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아메리카: 윈터 솔져' 관객과 평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다

등록일 2014년04월19일 15시55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캡틴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크린샷들은 보도를 위해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가 배포한 것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흥행 열기가 심상치 않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개봉 후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고, 1주일 늦게 개봉한 북미에서도 역대 4월 오프닝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어벤져스' 이후 마블 히어로 단독 작품으로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단의 호평까지 받고 있다.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장르적 융합, 에스피오나지와 정치 스릴러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기본적으로 히어로 무비이지만 거기에 두 가지 장르를 하이브리드했다. 에스피오나지와 정치 스릴러가 바로 그것이다.

'007' 클래식 시리즈로 대표되는 첩보물에서 환상을 거둬내고 신분을 감추고 활동해야 하는 스파이의 고충을 현실적으로 다루는 스파이물을 가리키는 에스피오나지는 냉전 이후 퇴조하다가 최근에 역으로 첩보물에 다시 흡수되고 있는 장르 요소다. 널리 알려진 블록버스터 중 '본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007 시리즈'가 이에 해당된다.

세 영화 모두 모종의 음모로 인해 몸 담던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주인공이, 자신과 마찬가지 신세인 적과 격돌하며 그 음모를 분쇄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바 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기본적인 스토리의 얼개는 바로 여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스토리뿐 아니라 본 시리즈가 영화계에 재정의한 대인 액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육체끼리 직접 부딪히는 이 대인 액션의 쾌감은 상당해서, 실제 UFC 웰터급 챔피언인 조르주 생피에르가 분한 조르주 배트록과 캡틴 아메리카의 오프닝 액션씬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에 더해 CG가 많이 쓰인 헐리웃 영화에서 흔히 속도감이란 미명하에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도 모르게 뭉개버리고 지나가는 액션 씬과는 달리,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액션 씬은 액션 장면에서의 피아 구분이 비교적 확실하며 액션의 합이 확연히 드러나는 전통적인 액션 연출이 도드라진다. 이는 대척점에 서 있는 또 다른 마블 히어로인 아이언맨의 리펄서를 이용한 첨단의 원거리 액션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런 대인 액션의 재미는 아이러니하게도 캡틴 아메리카가 여타 마블 히어로들에 비해 초인적 능력이 약하다는 데서 온다. 때려도, 총을 맞아도, 고통도 못 느끼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조마조마함이 없는 캐릭터가 스릴러에 나온다면 스릴이 느껴질까?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아이언맨, 토르, 헐크 등 다른 마블 히어로들에 비해 캡틴 아메리카가 초인으로서의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약점을 통해 오히려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장르적인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이는 독특한 방패 액션과 함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육체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냉전과 군비 경쟁, 핵 위협이 만발했던 70년대 정치 스릴러의 색채를 더했다.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이 충돌하고 이 때문에 생겨나는 갈등을 적극적으로 다룬 것이다. 이는 각각 알렉산더 피어스, 닉 퓨리, 캡틴 아메리카의 대사를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알렉산더 피어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지금의 세계를 허물어야 할 때도 있네. 그러다 보면 적이 생기지.

닉 퓨리: 쉴드는 현실을 볼 뿐 이상을 쫓지 않아.

캡틴 아메리카: 이건 자유가 아닙니다. 공포입니다.

정치 스릴러를 위해서는 장르적 현실감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이를 위해 197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콘돌',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스파이 게임', '로스트 라이언즈' 등 정치색 짙은 스릴러에서 주연을 맡아 온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를 알렉산더 피어스 사무총장으로 캐스팅했다. 정치 스릴러 장르의 도입은 캡틴 아메리카의 정신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초석이 된다.


캡틴 아메리카, 미국 현대사를 말하다
오로지 선량한 사람만이 자신의 선량함을 의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폴 오스터, '어둠 속의 남자' 中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퍼스트 어벤저' 직후부터 미국 현대사를 영화 속 디테일로 적극 받아들인다. 캡틴 아메리카가 미국의 양심이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사이에 미국이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 말이다.

오프닝 액션에서 조르주 배트록과 육탄전을 벌이기 직전 나온 캡틴 아메리카의 프랑스어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으로서 유럽 대륙에서 활약하던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컴퓨터화 된 아르님 졸라와의 대면에서 언급된 '페이퍼 클립 프로젝트'는 미국이 나치 독일에 부역했던 과학자와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을 미국의 국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포섭했던 것을 말한다.

