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던 모바일게임 전성시대에도 황혼기가 찾아온 것 같다. 모바일게임은 이제 어중간한 퀄리티로 출시해봐야 개발비만 날린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신작게임 라인업에 큰 회사에서 만드는 규모가 큰 게임이 간혹 보이는 것 외에는 간단한 게임류나 해외 게임들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 의견. 모바일게임 시장이 고착화되고 '레드 오션화'되었다는 것은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기 전인 2018년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성장률이 둔화될 때부터 나온 이야기로, 코로나 사태로 인해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보다 심화된 상태로 맞닥뜨리게 된 현실인 것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자 모바일게임을 포함한 게임산업 전체가 일시적 호황을 맞았고, 성장 둔화는 기우에 그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들자 모바일게임 시장의정체, 고착화는 다시, 더 크게 눈에 들어오는 현상이 됐다.
모바일게임 대작을 새로 만들려는 국내 게임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대형 게임사들도 다작보다는 엄격한 사내 심사를 거친 극소수 정예 타이틀로 승부에 나서게 됐다. 무엇보다 모바일게임에 주력하던 인디 개발팀들이 방향전환을 하고 있고 미래 한국 게임개발을 주도할 학생들의 脫 모바일게임도 가속화하고 있어, 플랫폼 전환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트렌드가 됐다.
모바일게임 만드는 학생, 인디 팀 찾기 힘들어졌어
9월 초 부산에서 열린 인디커넥트(BIC) 행사에서도 그런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출품된 게임 중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개발되는 게임은 찾기 힘들었으며, 대부분 출품작이 PC를 베이스로 콘솔을, 혹은 PC와 콘솔을 병행해서 개발되고 있었다. PC를 베이스로 모바일 버전도 병행 개발하거나 추후 모바일 버전을 개발해 출시한다는 비전 하에 개발되고 있는 사례도 많이 보였지만, 모바일 플랫폼만 보고 개발중이라는 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BIC는 모바일게임이 주류였던 지난 수년 동안에도 PC와 콘솔 플랫폼을 시야에 둔 게임이 다수 출품되어 행사의 개성으로 자리잡아 왔는데, 그런 경향이 22년 행사에서는 더욱 강화된 것이다.
청강대 교수이자 BIC 심사위원장도 맡고 있는 이득우 교수는 업계 트렌드가 PC와 콘솔로 옮겨가고 있고 앞으로 그런 현상이 더 강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이 교수는 "게임산업의 트렌드가 PC와 콘솔에 주목하게 된 상황"으로 현재를 진단하며 "예전 BIC는 PC게임이 왜 이렇게 많느냐는 질문도 받곤 했는데 PC와 콘솔이 화두가 되니 트렌드에 부합하는 행사가 됐다"고 강조했다.
BIC 2022에서는 오랫동안 차세대 게임, 미래의 주류로 인식되었던 VR과 AR 등 '차세대 게임'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많은 게임인들이 모바일게임 다음은 VR과 AR 같은 '차세대 게임' 시대가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모바일게임 시장이 성숙해 성장 한계를 보인 현재, 차세대 게임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다시 PC와 콘솔이 한국 게임산업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채용 줄었는데 인력난도 심해져
국내 게임업계의 코로나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20년과 2021년 호황을 맞았던 모바일게임은 2022년 들어서는 전반적으로 매출 및 유저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같은 말이 나오고 있다.
2022년 들어서는 시장 상황이 악화되며 위기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리게 됐다. 대형 신작들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도 늘며 채용을 줄이고 개발중인 타이틀의 옥석 가리기에 나서는 게임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우리보다 조금 늦은 2019년 비슷하게 모바일게임 시장 성장 둔화를 겪은 중국 게임사들은 코로나 호황이 찾아왔어도 세계화, 그리고 세계를 공략하기 위한 콘솔, 스팀 등 플랫폼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물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시기이다. 일본 역시 모바일게임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던 전통 게임사들이 다시 콘솔로 눈을 돌리며 명맥이 끊긴 IP 신작이 나오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안전한 길을 선택하려는 것인데, 아직은 눈에 띄는 좋은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국내 게임사들도 코로나 시기를 손놓고 보내진 않았다. 콘솔게임 개발에 도전하고, 하지 않던 장르, BM에 도전하는 게임사가 늘었다. 그와 함께 PC, 콘솔게임 개발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게임사가 많아 인재 확보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현재 게임업계 채용 상황을 살펴보면, 경제 상황 악화로 대형 게임사들이 공채에 나서지 않고 허리를 졸라매는 한편으로 메타버스 등 신규 사업, 콘솔과 PC 등 신규 플랫폼 도전에 나서며 인력난도 심해진 모순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PC, 콘솔 개발에 나서며 기존 모바일게임 개발자들에게 개발을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바일게임 경험만 가진 개발자들에게 PC, 콘솔 게임 개발을 맡길 경우 아무래도 티가 날 수 밖에 없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서도 젊은 개발자들이 UI를 모바일게임 식으로밖에 못 만든다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들리는 요즘이다.
