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BIC)는 14일을 비즈니스 데이로, 15, 16일은 페스티벌 데이로 구분해 운영되고 있다.
14일에는 게임업계 관계자들을 위한 컨퍼런스가 메인 스테이지에서 진행됐는데, 기조강연자로 넥슨게임즈의 스타 개발자 김용하 IO본부장이 나서 눈길을 끌었다. 평일 오전 10시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김용하 본부장의 강연을 들으려는 사람들로 좌석이 가득차 스탠딩으로 강연을 듣는 관람객도 많았다.
김 본부장은 서브컬쳐 게임 장인답게 '게임은 어떻게 세계가 되는가'라는 테마로, 팬덤과 IP에 대한 견해, 사례 소개를 이어간 뒤 AI가 개발 툴로 각광받는 시대에 인간의 역할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역설했다.
이날 강연에서 김 본부장은 각자의 취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게임 팬덤의 변화를 살펴보고, 이용자의 기억에 게임을 하나의 IP로 남기는 요소를 '반복한 행동/기억나는 상징/관계'로 정리했다. 이어 생성형 AI가 게임 제작에 활용되는 환경에서 개발자가 자신의 취향을 구체적인 판단 기준인 안목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소개했다.
국민게임에서 저마다의 게임으로...게임마다 달라진 팬덤의 모습
김용하 본부장은 과거 많은 이용자가 같은 게임을 즐기던 모습과 달리, 최근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특정 게임을 깊게 즐기는 팬덤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국내에서는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많은 이용자가 함께 즐기고 이야기하는 이른바 국민게임이 게임 문화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게임마다 서로 다른 팬덤이 형성되면서, 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모이고 게임을 즐기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김 본부장은 '블루 아카이브', '포켓몬스터', '러브앤딥스페이스'를 서로 다른 팬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했다.
6월 14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경정공원에서 개최된 '블루 아카이브'의 첫 오프라인 러닝 행사 '키보토스 런 2026'에는 유저 4500명이 참여해 5km 코스를 함께 달렸다. 포켓몬 관련 행사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의 참가가 많은 편이며, '러브앤딥스페이스' 관련 행사에는 여성 팬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김 본부장은 이처럼 게임마다 팬덤의 구성과 게임을 즐기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게임을 중심으로 형성된 팬덤은 온라인을 넘어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국내 'AGF KOREA'에는 주최 측 집계 기준 2025년 10만518명이 방문했다. 2024년 7만2081명과 비교하면 방문객이 약 40% 증가했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대규모 서브컬처 행사 '빌리빌리 월드'(Bilibili World)가 열리고 있으며, 일본 도쿄에서는 창작자와 팬이 직접 만나는 '코믹마켓'(Comic Market)이 개최되고 있다.
팬들의 발길은 대규모 행사뿐 아니라 서브컬처 콘텐츠를 다루는 상업 공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김 본부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AK플라자 홍대점을 소개했다. AK플라자 홍대점의 전체 매출은 2021년 277억원에서 2025년 982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김 본부장은 "해당 수치가 서브컬처 분야에 한정된 매출이 아닌 점포 전체 매출"이라고 설명했다.
팬들은 좋아하는 게임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팬들은 좋아하는 캐릭터를 직접 그리고, 코스프레를 하거나 굿즈를 제작하면서 게임에서 접한 캐릭터와 장면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표현한다.
김 본부장은 "국민게임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 옆에 각자가 깊게 좋아하는 게임이 많아진 것"이라며 "팬들은 모이고, 찾아가고, 직접 만든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게임을 IP로 기억하게 하는 세 축은 반복한 행동/상징/관계
김용하 본부장은 게임마다 서로 다른 팬덤이 형성되는 배경을 설명한 뒤, 팬들이 게임을 하나의 IP로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를 짚었다. 이용자가 IP를 떠올릴 때 로고와 설정, 캐릭터, 스토리를 먼저 생각하지만, 게임에서는 이용자가 반복해서 직접 해 본 경험도 기억에 남는다는 설명이다.
김 본부장은 이용자가 IP를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를 '반복한 행동', '기억나는 상징', '관계'라는 세 가지 축으로 정리했다.
'포켓몬스터'에서는 포획/배틀, 몬스터볼, 트레이너와 포켓몬의 관계가 각각 세 가지 요소에 해당한다. 'PUBG: 배틀그라운드'에서는 낙하/생존, Lv.3 헬멧, 스쿼드/경쟁을, '마비노기'에서는 생활/모험, 캠프파이어, 우연한 만남과 공동의 추억을 사례로 들었다.
