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기 게임의 장르에도 유행과 계보가 있다. 다양한 파생 장르로 꾸준히 인기가 높은 슈팅을 비롯해 액션, RPG, 퍼즐, 공포, 대전격투 등 그 종류도 다양하며 저마다의 팬층을 형성하며 발전과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소위 RTS라 불리우는 장르는 이러한 인기 장르의 계보 중에서도 꽤 초기에 자리한 전통의 강자다. 한 시대를 풍미한 것은 물론이고, 유저들이 만들어낸 맵과 모드가 곧 스탠드 얼론 게임, 나아가 장르가 되기도 하는 등 게임사(史)에 끼친 영향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RTS 장르의 인기는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4' 등 종종 신작이 깜짝 등장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이전처럼 대세감을 형성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여기에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등 신흥 강자들이 속속 등장했고, 접근성이 뛰어나고 가벼운 게임을 선호하는 기조가 생겨난 시장의 흐름까지 더해지면서 RTS는 다시 부흥할 수 있을지 확언할 수 없는, 볕들 날을 기다리는 마니아들의 장르가 됐다.
*관련 기사: RTS 게임의 새 바람 불까? '스톰게이트' '배틀 에이스' '스페이스 기어즈' 등 신작들 '기대 만발'
이 가운데 최근 몇 년 사이 RTS 신작들이 개발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프로스트자이언트의 '스톰게이트', 언캡드 게임즈의 '배틀에이스' 등이 그것이다.
특이사항이라면 두 게임 모두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출신의 개발자들이 참여한 회사에서 만드는 RTS라는 공통점이 있다. 네임밸류라는 것을 무시하기는 어렵고 신작이 뜸한 RTS 장르인 만큼 나를 포함한 팬들의 기대감이 상당했던 것 같다. 나 또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3' 등 RTS 장르를 두루 즐겼기에 기대감이 컸다.
*관련 기사: [리뷰]데이비드 킴의 신작 RTS '배틀 에이스', 현대화된 RTS를 위한 고민과 해답 담겼다
데이비드 킴이 개발에 참여한 '배틀 에이스'가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각종 요소들을 대거 삭제하거나 축소하는 등 소위 '현대화된 RTS'로의 도전을 했다면 '스톰게이트'는 보다 RTS 팬들, 특히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즐겼던 유저들에게 어필할 만한 '정통 RTS'에 가깝다. 전반적인 시스템이나 콘텐츠의 구성이 특히 그렇다.
직접 즐겨본 '스톰게이트'는 이러한 정통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정작 그 완성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감상을 받았다.
자체 엔진의 개발 등 기반을 다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탓인지 과거 인기를 끌었던 RTS들에 비해 특별히 더 나아지거나 '스톰게이트'만의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또 롤백 등의 기술적인 발전에 힘을 쏟은 것은 응원할 만하지만, 그 이전에 게임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또 e스포츠를 포함한 장기 개발 로드맵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게이머들이 아직 부족한 완성도의 게임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 줄지는 솔직히 확언하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게임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치열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진입장벽 완화를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버디봇', 실 사용시 감각은 '글쎄'
물론 '스톰게이트'만의 특별한 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버디봇'이다. '버디봇'은 게임의 AI가 유닛 생산, 건물 건설 등 매크로 적인 동작을 대신 수행하고 돕는 시스템이다. 세부 설정도 가능하며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1대1 매치에서는 지원하지 않는다.
'버디봇'은 정통 RTS를 완전히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RTS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접근하기에 어려워 시작조차 안하는 사람이 많은 요즘이다. 기능의 도입 자체는 환영할 만 하지만 PVP에서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그 의미가 퇴색된다. 물론 PVP에서 지원하지 않는 것이 이해는 되나, 1대1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낮은 티어에서라도 사용 가능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PVP에서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은 또 하나의 단점을 동반한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또 그럴만한 유저가 많지는 않겠지만 이 기능을 사용하는 PVE 유저의 PVP 진입을 막는 하나의 진입장벽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버디봇'을 지원하지 않는 것 자체만으로도 접근을 꺼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버디봇'을 사용함에 있어 불편한 점도 있다. 일꾼 생산, 기지 건설 등 원하는 메뉴만 켜고 끌 수 있도록 세분화해 지원하고 있는데 이 기능들이 내가 조작하는 것보다 적재적소에, 또 원활하게 잘 작동하는 느낌이 아니다. 심지어 내 플레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한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보다 더 세부 설정이 가능하거나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1대1부터 캠페인, 협동전까지 마련… 정통 RTS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스톰게이트'
1대1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준수한 편이다. 하지만 이는 '스톰게이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RTS 장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발목을 잡는 부분은 종족간의 밸런스 문제다. 현재 시점에서는 '셀레스철'이 종족의 특성상 자원적으로 얻는 이득이 지나치게 커서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협동전 콘텐츠는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다. 아직 출시 초기이기 때문인지 미션이 다양하지 않고, 그 구성이 다채롭거나 색다르지도 않다. 영웅을 선택하고, 레벨을 올릴 때마다 각종 보너스를 얻어 보다 강력해지는 등 '스타크래프트 2'의 협동전과 콘텐츠 구성 자체가 워낙 닮아서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될 법 하다.
캠페인은 그 볼륨과 퀄리티 모두 부족하다. 적은 분량, 빈약한 연출, 부족한 서사적 완성도, 흥미롭지 않은 게임 플레이가 각각 서로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시너지를 주고 있다. 분량이 적은 부족한 완성도의 스토리를 빈약한 연출과 게임 플레이로 즐겨야 하기 때문에 혹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료 캠페인 중 '저항'의 경우 어느 정도 도전적인 난이도와 '뱅가드' 종족의 특성을 살린 구성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지만 그 외 미션들은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 향후 어떤 방향성을 갖고 캠페인이 개발될지, 그 완성도는 어떨지 확언하기 어렵지만 일단 첫인상은 아쉽다.
