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생존과 윤리 그리고 정치적 선택으로의 확장까지, '프로스트펑크 2'

등록일 2024년09월24일 10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윤리와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게임들로 평단과 유저 모두에게서 호평을 이끌어 냈던 11비트 스튜디오의 신작 '프로스트펑크 2'가 긴 동면을 마치고 깨어났다.

 

전작인 '프로스트펑크'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빙하기로 도시가 몰락하고 수많은 이들이 사망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한데 규합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도시)를 건설 및 발전시켜 혹한 속에서 생존하는 것이 목표인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도시를 이끄는 '대장'이 되어 시민들, 더 나아가 도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갈등하며 선택해야만 한다.

 

'프로스트펑크'는 플레이어에게 당장 힘들고 어렵지만 인간적인 선택을 할 것인지, 혹은 효율과 생존을 위해 비인간적인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인간적인 선택지를 고를수록 게임은 어려워지며, 어린 아동들에게 노동을 시키는 등 생존만을 추구하는 비윤리적 선택을 할수록 쉬워진다. 이는 분명 의도된 것이었고 실제로 호평의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이처럼 그동안 11비트 스튜디오가 선보인 게임들, 특히 '프로스트펑크'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은 단순히 게임을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가도록 할 것인지 고르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의 재미도 훌륭하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질문과 선택에 대한 고찰이 자연스럽게 게임에 녹아 있다.

 

전작에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생존과 윤리적 가치를 두고 고민해야 했다면, 신작 '프로스트펑크 2'에서는 여기에 더해 더욱 먼 미래를 위한 도시의 확장 관리, 각 세력들의 규합 내지는 탄압 등을 포함해 플레이어의 정치적인 능력까지도 시험대에 오른다. 이러한 요소들은 게임 내에 시스템으로 적절히 녹아 들어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후속작 '프로스트펑크2'는 11비트 스튜디오 특유의 개성과 무심하게 던지는 질문이 보다 날카로워지고 게임과 자연스럽게 융화되었으며, 변화한 시스템과 새로 도입된 시스템으로 인해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도 보다 깊어진 상당한 수작이었다.

 

만약 전작을 몰입해 즐겁게 플레이 했다면, 그리고 11비트 스튜디오가 묻는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할 준비가 된 게이머라면 지금 바로 '대장'의 뒤를 이어 도시를 이끌어나갈 '위원장'이 되는 것을 추천한다.

 


 

"도시는 무너져선 안 된다(THE CITY MUST NOT FALL)"

'프로스트펑크 2'는 전작의 30년 뒤를 그린다. 생존자들을 규합하고 '화이트아웃'에서 생존하는데 성공한 전작의 '대장'은 결국 사망하고, '뉴 런던'은 인구 과밀과 식량 및 석탄 고갈로 몰락할 위기에 처한다.

 

대장은 사망 전 플레이어(위원장)를 도시를 이끌 새로운 인물로 지목했지만 저마다의 성향과 목표를 가진 세력들과 시민들은 아직 위원장을 믿지 않는다. 이 가운데 플레이어는 석탄과 석유 그리고 식량과 자재 등 각종 자원을 확보하고, 세력들을 결집시키거나 이용하며 도시를 관리하고, 또다시 다가오는 '화이트아웃'에서 살아남아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프로스트펑크 2'는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인간 군상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비주얼 및 음악도 매우 일품이다. 위원장이 되어 도시를 이끌어나가는 과정은 몰입감 넘치며, 그 과정에서 계속되는 선택과 줄타기도 위태롭지만 또 흥미롭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은 전작보다 조금 더 복잡해졌다.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대개 그렇기는 하지만, 튜토리얼부터 그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고 관리해야 하는 요소도 많기 때문에 처음 접했을 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스트펑크 2'의 튜토리얼은 예시 영상을 포함해 매우 상세히 설명되어 있고, 각 메뉴나 시스템마다 튜토리얼에 빠르게 접근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또 제시되는 퀘스트를 따라 플레이 하다 보면 게임에 적응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전작을 플레이 해본 적이 있다고 해도 여러 새로운 요소들이 있기에 정독을 권하고 싶다.

 





 

도시와 시민들의 생존, 그 다음 단계로의 여정

인게임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게임의 핵심이 되는 자원 관리 및 건설의 '시뮬레이션' 파트, 의회 및 세력 그리고 의안 투표 등의 시스템이 추가되며 보다 깊이 있는 게임성을 제공하는 '정치' 파트 등 두 가지로 크게 나눠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파트는 별개로 구분되지 않고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선 시뮬레이션 파트에서는 건물을 하나하나 건설하는 방식이 아닌 셀 방식을 채택해 쇄빙->지역 설정->건물 건설->추가 건물 업그레이드 및 설치까지 해야 하므로 그 과정이 약간 늘었다. 특히 아이디어 트리가 상당히 방대하고 추가 건물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있어 지지 세력이나 요구 자원, 부정적 효과 등이 전부 제각각 이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고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인구수와 노동력 그리고 환자 관리는 물론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석탄부터 식량, 자재, 고급 업그레이드를 위해 필요한 증기심, 도시의 대체 화폐 '열우표' 등 신경 써야 하는 자원 및 요소도 상당히 많다.

 

만약 무엇 하나라도 부족한 것이 생기면 질병, 비위생, 추위, 범죄 등 도시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정적 효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빠른 시일 내에 이를 처리하지 못하면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는 '스노우볼'이 굴러가게 된다.