블랙 위도우의 조크로 언급된 비키니의 어원은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의 핵 실험 장소로 쓰였던 비키니 환초에 있다. 그리고 쉴드 본부인 트라이스켈리언을 무너뜨린 3대의 헬리캐리어는 어벤져스의 뉴욕 사태에 이어 9•11테러를 연상시킨다.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리고 펜타곤에 충돌한 비행기 3대는 모두 미국 국적기였다. 이는 실재하는 역사이다. 국익을 위해 했다고 믿은 행동들이 악을 연명시키고 위협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그 결과인 히드라와 윈터 솔져에 의해 프로젝트 인사이트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그린다. 이 역사 속에서 살아온 쉴드의 창립 멤버이자 캡틴 아메리카의 연인이었던 페기 카터는 병상에 누운 노쇠한 몸으로 오열한다. "스티브, 네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이 세계를 우리가 다시 망쳐 버렸다"고.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히어로 무비답게 절망 대신 희망을 그려낸다. 차디찬 북극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양심이 깨어난다면, 그 깨어난 양심에 의해 어떤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이를 극명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프로젝트 인사이트의 헬리캐리어 발사를 거부한 이름없는 한 쉴드 요원의 장면이다. 캡틴 아메리카가 방송을 통해 히드라에 오염된 쉴드의 진상을 밝히고 이를 물리치기 위한 협력을 요청하자 이름 없는 한 요원은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위한 헬리캐리어 런치를 거부한다. 히드라의 부하들이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이 장면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예처럼, 악의 평범성과 이 악을 막기 위해 개개인의 판단과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아이히만은 수많은 유대인을 죽인 학살 계획의 실무 책임자였는데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남미에서 붙잡혀 전범재판에 회부된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수많은 유태인 학살을 자행한 그가 아주 사악한 악마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데에 있다. 심지어 그는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예의를 잘 지키는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유태인 학살에 관해 1961년 진행된 공개 재판에서 자신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 것일 뿐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아이히만뿐 아니라 많은 전범들은 자신이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인데,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고 평범히 행하는 일이 곧 악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 중이라면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 명령이 옳은 지 옳지 않은 지 모든 개인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만 만연하는 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쉴드의 요원도 캡틴 아메리카의 설명을 듣고 자신의 판단으로 프로젝트 인사이트의 헬리캐리어 런치를 거부한다. 사실 총구가 머리에 겨눠진 상태였으니 불가항력적이었다거나, 히드라지만 직급상 총을 겨눈 자가 상관이니 아이히만처럼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변명으로 버튼을 눌러버리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프로젝트 인사이트로 인해 수백만 명이 죽더라도 말이다. 책임 회피를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 책임을 온전히 자신이 졌다. 그리고 이에 그의 동료들도 함께 일어난다. 프로파간다로 시작했으나 미국의 양심으로 거듭난 '캡틴의 명령(Captain's order)', 즉 양심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통해 캡틴 아메리카는 초월적인 개인 능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여타의 히어로들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용기 있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리더이자 사람들이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고 싶게 만드는 전통적 히어로상을 보여준다. 이는 그의 정신적 정체성과 함께 어벤져스 내에서 능력적으로 다소 떨어지는 그의 캐릭터성을 확고하게 만드는 '신의 한 수'이기도 했다.


동시에 히어로가 가진 도덕률의 회복이란 면에서도 감동적이다. 코믹스 얼라이언스의 앤드류 윌러가 쓴 기사인 '선택과 맨 오브 스틸의 도덕적 세계관(Choice and the moral universe of 'Man of steel')'에서도 지적했다시피 마블 코믹스의 라이벌 격인 DC 코믹스의 슈퍼맨은 맨 오브 스틸의 흥행을 위해 히어로의 도덕률이란 미덕을 버렸다.

하지만 같은 성조기를 모티브로 한 유니폼의 히어로인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는 이번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를 통해 현대에 내팽개쳐진 히어로의 미덕을 다시 건져 올렸으며,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냈다.

'아이언맨2'가 어벤져스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된 것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였던 데 반해, 캡틴 아메리카 2편에 해당하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는 단독작으로서도 훌륭한 완성도를 보였으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으로 가는 가교 역할 역시 톡톡히 해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제작도 두 번째 단계에 오면서 안정되어감을 뜻한다.

어벤져스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두 번째 단계를 통해 히어로들의 거점은 모조리 붕괴했다.

'아이언맨3'에서 토니 스타크의 저택과 수트는 산산히 부서졌고, '토르: 다크 월드'에서 아스가르드의 왕좌는 로키에게 넘어갔으며,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통해 쉴드는 해체되었다. 이로써 히어로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어벤져스로 인해 새로 태어난 스타크 타워로 집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토니 스타크의 영향력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강제로 한 지붕 아래 모이게 된 히어로들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궁지에 몰린 히어로들은 과연 어떻게 울트론에게 대적할 것인가? 그리고 그 이후는? 또 다른 마블 코믹스 원작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아쉬움을 달래며 1년 뒤에 찾아올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기다릴 뿐이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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