비주얼은 호오가 갈릴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나 '커맨드 & 컨커'처럼 리얼리스틱한 느낌이 아니고 아기자기 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장난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눈이 즐겁고 좋다고 하기도 부족한 애매모호한 상태다. 비주얼의 경우 다르게 바뀔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적응하는 수밖에 없겠다.
시인성 문제도 언급하고 싶다. '뱅가드' 유닛들은 전반적으로(특히 '랜서'를 비롯한 보병 유닛들이) 뭉쳐져 있을 때 한 눈에 구분하기 어렵다. 각 종족들의 건물들도 마찬가지로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 건물이 어떤 유닛을 생산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알아보기 어려웠다.
유닛 움직임과 조작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원거리 유닛들의 무빙 후 어택은 꽤 기민하게 반응하는 편이고, 원하는 대로 유닛들이 움직여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유닛들의 패스파인딩(길찾기 로직)에는 아직 약간의 문제가 있는듯 하다.
과하게 많이 설정된 유닛 별 스킬들은 간소화 필요해
또 하나 아쉬운 점을 꼽자면 유닛들의 스킬과 업그레이드가 너무 과하게 많다는 점을 들고 싶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 지적됐던, 그리고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요소였음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 저티어 유닛들은 패시브가 상당수 업그레이드로 할당돼 있고 일부 고티어 유닛들은 스킬을 3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워크래프트 3'처럼 유닛 간 전투가 매우 길다면 스킬이 많아도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톰게이트'의 대규모 교전 템포는 '스타크래프트 2'와 '워크래프트 3' 사이 정도이며 사용해야 하는 스킬이 상당히 많다. 스킬 하나하나가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경우도 있다. 단순히 초보와 고수의 기준을 가르기 위한 의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다.
저티어 유닛들도 업그레이드를 통해 후반부에서 활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장갑, 근원거리 등 명백히 상성이 존재하는데 굳이 스킬로 상성을 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마이크로 컨트롤을 강요하는 방향이어야만 했을지 물음표가 남는다. 스킬과 패시브 등은 대폭 간소화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종족 별 특성과 유니크함에도 물음표가 남는다. '뱅가드'는 거의 '테란'과 동일한 수준의 유닛 기획을 갖고 있다.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지만 다르게 말하면 '테란'의 또 다른 버전을 플레이 하는 듯한 감각이다.
'셀레스철'은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나 '뱅가드', '인퍼널'과는 확연히 다른 요소들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타 종족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은 '사기 종족'으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쉬운 첫 발걸음 뗀 '스톰게이트'… 평가 반전 가능할까
현재 '스톰게이트'는 전반적으로 들어간 개발 기간 대비 퀄리티가 너무 부족하다. 장기적인 개발 로드맵은 잡혀 있지만 이대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해도 될 정도다. 새로운 유저들의 유입도, 기존 RTS 유저들을 유입도 바라기 어려울 정도로 전반적인 완성도가 아쉽다.
요즘 게이머들은 하나의 게임을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특히나 첫인상부터 게임의 흥망과 운명이 결정되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다 재미있고 할만한 게임이 많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테스트를 진행한 RTS '배틀에이스'는 장르의 한계와 단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과 고민, 그리고 그 해답이 엿보였다. 빌드 오더, 반복 생산의 매크로 플레이 등 장르에 진입하는데 있어 방해가 될 수 있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적절히 손봤고, 이는 실제로 긍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비전과 기획이 명확히 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톰게이트'는 전반적인 기획이 '스타크래프트 1', '워크래프트 3', '스타크래프트 2' 정도에 머물러 있다. 캠페인, 1대1 대전, 협동전 등 모든 것이 그렇다. 만약 정통 RTS의 부흥을 꿈꾸고 싶었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와 비전을 보여줘야 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e스포츠와 관련된 계획도 너무 성급하다. e스포츠를 개발사에서 직접 푸쉬해서 잘 되는 경우는 정말로 흔치 않다. 게임 개발 및 서비스, 운영과는 별개로 e스포츠씬의 구축을 위해 지속적으로 수년 동안 해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수준이다. 비교적 최근 이렇게 푸쉬를 받아 자리를 잡은 게임은 '발로란트'나 '이터널리턴' 정도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e스포츠씬을 먼저 꿈꾸는 것 보다는 게임성이 선행되어야 하고 또 기본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 풀이 최소 1~2만 명 이상은 확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스톰게이트'는 첫 시작에서 불안 요소가 나타나는 듯 하다. 지금과 같은 퀄리티, 유저 풀, 화제성, 지속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하면 다종목을 운영하는 프로 팀들조차도 팀을 창단하며 진입하는데 매리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e스포츠가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오랜 기간을 거쳐 증명됐다. 특히 RTS와 같은 장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신규 유저의 유입, 기존 유저들을 위한 일종의 보너스, 서비스와 같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기반이 탄탄하게 잡힌 상황이 아님에도 무리하게 e스포츠 로드맵을 구성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감이 있다. RTS의 인기와 화제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시대적인 현실을 인정하고 게임을 다듬는 과정이 우선 되어야 할 것 같다.
종종 이야기 되는 '이 게임 외에 대체제가 없다'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어느 정도 통용되는 느낌이다. 사전 체험 기간 중 오디오, 사용자 정의 단축키, 캠페인 개선 등 다양한 피드백을 반영하겠다는 공지사항이 게재되었는데, 현재 아쉬움을 남기는 각종 요소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과 e스포츠씬의 성공까지 이루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 |
| |
| |
| |
|
관련뉴스 |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