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매 해 개최하고 있는 게임업계 지식공유 컨퍼런스 'NDC 22'가 개막 2일차를 맞이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 '지스타 2021' 현장에서 업계 관계자들과 관람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시프트업의 신작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 관련 포스트모템 강연이 공개됐다.
'니케'는 '데스티니 차일드'로 국내에서 잘 알려진 시프트업의 신작 모바일게임으로, 모바일 플랫폼에 최적화된 캐주얼 슈팅과 액션 그리고 시프트업 특유의 매력적이고 미려한 캐릭터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에는 모바일게임으로는 이례적으로 컨텍스트 기반의 립 모션 기술, 스파인 및 물리엔진 등 다양한 최신 기술들이 적용돼 업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시프트업은 지난해 오프라인으로 개최됐던 '지스타 2021' 현장에서 '대규모 부스를 마련해 유저들에게 선을 보여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올해 3월에는 일부 유저들을 초청한 오프라인 FGT를 진행하고 피드백을 수렴하는 등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포스트모템에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시프트업의 유형석 디렉터가 나섰다. 그는 2010년 PC MMORPG의 시스템 및 전투 기획을 담당하며 업계에 발을 들였으며, '히트'와 '오버히트' 등의 게임 개발에도 참여했다. 현재는 '니케'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유형석 디렉터는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일부 디렉팅 사례들을 소개하는 한편, '퍼스트 무버 게임'의 개발에 대해서도 제언했다. 그는 "저의 발표는 수많은 게임 개발 방법 중 하나의 케이스일 뿐이다. 하지만 개발 과정을 공개하는 것으로 업계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1인 전투에서 5인 전투로, 게임과 플랫폼에 어울리는 가공은 필수
'니케'는 시프트업의 사내 게임 공모전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당시 프로토타입 기준으로 완성도는 지금과 비교했을 때 떨어지지만, 게임의 핵심이자 '창의적 비전'인 캐릭터 및 슈팅 매커니즘은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유형석 디렉터는 신선한 아이디어는 그 아이디어 자체만으로 승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임 디자인의 프레임워크 가공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인 채로 두지 말고, 게임에 어울리도록 가공 작업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케'에서는 기존 프로토타입의 1인 기반 전투에서 5인 동시 전투로 변경해, 캐릭터 게임답게 여러 캐릭터들을 만들고 유저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기반이 마련됐다.
더불어 모바일 플랫폼인 만큼 슈팅 조작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에 주위 NPC들을 통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5인 동시 전투로 가공이 이루어지면서 비주얼적으로도 전장의 치열함과 입체감이 살아나는 효과도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유형석 디렉터는 전반적인 게임의 비전을 확실하게 다잡을 수 있었던 계기였다며, 디렉팅을 하면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창의적이고 신선한 게임이 무조건 재미있는 게임은 아니다
유형석 디렉터는 '퍼스트 무버 게임'을 '창의적이거나 신선한 게임'이라고 정의했다. '퍼스트 무버'는 게임업계 외에도 다양한 산업군에서 쓰이는 용어로,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창의적인 선도자를 뜻한다.
이와 반대되는 용어 및 전략으로 '패스트 팔로워'가 있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은 다른 게임을 일정 부분 모방해 개발 기간을 단축시키거나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 경쟁이 심화될수록 기업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형석 디렉터는 게임에 대한 평가에서 종종 보이는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므로 응원한다'는 유형의 글을 소개하며, 이에 담긴 긍정적인 뉘앙스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가 신선해서 일수도 있지만, 신선한 게임이 꼭 재미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 디렉터는 게임을 디자인 하는 단계에서 보다 적합한 접근법으로 '낯설다'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권했다. 게임이 재미 없는 이유가 낯설기 때문일 수 있지만, 낯선 게임이 꼭 재미 없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낯선 게임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 것이냐'가 '신선한 게임을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 것이냐' 보다 개발자가 갖춰야 할 조금 더 적합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며 "새로운 것은 꼭 장점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낯선 것은 단점이 반드시 내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낯선 게임 '니케'의 단점, 전투 피로도와 개선
이어 소개된 '니케'의 사례에서 '낯선 것'의 단점이 드러났다. 개발 초창기 '니케'의 사격(슈팅) 경험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오랜 시간 스마트폰을 들고 즐기기에는 피로감이 높아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초창기 '니케'의 전투는 언제든 스킬을 사용하거나 사격을 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전투 형태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는 게임의 난이도를 상승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낳았다. 유저가 사격에 집중해야 하는지, 스킬을 어느 타이밍에 사용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하드'한 게임이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진은 PC RPG의 플레이 호흡 구축 방식을 참고해 '니케'에 응용했다. PC RPG에서는 전투와 게임 템포를 조절하는 장치들을 마련해 유저들이 피로감을 적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개발진은 이를 '니케'에 적용해 전투에서 긴장과 이완의 수축 구간을 설계하고, 사격 페이즈와 스킬 페이즈를 구분하도록 했다. 또 스킬 사용은 쿨타임이 아닌 특수한 조건에 의해 발동되도록 변경했다. 이를 통해 매끄러운 전투 흐름을 구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캠페인 필드, 메인 퀘스트 스토리를 통해 게임 템포를 구축했다. 유저는 전투에 진입하기 전 필드를 돌아다닐 수 있는데, 메인 퀘스트 동선에 따라 서브퀘스트나 수집 요소 획득 등을 즐기면서 언제든지 사격을 멈추고 다른 콘텐츠를 즐기며 템포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유 디렉터는 이렇게 개선된 요소가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며, 유저들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니케'는 그동안 총 7번의 테스트와 유저 피드백 수집을 진행했고, 이중 가장 주요했던 유저 피드백은 국내에서 진행한 '지스타'와 FGT였다고 밝혔다.
