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업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로 '미투 상품'이 있다. '나 역시(Me too)'와 상품이 결합된 말로, 특정 회사의 상품이 인기를 얻어 붐을 일으키면 경쟁사에서 기능이나 상표를 유사하게 만들어 출시한 것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예로는 오리온의 '초코파이'와 롯데제과의 '롯데 초코파이'가 있겠다.
'미투 상품'은 기업의 R&D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쫓아가기 어렵고, '미투 상품'이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에 오르는 제품을 견제해 시장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미명 아래 특히나 식품 업계에서 제품군을 가리지 않고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원조가 되는 상품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개선해, 원조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미투 상품'이 등장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미투 상품'은 좋게 포장한 말일 뿐, 손쉽게 다른 회사의 노하우를 가져다 쓰는 '표절'이나 '베끼기'에 가까우며, 이 때문에 기업들이 R&D에 힘쓰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우후죽순 '미투 상품'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하며, 원조를 보유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심지어 하나의 완전한 오리지널 제품과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높은 비용과 많은 시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러한 관행이 '도둑질'에 불과하다는 강한 비판도 나온다.
장기적으로 질적 하락 불러오는 '미투 상품', 식품업계의 사례를 보라
기업 입장에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도 '미투 상품'은 일장일단(一長一短)이다. 단기적으로는 다양한 제품군이 등장하고 그 과정에서 선택지도 늘어나는 등 장점이 많아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단점이 명확하다.
식품 업계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용이 겨우 1%를 밑돈다는 것이 단점의 명확함을 증명한다. 대다수의 식품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매출액 대비 1% 이하의 R&D 비용을 투자하며, 이마저도 점차 감소하는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 해 1만여 개의 신제품이 출시되고, 이중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히트 상품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는 존재한다. 하지만 R&D에는 소극적으로 움직이면서 '미투 상품' 제작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체 업계의 성장과 발전에 저해가 되는 요소임은 분명해 보인다.
'~라이크'와 '미투 상품'의 결정적 차이, 고유한 개성과 특징
게임업계에서의 유사한 사례로는 '~라이크'를 들 수 있다. 액션, 슈팅 등 큰 합집합의 장르에도 물론 속하지만, 특정한 게임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요소들을 차용해 개발되는 게임들을 분류함에 있어 '~라이크'라는 용어가 자주 쓰이곤 한다.
이제는 MMORPG, MOBA 등 특정 장르명을 넘어 '로그라이크', '소울라이크' 등의 용어로 그 게임의 핵심 아이덴티티를 설명하곤 한다. '이 게임에 영감이나 영향을 받았고, 베낀 것은 아니다'라는 일종의 자기주장이자 어필이다. 이는 마케팅 용어로도 적극 쓰이는 추세다.
'~라이크'와 '미투 상품'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은 '라이크'라는 단어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영어 단어 like가 '~과 비슷한'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라이크' 장르는 원전 게임의 일부 요소가 포함되면서도 얼마나 그 게임만의 개성과 특징이 살아있는지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게임업계에서 이러한 표절이나 베끼기는 매우 민감하게 다뤄지는 문제다. 패러디, 오마주, 표절 등으로 '베낀 요소'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도 자주 벌어진다. 단순히 이용자들 사이에서의 논란에 그치지 않고 법적 공방으로도 이어지곤 한다.
특히나 이용자들에게 있어 이것이 민감하게 받아 들여지는 문제인 이유는, 기업들의 수익이나 IP 가치의 보존 이전에, 게임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닌 이용자들이 팬심을 가지고 즐기는 콘텐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최소한 국내 게임 업계에서는) 단순히 아이디어만을 채용했거나 영감을 받은 정도라면 정상 참작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명백히 표절이라고 법적으로 인정받은 사례도 찾아보기 어려워 사실상 양심의 문제, 도의적인 문제로 취급 받곤 한다. (그렇기에 부정경쟁방지법도 소장에 포함됐을 것이다.)
"우리가 R&D한 노하우" vs "장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요소"
'리니지 라이크'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최근 MMORPG 장르의 스타일과 공식은 어느 정도 정립된 상황이다. '오딘: 발할라 라이징'이나 '프라시아 전기', '히트 2' 등의 소위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은 저마다의 특징과 재미를 위한 차별화 요소들로 이용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들을 기반으로 엔씨소프트가 제기한 소송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즉, 쉽게 표현하자면 엔씨소프트 입장에서 '아키에이지 워'는 '리니지 라이크'가 아닌, 표절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선을 넘은 것이다. 어떤 게이머는 '아키에이지 워'를 플레이 하면서 '저작권법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고 리뷰하기도 했다.