과거 PC게임 개발 경험을 가진 시니어 개발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엔씨, 넥슨은 어떻게든 개발팀을 꾸려서 신작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컴투스 등 모바일게임에서만 활약해 온 게임사들에겐 인재 확보가 급선무다.
이런 상황에서 컴투스를 비롯해 펄어비스 등 많은 게임사들이 경력직 채용과 함께 PC와 콘솔 플랫폼 개발을 공부해 결과물로 증명까지 한 학생들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고, 뛰어난 결과물을 선보인 학생 개발팀들을 통째로 영입하는 과감한 행보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측면도 있지만,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기자는 BIC 2022에서 호평받은 개발팀 중 하나가 졸업 후 전원 대형 게임사 C사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했는데, 게임 소싱이 아닌 개발팀 소싱을 위해 BIC를 찾는 게임사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성공한 게임 따라하기' 시대로
어찌어찌 개발팀을 꾸리고 PC, 콘솔게임 개발에 뛰어든 국내 게임사들이 다음에 맞닥뜨리는 고민은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이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냥 잘 하던 것, 뽑기 BM의 F2P 게임을 이식하는 경우도 있고 가진 게임을 플랫폼에 맞게 개조해 출시하기도 한다. 그런 한편으로 플랫폼에도 맞고 트렌드에 맞는 게임을 새로 만들어 출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트렌드에 맞는 게임, 즉 이미 시장에 나와 잘 되고있는 게임을 모방하며 엣지를 더해 시장을 나눠갖고 새로운 파이를 창출하자는 전략이 다시 PC 게임시장에서 부활했다.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출현하기 전, 온라인게임 시장이 지속 성장하며 파이가 계속 커지던 2010년대 초까지는 PC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모두가 이미 성공한 장르, 타이틀을 모방해 우리만의 엣지를 더해 출시한다는 전략을 취했다. FPS 게임이 하나 성공하면 FPS 타이틀이 쏟아져 파이를 나눠가졌고, 액션게임이 잘 되면 액션게임이 쏟아지고 MMORPG가 잘 되면 MMORG가 쏟아졌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가 시장을 지배한 뒤로는 MOBA 장르 신작으로 도전하는 게임사가 모두 실패해 이런 시도가 무의미해졌다. 블리자드, 넥슨, 엔씨소프트와 같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기존 전략으로 MOBA 신작에 도전한 게임사는 많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1등 게임과 어느 정도 시장을 나눠갖고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교훈만 얻고 끝났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따라해선 성공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와 있는데 새롭게 성공하는 장르나 신작도 없는 상황. 모바일게임 시대가 시작되며 PC 온라인게임 개발이 줄어들어 자연스레 국내에서 PC게임 개발은 끝장난 것 같았다.
넥슨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서든어택2'를 출시할 때 김대훤 본부장(현 넥슨 개발총괄 부사장)이 '더 이상 참고할만한 게임이 없어서 서든어택을 그대로 2로 옮겼다'는 발언을 해 화제를 모았는데, 이 '참고할 만한 게임이 없다'는 것은 사실 넥슨만이 아닌 한국 게임업계가 가진 고민거리였던 셈이다.
2022년으로 시점을 되돌려 국내 게임시장을 살펴보면, 모든 게임사가 모바일게임에 집중하다 코로나 사태까지 겪고 나서 보니 국내에는 큰 규모의 스팀 유저층과 여전히 모바일게임, PC게임에 비하면 비중이 작지만 크게 성장한 콘솔게임 유저층이 생겨 있었다.
