해도, 진행하지 않아도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해보라.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쪽 관련 일을 하는 직원들의 이직율은 상당히 높다.
또한 새롭게 영입되는 직원들을 바로 실무에서 활용할 수 없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면 일이 더욱 많아지게 된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다던데
게임위 민원실에서 다른 직원이 업자와 함께 등급거부사유서를 놓고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장시간에 걸친 대화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이야기가 반복되었으며 업무상 상담시간이 초과되어 상담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해당 업주는 고성을 내기 시작했으며 화를 못이기며 "죽여버리겠다"고 말한 뒤, 검은 봉지 안에 감춰져 있던 인화물질(시너)를 자신의 몸에 뿌리고 욕설과 함께 해당 위원 몸에도 뿌렸다. 다행히 그것을 본 주위 모두 사람이 모두 달라붙어 만류하고 가지고 있던 시너 통을 뺏어 밖으로 버렸다. 만약 라이터가 그 주위에 있었다면.. 생각도 하기 싫은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가?
많이 일어난다.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한 업주가 위원장님에게도 위협을 가한적이 있어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일주일 지났을까? 힘들어 못하겠다고 그만두더라. 상황이 이 정도이니 솔직히 이직한다는 직원이 있어도 만류하기가 미안한 것이 현실이다. 몇몇 직원은 상담에 대한 트라우마도 생겼다. 이런 큰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이 맡았던 업무에도 큰 지장이 생긴다.
해당 업주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심의에 문제점은 없는가?
등급분류에는 5가지의 기본 원칙이 있다. 이중에서 맥락성이라는 부분이 있다. 전체적인 게임물의 맥락, 상황을 보고 등급을 결정하는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안좋은 사례의 대부분은 게임의 사행성이 문제가 돼서 등급거부 판정을 받은 게임물이다. 해당 게임에 들어가는 일종의 도박적인 요소가 게임 전체를 봤을 때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사행성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준비단계가 되는 요소, 단순히 있어도 혹은 없어도 그만인 요소, 게임 내에서 필수로 즐겨야 되지만 그 결과는 게임 내용에 전혀 영향을 안주는 요소, 오로지 해당 콘텐츠만을 즐기기 위한 요소 등 평가 기준이 있는데 해당 게임들은 그런 부분과 관련해 사행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거부처분을 받았다.
거부 처분을 받는 게임은 얼마나 되나
정확한 수치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온라인 게임보다는 아케이드게임이 훨씬 많으며 거부 비율 역시 많이 차이가 난다. 등급거부를 받은 게임의 업주들은 게임에 사행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게임을 뜯어보면 사행성이 주가 되며 현금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게임이 대부분이다.
보통 그런 게임들은 업주 스스로가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부 업체에 하청을 맡기게 되는데 정작 해당 업체에선 계약서에 싸인만 하고 기존에 개발한 게임에서 인터페이스만 수정하고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업자들이 심의비용과 개발비용을 이중으로 부담하는 피해를 겪게 된다.
아니면 처음부터 개발자에게 고액을 주고 심의에 저촉받지 않을 단순한 게임을 개발하고 특정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통해 숨겨져 있던 진짜 게임을 불러오는 방식의 불법 영업 게임이 많다. 대부분은 전문위원의 심사과정을 통해 들통나지만 기존에 알려져있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불법 기계들은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위원들도 오랫동안 해당 일에 종사한 만큼 수사기관 종사자 만큼의 눈썰미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플레이 화면만 봐도 불법 게임인지 아닌지 파악하게 되고 그것이 적중하는 경우는 거의 100%에 가깝다. 그렇지만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 확보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심의 통과가 되는 게임들도 있는데 해당 게임들은 사후관리를 통해 적발된다.
그렇다면 노력한 만큼 불법 게임장의 규모는 줄어들었는가?
(한숨을 쉬며)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해가 지날수록 그 규모는 커지고 있다. 이에 수사기관에서 요청하는 감정분석 역시 해가 지날 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아케이드 게임의 경우는 사행성 문제로 인한 사회적 여파가 큰 만큼 한 게임물에 모든 (아케이드)전문위원들이 투입 돼 검토를 진행하게 되며 그로 인한 업무 리스크도 상당하다.
실제로 사후관리팀의 감정분석 현황 통계자료에서 바다이야기 사건으로 주춤했던 사행성 게임들이 2007년도 383개에서 2009년도 864개, 2010년도 2221건으로약 3배씩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한된 인원으로 수십, 수백, 수천개의 게임물을 모두 다 처리하기가 매우 힘겨운 상황이다.
아케이드 단속이 심해지자 업주들이 심의 신청 방식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케이드 게임으로 심의 신청을 했다가 등급거부된 다수의 게임들이 온라인게임으로 개발, 재심의를 받고 있다. 가령 심의 신청을 패키지 게임으로 했지만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불법 게임물로 전환한 것들과 기본 게임은 싱글게임이지만 게임 내 존재하는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업주로 부터 현금환전을 하는 형태 등등 방법과 형식 역시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일부 게임은 아예 심의조차 받지 않고 서비스를 강행하고 있는데 검찰, 경찰의 협조요청을 받게 되면 해당 담당 직원이 사행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가야 된다. 이 때문에 생기는 업무 공백 역시 우리들에겐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불법 업주들의 이런 행동에 요즘은 온라인/아케이드 할 것 없이 모든 직원이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앞서 말했던 민원실의 폭행 등이 엮이게 된다고 생각해보라.
현재 게임위 내부에서도 이런 업주들의 불법 서비스에 정상적인 게임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잦아지면서 관련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게임위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 한번씩 확인해 봤는가?
물론이다.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은데
게임위가 업무를 진행하면서 분명 잘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반응에 맞물려 근거 없는 소문이 도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그것을사실로 받아들이고 비판을 하니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나씩 '아닙니다 잘못된 사실입니다' 하면서 나서는 수도 없는 환경이다. 누군가 빠지면 누군가 그 공백을 메꿔야하니 말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디아블로3' 등 화제가 되는 게임들의 규제나 심의 연기에 대해 유저들이 많은 불만을 이야기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며 한 개의 사행성 게임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채 등급분류를 결정짓게 되면 그것을 모사한 수십, 수백, 수천개의 게임이 파생된다는 점이다. 향후 이러한 게임들이 시장의 주류가 된다면 가장 직접적으로 정상적으로 개발된 게임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중소 개발사들은 자취를 감출 것이며 '돈 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상적인 게임이 사라지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유저 자신이 그 피해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시간에도 그런 방법을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업주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문제다.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다'는 생각, 그 때문에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오늘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이야기 들을 너무 그대로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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