김용하 본부장은 "이용자가 게임에서 무엇을 반복하고, 어떤 상징을 기억하며, 누구와 관계를 맺었는지가 함께 IP에 대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이용자가 게임 속에서 맡는 역할과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 반복해서 하는 행동을 ‘세계관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세계관의 설정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용자가 그 세계에서 어떤 역할로 생활하고 무엇을 경험할지를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용하 본부장은 '블루 아카이브'를 통해 이러한 설계를 실제 게임에 적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블루 아카이브'는 학원/청춘/밀리터리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하나의 게임 안에 결합하고, 이용자에게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부여한다. 이용자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사건을 해결하며 게임의 이야기를 경험한다.
이러한 선생님의 역할은 실제 플레이에서도 이어진다. 이용자는 전투에서 태블릿 UI를 통해 학생들에게 지시하고, 전투 밖에서는 메신저 형태의 콘텐츠인 ‘모모톡’을 통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
AI는 후보 잘 제시하지만 취향 선택은 못해, 개발자의 안목 더 중요해진 시대
김용하 본부장은 강연 후반부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면서 아이디어를 실제 결과물로 구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문장이 이미지가 되고, 한 장의 이미지가 영상이 되며, 아이디어를 실제 플레이 가능한 게임으로 구현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이전보다 짧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넥슨게임즈 IO본부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게임 제작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5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게임잼을 진행했다. 한 팀당 1~3명으로 구성된 51개 팀이 참가했으며, 참가자들은 이틀 동안 실제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48개를 완성했다.
김 본부장은 "완성된 게임을 하나씩 직접 플레이한 결과, 참가자들이 짧은 기간에 게임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재미를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임잼의 결과가 AI가 사람을 대신해 게임을 만들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어디까지나 생성형 AI를 활용하면서 개발자가 아이디어를 이전보다 빠르게 실제 게임으로 만들어보고, 여러 결과물을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이에 따라 개발자가 여러 결과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킬지 판단하는 과정의 중요성도 커졌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 빨라졌지만, 완성된 게임이 이용자의 선택을 받는 문제는 별개다. SteamDB 집계에 따르면 2025년 스팀에는 1만9112개의 게임이 출시됐다. 이 가운데 9327개는 이용자 리뷰가 10개 미만이었으며, 2229개는 리뷰가 하나도 없었다. 김용하 본부장은 "리뷰 수가 판매량과 같지는 않지만, 출시되는 게임이 늘어나도 이용자가 게임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이처럼 많은 게임이 이용자의 한정된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환경에서 "개발자의 취향(Taste)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AI는 맞고 틀림을 확인할 수 있는 작업과 이미 많이 접한 표현이나 패턴을 재현하는 작업에는 강하지만, 여러 결과물 가운데 무엇을 좋아하고 선택할지는 사람을 대신해 결정할 수 없다는 것.
김용하 본부장은 "AI는 후보를 빨리 보여준다. 무엇을 남기고 어디서 멈출지는 사람이 고른다"며 최종적인 선택은 개발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발자가 자신의 취향을 구체적인 선택 기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단순히 무엇이 좋고 싫은지를 구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러 결과물을 직접 만들어 비교한 뒤 무엇이 더 나은지 판단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김 본부장은 이를 위해 만들기→비교하기→이유 말하기→다시 고르기의 과정을 제안했다. 여러 결과물을 만든 뒤 나란히 비교하고, 하나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한 다음 다시 고르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김용하 본부장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개발자가 자신의 판단 기준을 바탕으로 아직 충분히 시도되지 않은 영역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영역을 '미개척지'라고 표현하고, 'Project RX', '림버스 컴퍼니', '명일방주: 엔드필드'를 사례로 소개했다.
김 본부장은 넥슨게임즈가 개발중인 'Project RX'를 '이세계 홈스테이'에 가까운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Project RX는 IO본부 내 RX스튜디오가 개발중인 PC/콘솔/모바일 기반 미소녀게임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용자가 함께 살아가는 '이세계'(異世界) 구현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언리얼 엔진5 기반의 고품질 3D 그래픽과 캐릭터들과 함께 즐기는 생활 콘텐츠, 몰입감 있는 스토리텔링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용하 본부장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취향은 처음부터 고급일 필요가 없다"며 "만들고 비교하고, 왜 하나를 골랐는지 말하는 선택이 쌓이면 본인만의 게임이 된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BIC 2026 현장에는 '블루 아카이브' 초기 콘셉트 시트와 프로토타입 스크린샷 등이 전시되어 '블루 아카이브' 유저들의 관심을 모았다. BIC 2026은 16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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