물론 '해상전'이나 '무역' 등으로 차별화를 꾀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또 '아키에이지'의 세계관이나 종족, 지역명 등 고유명사도 활용했을 것이며, UI와 콘텐츠도 최근 출시되는 MMORPG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성공 공식'을 기반하여 구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카오게임즈가 7일 밝힌 입장문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담겼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여론은 싸늘하다. 다양한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을 즐겨본 이용자들이 느끼기에도 '~라이크' 이상으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매출도 높게 나올 수 있겠지만, 브랜드와 IP에 가해지는 타격은 되돌릴 길이 없다. 오죽하면 '아키에이지 워'가 '아키에이지 2' 개발비 펀딩용 게임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있을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엔씨소프트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리니지 라이크' 장르를 대중화 시킨 장본인(?)으로 비판을 받곤 하지만 이번 소송 이후 오히려 엔씨소프트에 대한 응원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양심의 문제에서 법적 공방으로… 순탄치 않을 '삼자 대면'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이용자들 사이에서의 평가, 또는 양심과 도의적인 문제를 넘어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사안으로 불길이 번졌다.
관건은 카카오게임즈의 주장대로 'MMORPG 이용자들의 플레이 환경을 고려한 인터페이스와 조작 방식, 콘텐츠, 동종 장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온 게임 내 요소 및 배치 방법'을 법원이 표절로 판단할지 여부다.
엔씨소프트의 주장대로 자사가 R&D하여 내재한 하나의 '장르적 노하우'로 볼 것인지, 또는 카카오게임즈의 주장대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장르적 특성으로 볼 것인지 법원의 판단에 달린 것이다.
다만 게임업계에서는 법적으로 '표절'을 인정받기 매우 어려운 편인 만큼, 이번 소송 건은 세 회사 간에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또 실제로 '표절'이라고 법적으로 인정을 받는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는 이미 웹젠과 같은 이슈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1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식품업계의 '미투 상품'에 대한 판결 사례에서도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소송에서조차 원조 업체가 승소하는 사례가 드물다. 엔씨소프트가 저작권 침해 외에도 부정경쟁방지법을 소장에 포함한 것도 결국 보다 폭넓게 보호 받을 여지가 있는 요소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미투 상품'으로 인한 질적 하락 경계해야
'아키에이지 워'가 이렇게 개발된 것은 분명 매출, 수익, 사업, 실적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마치 식품 업계에서 관행으로 이루어지는 '미투 상품' 제작과 같이, 히트 상품 '리니지2M'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 파이를 가져와 수익을 내자는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식품 업계처럼 이렇게 지극히 단순하고 사업적인 시선으로만 게임을 바라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 '파이를 가져오자'는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리니지2M'과 '최대한' 유사하게'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게임은 상품이지만 동시에 콘텐츠이기도 하다. 면봉, 칫솔, 나무젓가락처럼 같은 모양으로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공산품에도 이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의 영역이 포함되기까지 한다. 면밀한 R&D조차 없이 거의 그대로 가져다 만든 '미투 상품' 식의 게임 개발 및 서비스는 절대 옳은 방향성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이름이 잘 알려진 게임사가 인력과 시간, 비용을 들여가며 '미투 상품'식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는 현재 업계의 상황과 환경도 개탄스럽다. 원작 '아키에이지'의 매력적인 게임성을 기대했던 팬들의 실망감은 누가 위로할 것인가?
R&D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수익을 내기 위해 사업적인 측면만을 생각한 게임이 등장하면 등장할수록 '게임'이라는 상품, 콘텐츠의 질적 하락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선택지마저 줄어들 수 있다. 기업의 적극적인 R&D나 색다른 도전도 이루어지지 않게 될 우려가 있다.
이제는 단순히 표절이다 아니다의 문제를 넘어, 게임업계는 소송의 결과와는 관계 없이 업계 전체의 질적 하락을 경계하고 보다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동 장르의, '~라이크' 게임을 만들 것이라면 부디 '미투 상품'이 아닌,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만들기를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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