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가 있었다.
한창 국내 게이머들 사이에 온라인게임 '리니지' 열풍이 불고 있던 1998년 11월 말. 전 세계는 닌텐도가 선보인 이 게임에 ‘전설의 게임’ 혹은 ‘마스터피스’라는 찬사를 쏟아내며 열광했다. 패미통을 비롯한 각국 게임매체들이 리뷰 점수로 만점을 불렀고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1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역대 게임 평점 상위권을 차지하고 계속 기억되는 존재가 되었다.
온라인게임만을 플레이해 온 유저라면 이 게임이 생소할 수도 있다. 아마도 한글판으로 해본 기억이 있다면 PC용 N64에뮬을 통해 아마추어 한글화 패치를 적용한 게임을 어둠의 경로로 접해본 사람이 대부분일 터.
질풍노도의 시기에 게임을 접한 그 당시의 파릇했던 청소년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스스로의 일과 가정을 책임질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게임 속 플레이어의 분신인 시간의 용자 링크와 젤다 공주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14년의 세월, 그 긴 시간을 넘어 다시 눈앞에 나타난 그들. 오로지 “그 때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에 시간의 신전에서 마스터소드를 뽑아 들던 그때 그 용자 링크의 심정으로 3DS에 팩을 꽂아 넣었다.
게임의 테마이자 공략의 열쇠, 오카리나
오카리나란 점토나 도자기 소재로 만든 악기를 뜻한다. 로마의 제빵 기술자들이 장난감으로 만들어 팔던 구형의 피리 같은 관악기를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주세페 도나티’가 현재의 형태로 개량해냈다. 이탈리아어로 ‘작은 거위’라는 의미기도 한 이 오카리나는, 단순한 아이들의 장난감에서 개량을 통해 정확한 음정과 음계를 갖는 어엿한 악기로 거듭나 현대에 이르렀다.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속에서 등장하는 오카리나는 플레이어의 중요한 도구이자 신성한 힘을 지닌 악기, 그리고 수많은 모험 속에서 스쳐간 이들에 대한 추억의 상징이다. 하이랄 세계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조우한 특별한 인연들, 필연적인 사건들을 통해 신비로운 힘을 지닌 오카리나 연주곡 역시 하나씩 베일을 벗는다. 그리고 그 곡의 힘은 용자 링크가 된 ‘나 자신’ 앞에 놓인 시련들을 헤쳐나가는 열쇠로 힘을 발휘한다.
단순히 배경음악 속 메인 악기이기만 했을 뿐이라면 굳이 게임의 제목으로 넣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이 게임 속 오카리나는 플레이어가 거쳐온 영웅적인 발자취를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물이다. 게다가 버튼 4개, 그리고 왼쪽 및 오른쪽 트리거 만으로도 (처음 몇 소절만 따라하면 게임에서 자동으로 틀어주는 거긴 하지만) 전문가 부럽지 않은 곡을 연주할 수 있다! 노래를 단순히 BGM의 영역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이를 끄집어내 어엿한 게임의 콘텐츠이자 일부로 만들어낸 아이디어가 무려 14년 전에 나왔었다니. 어찌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보다 친절해진 게임, 그러나 100% 즐기기는 여전히 어렵다
3DS판으로 리메이크된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원작의 게임 뼈대를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다. 현세대기에 맞게 캐릭터 및 배경 그래픽을 더욱 업그레이드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수많은 밥상 뒤집기와 출시연기 끝에 모습을 드러냈던 14년 전의 그 작품이야말로 완전 그 자체라는 일종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랄까?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시 상태에서의 백점프, 좌우점프를 통한 소위 ‘꼼수’로 하트조각을 먹을 수 있는 방법까지 그대로 가능했다.
바뀐 부분도 일부 존재한다. 미궁의 숲 진행 도중 입구로 되돌아가버리는 [꽝]을 개발자의 의도인 ‘청각’이 아닌 ‘시각’적으로 고를 수 있었던 문제, 황금 스컬츄라 입수를 위해 벌레를 뿌렸을 때 이를 재빨리 빈병에 다시 담아 재활용이 가능했던 부분 등이 그렇다. 덕분에 게임 플레이를 하면서 지도를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경험도 참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의 용자 링크로 빙의한 플레이어들을 좌절에 빠지게 하는 던전들의 퍼즐요소 역시 그 난이도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과거 유저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던 던전 내 ‘놓치고 지나기 쉬운 지점’의 경우 컷신 형태의 안내를 추가했고, 시커 스톤이라는 힌트 제공 오브젝트를 링크가 게임 접속 시 깨어나는 지점에 배치해두었다. 물론, 시커 스톤으로 힌트를 보고 그 힌트대로 던전을 진행할 지, 스스로 퍼즐을 해결할지는 플레이어 본인의 몫이다.