깊은 인상을 남기는 명장면의 중요성, 그리고 스파인 기술의 활용
한편, 유형석 디렉터는 신선한 요소를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장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명장면'으로 하여금 유저들에게 게임이 각인되는 긍정적 효과도 있겠으나, 이 외에도 개발하는 조직의 목표 수준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니케'의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마리안'의 움직이는 일러스트가 PPT를 통해 소개됐다. 유형석 디렉터는 이 일러스트에 적용된 기술이 Live2D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발 도중 기술 R&D를 통해 스파인(Spine) 기술을 활용하도록 변경되었다고 밝혔다.
기존에 많이 활용되는 2D 스파인은 다소 부자연스럽고 딱딱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니케'에 적용된 스파인 기술은 특정 부위의 트랙킹, 적과의 상호작용, 캐릭터의 3D 총기 모델링 구현 등이 가능한 Bone 구조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유 디렉터는 "'니케' 또한 처음에는 Live2D가 활용되었지만 R&D를 거쳐 보다 '니케'에 어울리는 기술이 스파인 임을 알게 되었다"며 "유사한 게임에 적합했던 시스템과 운영 방식이 우리의 게임에도 적합하다는 것은 보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선한 요소를 갖고 올 때나 그렇지 않을 때, 개발하고 있는 게임에 적합한지 시스템과 체계에 대해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기획팀과 개발실에 게임 디자인에 대해 건강하게 토론할 수 있는 파트너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필요하며, 디렉터의 시야 확장을 위해서만 활용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의견을 취합하거나,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답정너'식의 의견을 요구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당연한 시스템의 의도를 다르게 설계하는 것
이와 함께, 유형석 디렉터는 시스템의 의미가 플랫폼, 장르, 시기, 게임에 따라 변화해 왔음을 언급하며 친구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애니팡'이나 '몬스터 길들이기' 등의 모바일게임에서 친구 시스템은 다른 유저들이 함께 하는 '온라인 게임'임을 강조하기 위해 활용됐다. 하지만 MMORPG가 주류가 된 시점에서는 편의기능을 중심으로 한 활용도가 주가 됐다.
이와 같이 어떤 시스템의 의도를 다르게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니케'에서는 자동 전투가 그 예라고 설명했다. 다른 모바일게임의 자동 전투는 일종의 편의 기능이지만, '니케'에서는 플레이어에게 캐릭터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구현된 것이다.
더불어 그는 의도가 기존과 다른 시스템들을 활용할 때 설계 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시스템 간의 상호 관계를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고 팁을 전했다.
신선한 게임을 개발할 때는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
한편, 그는 신선한 게임을 만들 때 개발진의 의도나 생각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 즉 마스터 기획서와 피처 리스트를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시각화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또 '왜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소통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획자 외에 UI, 프로그래머, 아트, 캐릭터, 배경, 몬스터 등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어떤 게임을 왜 만들 것인가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소통을 위해서는 '말을 할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신선한 게임, '퍼스트 무버 게임'을 개발함에 있어 이러한 문화는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더 좋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문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다만 30~50명 수준의 규모가 되면 점점 더 소통이 어려워지는 만큼, 디렉터가 직접 소통 창구를 이용하거나 팀원에게 직접 물어보는 등 '액티브'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밝혔다.
더불어 유 디렉터는 디렉터 자신의 문제점은 스스로 체크하고 자기객관화를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본인이 '데드락'의 원인은 아닌지 점검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와 대안 제시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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