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빙하기를 거친 한국 콘솔 게임시장에 다시 봄이 찾아오고 있다.
닌텐도,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하며 시장을 키우던 이전의 시기와 다른 점은, 이번에는 SCE의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이 홀로 분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플레이스테이션4의 견인과 PS Vita의 선전
SCE의 신형 콘솔 플레이스테이션4와 휴대용 콘솔 PS Vita가 얼어붙었던 국내시장을 녹이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보급량이 이제 겨우 만여대에 불과한 플레이스테이션4 플랫폼으로 나온 게임들은 이미 플레이스테이션3, Xbox360 플랫폼으로 나오는 게임들의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PS Vita 플랫폼으로 나온 게임들의 판매량도 좋게 나오고 있어 휴대성과 콘솔의 조작체계 및 그래픽을 원하는 게이머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선 큰 재미를 못 보던 스포츠 게임, 마니아성 게임들의 판매량도 크게 뛰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콘솔 게임업계에는 게임의 판매량이 실패한 게임이라도 콘솔 보급량의 1%가 되어야 건전한 시장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그 동안 국내 콘솔 게임시장에서는 1%는 커녕 0.1%에도 못 미치는 게임이 많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4와 PS Vita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급대수 대비 판매량에서 일본, 미국 등 해외시장을 앞지르는 경우도 자주 목격된다.
한국어화 훈풍, 보수적 개발자들이 변하고 있다
근래 한국 게이머들을 깜짝 놀래키는 발표가 연이어 나왔다. 기자들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마니아 게임 '아키바즈 트립2'의 한국어화 발매, '라이트닝 리턴즈 파이널판타지13', '소울 새크리파이스 델타'의 한국어화 동시발매, 그리고 일본의 RPG 명가 팔콤과 니폰이치 게임들의 한국어화 발표가 이어지며 한국 게이머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 동안 일본의 전통적인 콘솔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신규 개발이 아닌 개발(DLC나 로컬라이즈 개발을 가리킴), 특히 로컬라이즈 개발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2012년 만난 일본 중견 개발사 임원은 기자에게 "젊은 개발자들에겐 좀 덜하지만 개발 경력이 긴 개발자들에게 특히 신규 개발이 아닌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외 해외 시장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며 이런 경향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대만 게임 시장의 비중이 커지며 중국어화 개발이 필요조건이 되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어화 개발을 단독으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중국어화 개발과 함께 진행한다면 부담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위에 언급한 임원은 지난해 다시 만난 자리에서 "개발자들의 설득이 점점 쉬워지고 있으며 2014년 하반기 정도에 한국어화 동시 발매를 고려 중"이라 말해 기자를 놀래켰다. 이 업체의 게임들은 근래 연이어 한국어화되고 있어 그의 말에 신빙성을 더한다.
돌아와요 한국으로
이런 흐름에 해외 게임업체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 시장이 성장은 커녕 축소를 거듭하던 시기, 환율 폭탄까지 맞아 한국에서의 직접 유통을 접거나 사업을 축소한 업체들이 다시 조직을 재건하고 한국어화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세가와 코나미다.
최근 세가퍼블리싱코리아는 CFK, SCEK, 인트라게임즈 등 국내 퍼블리셔들을 통해 게임을 출시하던 것에서 방침을 변경해 '용과같이: 유신'을 직접 퍼블리싱했다. 뿐만 아니라 세가는 국내 콘솔게임 유통 조직을 세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소닉', '용과같이'에 '하츠네미쿠' 뿐이던 라인업이 한국의 국민RPG '페르소나'를 보유한 개발사 아틀라스 인수로 한층 풍부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코나미 역시 국내 퍼블리셔인 유니아나와 함께 대표작 '메탈기어솔리드' 시리즈 신작인 '메탈기어솔리드: 그라운드 제로'의 한국어화를 추진해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그라운드 제로의 한국어화는 무산됐다. 하지만 차기작인 '펜텀페인'의 한국어화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 콘솔 게임 유통업체들의 평가다.
주춤했던 캡콤 역시 한국어화 발매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내놨으며, SCE는 늘 해오던대로, 아니 더 적극적으로 로컬라이즈 발매를 추진할 계획이다.
게임업체와 게이머, 깊은 불신 깨고 협력해 밝은 미래 만들어야
한국 콘솔 게임시장에 좋은 시절이 찾아오고 있다는 징후는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빙하기에 생긴 게임업체들과 게이머들 사이의 거대한 균열이다.
일부 콘솔 게임 퍼블리셔를 비하하는 '3대장' 같은 말을 꺼리낌없이 사용하고,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무작정 업체를 비난하는 일부 게이머도 문제지만, 업체들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불신을 깨고 콘솔 게임의 저변을 넓히고 밝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업체들의 노력과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게이머들은 조금만 더 기다리고 비난을 퍼붓기 전에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주기 바란다.
환경적 요인으로 한국어화에 늘 실패하고 게임 발매가 늦어지는 등 게이머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던 콘솔 게임 퍼블리셔들은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많은 준비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슈타인즈게이트' 등 비주류 장르의 한국어화가 진행 중이며, 대작들은 물론 게이머들이 예상하지 못한 타이틀들의 한국어화도 추진 중이다.
앞으로도 말보다는 게이머들이 바라는 빠른 발매, 한국어화 등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야 게이머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게이머들에게는 좋은 시절을 앞두고 조금 더 관대한 마음을 가져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지금은 덮어놓고 업체들을 욕하고 과거의 일만 물고늘어질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보고 함께 한국 콘솔 게임시장을 만들어가야 할 시기다.
지난해 말 예약판매 전문 커뮤니티 예판넷의 정문권 대표를 만났다. 정 대표의 평생 소원은 한국 콘솔 게임시장이 잘 되는 걸 보는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한국 콘솔 게임시장이 살아나는 걸 보기 전까지는 괴롭고 힘들어도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콘솔 게임업계에는 정 대표와 같이 콘솔 게임이 그저 좋아서 힘들고 괴로워도 버티고 있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힘들고 괴로운 데 버티는 게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 |
| |
| |
| |
|
관련뉴스 |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