힌트 요소가 추가된 것 외에는 모든 난이도가 그대로 유지되었기에, 각종 골치 아픈 미니게임 및 숨겨진 요소도 한치의 변함 없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년 링크를 홀로 밤에 싸돌아 다니게 만드는 ‘황금 스컬츄라 100개 모으기’부터 각종 도구들의 소지수량 업그레이드, 4개를 모으면 생명력(=하트 하나)을 올려주는 하트 조각까지… 성장에 관련된 모든 요소가 이 미니게임들에 녹아있다. 이를 즐기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이를 하나씩 깰 때마다 더욱 강력해진다면? 이 강력한 유혹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 것 인가.
3DS의 기기 성능, 어디까지 활용했나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가 구현한 3D 그래픽의 공간감은 한마디로 ‘매우 뛰어나다.’ 원래 3D 입체화면을 염두 해두고 개발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게임의 분위기에 매우 잘 맞는 옷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 심각한 안구건조증 및 양쪽 눈 시력이 1.0가량 차이 나는 내 저주받은 신체 구조상 뭘 하더라도 어지럼증과 눈 통증을 잘 느끼는 체질이었기에 결국 3D 입체화면 기능을 끄고 대부분의 시간을 플레이 했다. 어디까지나 ‘눈요기’적인 부분이었지 공략에 핵심이 되는 필수 요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사용했던 3DS의 기능은 바로 자이로 센서였다. 카메라로 주시하는 1인칭 시점 상태나 활 및 훅샷 등의 도구를 사용할 때 3DS 게임기를 그 방향으로 움직여 표적을 조준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마도 주변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는 제3자들의 눈에는 전자사전 크기만한 기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허공에 마구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슬라이드 패드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조작도 직관적이고 과녁을 맞추기 편했다.
위쪽 화면에 실제 게임 진행이 보여지는 동안, 아래쪽 화면은 장비/지도/아이템 등을 확인하는 유저 인터페이스가 노출되는 것이 3DS버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의 기본 화면 구조다. 인터페이스의 경우 터치 기능을 지원하게 맞춰져 있으되 방향키와 버튼으로도 이용이 가능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오카리나 연주’ 상태의 인터페이스였는데, 자칫 까먹기 쉬운 각종 연주법의 버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버튼 누르는 순서가 기록된 악보를 띄워두고 오카리나를 연주할 수도 있었다.
그 외에 3DS버전 리메이크판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구를 4개까지 꺼내서 장착 가능했다는 점, 과거처럼 장비창이나 던전 지도 등을 확인할 때마다 화면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쪽의 터치 패드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 정도다. 사실 게임 자체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정도가 딱 적당한 수준의 기능 활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명작은 시대를 초월한다! 게임에서도 그렇다
1998년 당시의 플랫폼이었던 N64가 게임기 경쟁에서 밀렸던 터라 판매량은 인기에 비해 저조했던 비운의 작품이긴 했지만, 이 게임의 등장은 이후 출시된 액션어드벤처 장르 게임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요즘 출시되는 게임들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락 온(Rock-On)’ 타게팅 방식이 가장 처음 등장한 게임이기도 하다 (이 시스템의 게임 내 명칭은 Z주목).
그리고 게임 속 기상천외한 테마의 던전과 퍼즐요소들은 이후 출시된 다른 ‘젤다의 전설’들에서도 꾸준히 응용될 만큼 강한 여운을 남겼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 사상 가장 빛나는 타이틀이자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그것의 완성도를 비교할 때 항상 회자되는 절대적인 기준점으로 현역취급을 받고 있는 만큼 3DS를 가진 게이머라면 필히 구매해야 할 명작임에 분명하다.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가정을 꾸릴 만큼의 시간이 지나 이를 3DS로 다시 내놓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진짜 정답은 이를 다시 세상에 내보낸 닌텐도만이 알고 있겠지만, 이것 하나 정도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7년이라는 시간을 마스터소드로 왕복하며 하이랄을 구한 시간의 용자 링크. 그의 영웅담은 그 시간을 함께 한 플레이어들에게만 기억되는 모험이지만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탄탄한 명작으로서 쉽사리 변치 않는 감동을 우리에게 계속 전해주고 있다는 점 말이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객원리뷰어 엘타냥님이 기고하신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엘타냥. 전직 게임 기자. 현재 모 게임개발사에 기획자로 재직중인 인기 게임블로거(http://blog.naver.com/tepery79). 좋아하는 게임이라면 안 따지고 구입하는 열혈 게이머.
| |
| |
| |
| |
|
관련뉴스 |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