한국 게임시장 규모를 살펴보면 한국 PC게임 시장 규모는 세계에서 2, 3위를 다투는 더 메이저한 시장이다. 온라인게임의 비중이 크지만 스팀, 에픽게임즈 스토어 등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한 편이다.
콘솔게임을 보면, 20년 전부터 세계 시장의 1%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시장이었던 것이 현 새대 콘솔로 접어들어 빠르게 성장해 이제는 세계 시장의 2%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세계 콘솔게임 시장이 신형 콘솔 등장과 함께 다시 성장하는 와중에 비중을 2배 늘렸다는 것은 국내 콘솔게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시장에 나아가 좋은 성과를 내는 국산 콘솔, PC게임도 계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시장도 국내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글로벌에서 큰 성과를 기대한다는 과거 전략을 답습할 정도는 되는 규모의 시장이 되었다.
스팀과 콘솔을 공략하는 국내 게임사들의 시선은 MMO나 MO, MOBA, 서바이벌 등 기존 주류 장르에서 벗어나 해당 플랫폼에서 인기있는, 훌륭한 게임 디자인으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게임들이 있는 장르로 향하게 됐다. 멀티플레이가 아닌 싱글플레이에 초점을 둔 게임에 도전하려는, 10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도전에 나서는 케이스도 늘고 있는데, 시야를 넓히니 참고할 만한 게임은 여전히 많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근래 인기있는 장르를 참고해 엣지를 주자는 생각이 담긴 타이틀이 국내외 대형 게임사들에서 부쩍 자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전통 게임사들도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플랫폼이 아닌 PC로 나오며 같은 시도에 나서고 있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를 참고해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비대칭 PVP 액션게임 '드래곤볼 브레이커즈'와 캡콤이 선보인 '바이오하자드 ' 스핀오프 게임들, 가깝게는 넥슨이 '데스티니'를 참고해 개발중인 '퍼스트 디센던트'나 '시벌리', '포아너' 등을 참고해 개발중인 것으로 보이는 '워 헤이븐' 등이다.
일본 게임사들은 IP로 엣지를 주자는 생각이고 국내 게임사들은 우리는 온라인게임 운영 노하우가 있다는 자신감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나와봐야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꽤 높다고 본다.
세계적 기대작이 된 네오위즈의 'P의 거짓'과 같은 사레도 있고, 인터랙티브 싱글플레이 게임을 만들고 있는 엔씨소프트나 액션게임을 개발중인 시프트업의 신작 등도 참신한 시도로 기대를 모은다.
약점인 스토리 보완하고 인재 확보 나서야
콘솔과 PC에서 승부에 나서는 한국 게임의 가장 큰 약점은 스토리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온라인게임 시대는 물론 모바일게임 시대에도 국내 게임사들은 제대로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려낸 경험 자체가 적다. 오랫동안 서비스되는 온라인게임 특성 상 설정과 스토리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은 투자 대비 효용이 적은 탓에 경시되어 왔다.
'리그 오브 레전드' 쇼크 후 대안을 찾아 콘솔 플랫폼을 모색하던 국내 게임사들이 유명 작가를 기용해 싱글플레이 개발에 도전한 시절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근래 발표된 국내 게임사들이 콘솔에 도전한다는 게임들을 보면 캐릭터, 그래픽, 액션은 강조되고 있지만 스토리를 강조하는 게임은 많지 않다. 콘솔과 스팀, 싱글플레이 게임에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리 겉모습이 좋아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부터라도 시나리오 기획자를 파트타이머 정도로 간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제대로 기용하고 대우해 육성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인재 채용 면에서도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할 것이다. 콘솔과 PC 개발 경험자가 적다고 모바일게임 UI와 디자인을 그냥 옮겨선 애초에 선택지에도 들 수 없는 게임이 된다. 콘솔과 스팀을 기반으로 개발 공부를 한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할 것이고, 해외 채용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콘솔게임 개발을 하고 싶어 해외로 나간 개발자들이 국내에도 콘솔게임 개발 기회가 있다면 돌아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는데,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개발자들을 적극 수용한다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비슷하게 콘솔게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텐센트, 넷이즈 등 중국 게임사들이 국적 불문 개발사 인수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M&A에도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더 빠르게 행동해야 할 시기, 탐색의 시간을 가지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 빠르게 결과물을 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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