 

당장의 생존이 해결됐다면 '뉴 런던'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 확보를 위한 외부 확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전작에도 존재했던 정찰대가 이번 작에도 등장하며, 전초기지를 짓고 증기심 등 중요 자원을 확보하거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영하 80도 추위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

'정치'와 관련된 시스템들은 전작과 가장 차별화되는 요소다. 흥미롭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빈도가 잦아 피로감이 있기도 하다. 마치 실제로 어떤 집단의 리더가 된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 하는 내내 문제를 저울질하고 고민과 판단, 선택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프로스트펑크 2'에서의 '문제'는 '이 무기를 강화를 할까 말까'와 같은 지극히 '게임'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골치 아픈 문제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반대로 문제를 해결해냈을 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또는 찝찝함이 될 수도 있다)도 상당하다.

 

게임에 적응하고 나면 의외로 자원 확보와 추위 극복 등의 문제들은 비교적 쉽게 해결된다. 게임의 중~후반부를 잡고 뒤흔드는 문제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온다. 온도가 영하 80도까지 하락하는 '화이트아웃'보다, 나의 결정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폭력 시위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더 무서울 지경이다.

 

'뉴 런던'에는 도시의 방향성을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어하는 세력들이 상당수 등장하며, 게임을 플레이 함에 있어 이들이 제안하는 바를 무시하기 매우 어렵다. 공동체와 파벌을 조율하고 규합할 것인지 혹은 계엄령을 선포하거나 경비대를 투입해 탄압할 것인지 등 이벤트와 선택지는 꽤 다양하며, 앞서 언급한 시뮬레이션 파트와 매우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여전히 높은 '다음 판'에 대한 부담감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만족스럽지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우선 큰 틀에서의 게임성이나 구성이 대격변 수준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들고 싶다. 자원 관리를 포함해 큰 그림을 그리며 발전시켜 나가는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발전기 업그레이드나 자원 채취 효율 등을 손볼 수 있는 '아이디어 트리', 정착지 외부 영구동토를 확장해 나가는 정찰대 등 전반적인 핵심 시스템들은 전작에서 익히 보아 왔던 것들이다.

 

유의미하게 달라진 점이라면 건물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지형 및 건설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가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서도 아쉬운 점이 몇 있다.

 

쇄빙은 땅이 얼어붙은 빙하기라는 설정에는 부합하고 도시의 구역을 어느 정도 사전에 나누는 밑그림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에서는 구역을 형성하고 건물을 짓는데 무의미하게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사전 단계일 뿐 게임 플레이 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또 쇄빙은 언젠가는 해야만이 건물을 지을 공간이 만들어지므로 초반 자원 확보 시점 외에는 적당히 선택해도 된다지만, 구역과 건물을 지을 때도 무조건 정해진 수만큼 채워야 한다는 점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특정 셀의 건물만 파괴하지 못하고 건물 전체를 파괴해야 한다거나, 추가 건물을 선택했을 때 어디에 건설할 수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 등 UI & UX 적인 아쉬움도 두드러진다.

 





 

의회, 세력, 법령 등은 인게임 측면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고민하는 재미를 주며 또 이 시스템이 있어 전작과의 차별점이 생기는 것이지만, 오히려 반대로 전작의 치열한 생존과 세심한 자원 관리 그리고 도전적인 난이도를 원하는 유저라면 그저 도시의 발전을 방해하는 번거롭고 귀찮은 요소로 느껴질 수 있다.

 

스토리 모드의 볼륨은 시스템을 알아가며 엔딩까지 느긋하게 플레이 하더라도 약 10시간 가량이면 충분하다. 다양한 지형과 난이도 커스터마이징 및 목표를 제공하는 '유토피아 건설' 모드나 공식 모드 툴 지원 등 전작에서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던 게임의 볼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습은 엿보이긴 하나, 준비되어 있는 게임 시스템의 깊이에 비해서는 여전히 아쉽다.

 

생각 외로 난이도가 있다는 점도 진입장벽으로 작동할 수 있다. 나는 전작을 경험해봤고 또 가장 낮은 난이도인 '시민'으로 플레이 했음에도 두어 번 정도 시간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난이도와 관계된 것은 아니지만, 5장 진입 후 세이브를 할 때 프리징 되는 버그로 4장부터 다시 플레이 해야만 했다.)

 

'실패는 자연스러운 경험'이라는 튜토리얼 메시지가 나오는 것을 봐서는 어느 정도 도전적인 난이도를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프로스트펑크 2'는 꽤나 현실적인 스트레스(?)를 게임에서 느낄 수 있고 '한 판'의 호흡이 매우 길어 '다음 판'에 대한 부담감이 꽤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

'프로스트펑크 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한 번 시작하면 도중에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몰입감과 재미를 주는 매력적인 게임이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를 이겨내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엿보이며, 시티 빌딩이나 시뮬레이션 장르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놓치기 아쉬운 타이틀이다.

 

특히 전작의 키워드였던 생존과 윤리적 선택에서 보다 나아가 공동체와 세력들의 개입 등 플레이어의 정치적인 능력까지도 시험하며, 숱한 역경을 극복해내고 '야망'이나 도전과제 등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쾌감과 카타르시스는 상당하다. 또 전작처럼 엔딩 후 자신의 플레이를 돌아보는 연출도 마찬가지로 인상깊다.

 

한 차례 플레이를 한 뒤 재도전을 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정도로 피로감이 있고, 다듬어지지 않은 최적화와 버그가 일부 있으나, 약간의 아쉬움을 감수하고 플레이 하기에 아깝지 않은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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