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로 세계적 대가의 반열에 오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을 일본에서 보고왔다. 2023년 3월로 예정된 국내 개봉을 기다릴까 했는데, 일본 지인들의 평가가 굉장히 높아 궁금증을 못참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결론부터 적자면 명불허전, 지인들의 평가는 과장이 아니었다. 4박 5일 체류하는 동안 '스즈메의 문단속'만 3번을 보고 팸플릿과 관련 굿즈를 구입하게 되었을 정도였다.
아직 국내 개봉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을 수는 없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앞선 두 작품이 흥행과 함께 많은 비판도 받았던 것에 비해 이번 작품에서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작품'으로 만들려는 신카이 감독의 의지가 느껴졌다.
'너의 이름은.'부터 시작된 신카이 마코토표 '재해 3부작'의 완결편이자 재해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령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일본 사회에 화합을 요구하는 작품.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작품의 해석이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런 배경지식을 빼고서도 잘 만들어진, 재미와 메시지성을 두루 갖춘 수작이었다.
지브리의 전성기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해되고, 미야자키와 타카하타 감독의 장점을 모두 이어받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되는 작품이다. 지브리가 한때 시대정신을 작품에 담는다는 평가를 받았듯 지금 일본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스포일러 없이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느낀 점,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봤다.
신카이 마코토, 비판에 답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너의 이름은.'에서 재해를 치유하는 내용을 담으려 했지만, 개봉 후 '재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영화', '재해를 이용하는 영화' 같은 비판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너의 이름은.' 다음에 선보인 '날씨의 아이'는 그런 비판에 대한 답으로 느껴졌다. 재해가 없어지지 않고 우리 일상과 함께하는 세계를 그려내어 재해의 위험과 늘 함께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현실을 그려냈다. 세상을 위해 한 사람이 희생되어야 한다면 세상에 재해가 닥쳐오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겠다는 일본답지 않은(?) 강렬한 메시지도 담아 기자를 포함한 일부 팬들에게는 '너의 이름은.'을 뛰어넘는 걸작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깔끔한 해피엔딩을 보여줬던 전작과 달리 결국 세계에는 재해가 닥쳐왔다는 암울한 결말 속에 주인공 커플만 행복해지는 게 말이 되느냐는 당연한(?)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앞선 두 작품을 만든 경험과 그에 대한 평가를 모두 고려한 듯한, '재해' 자체보다는 재해에 희생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위령과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개봉하고 한달여가 지났지만 아직 전작들과 같은 알기 쉬운 비판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명확한, 알기 쉬운 메시지를 담은 데다 메시지의 내용이나 묘사에 흠잡을 데가 없다는 느낌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나 작품에 대한 분석이 더 이뤄진다면 또 무언가에 대한 비판이 나오겠지만 현재로서는 '신카이 감독이 비판을 불허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출 면에서도 기존의 '유치하다', '습관을 못버린다'는 비판을 받았던 뮤직비디오를 이어붙인 듯한 연출이나 여성 캐릭터의 신체를 훑는 듯한 카메라워킹 등이 싹 사라졌다. 테마송은 작품이 끝난 뒤 엔딩에서야 겨우 흘러나오고, 연출은 담백해졌다.
내용이나 연출 등에서 오랜 팬들은 '신카이 마코토가 변했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더 대중적으로 보편적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세계의 신카이 마코토'가 되었는데, 차기작은 일본에서 벗어날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게임 영상으로 이름을 알린 뒤 자주제작 애니메이션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일부 애니메이션 마니아, 소수의 열렬한 팬층을 가진 감독이었다.
국내에서는 '초속5센티미터'나 '언어의 정원'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관객 5만명 전후가 보는, 어디까지나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찾는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영화제에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하곤 했는데, '별을 쫓는 아이'나 '언어의 정원'으로 내한했을 시절에는 인터뷰를 신청하는 매체가 많지 않아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가면,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라'고 원하는 만큼 독대가 가능한 감독이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이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위상이 바뀌었다. '너의 이름은.'을 들고 내한했을 때에는 쏟아지는 인터뷰 신청에 공중파 방송 출연 정도 스케쥴만 공식 소화해야 했고, 기자는 신카이 감독의 휴식 시간에 별도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당시 기자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들의 신카이 감독이 이제는 세계의 신카이 마코토가 되어 흥행감독이 되니 조금 쓸쓸한 느낌도 들지만 기쁜 마음이 더 크다. 앞으로 계속 이런 작품을 보여준다면 감독의 팬으로서도, 아니메 팬으로서도 대만족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별말을 다 한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 이번엔 무리지만 다음에는 맥주라도 한잔 하며 느긋하게 이야기를 하자"고 답했었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로 연타석 홈런을 친 신카이 감독은 '날씨의 아이' 때에는 한국에 오래 머무를 시간조차 뺄 수가 없는 바쁜 감독이 되어버렸다.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내한할 때에는 더 바쁠 것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감독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의 신카이 마코토'로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져줄 작품이 될 것 같다.
'너의 이름은.'으로 시작된 재해 3부작의 마무리이자 일본의 현대를 배경으로 그려낸 판타지의 궁극. 이제 신카이 감독의 다음 행보에 기대되는 것은 일본을 벗어나 세계를, 혹은 창조된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여준 다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여줬듯, 신카이가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문화의 극한에 도달해 보여주는 미려한 영상미로 표현된 다른 세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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