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캐릭터의 힘을 보여준 디즈니 '빅히어로', 차기작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

등록일 2015년02월09일 09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빅히어로'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크린샷들은 보도를 위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가 배포한 것입니다.


2006년 픽사, 2009년 마블코믹스, 2012년 루카스필름 등 해당 업계에서 큰족적을 남긴 회사들을 차례로 인수합병한 디즈니는 합병 후에도 각 프랜차이즈의 영역을 존중하며 만개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무비 프랜차이즈는 이미 헐리웃 영화계 전체의 대세라고 할 정도의 입지를 다졌다. 이제 디즈니는 자신들의 고유영역이었던 애니메이션과 인수한 마블의 히어로물 IP를 활용, 본격적인 융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마블 코믹스에서 발간된 동명의 만화를 활용해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한 빅히어로이다.

그런 만큼 빅히어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1의 전개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장점과 단점 모두 말이다.

빅히어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단연 베이맥스의 캐릭터이다. 아이언맨과 같은 붉은 수트를 장착하면 히어로처럼 날아다니지만 진짜 정체는 1만 가지 치료 기능을 가진 힐링 로봇! 곰돌이 푸우처럼 안고 싶어지는 푸근한 체형에 애완동물과 아이를 떠오르게 하는 귀여운 행동까지... 베이맥스는 히어로물과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귀여움이란 요소를 중심으로 끌어오는데 성공했다. 온통 하얀 몸에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얼굴의 로봇이지만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는 감정선은 픽사의 걸작인 월-e를 떠오르게 할 정도.


빅히어로의 베이맥스는 여태까지의 슈퍼 히어로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새로운 캐릭터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매력은 마치 MCU 페이즈1을 사실상 혼자 이끌고 나간 아이언맨을 보는 듯하다.

초인은 아니지만 각종 과학 장비를 활용한 히어로물답게 빠르고 다이나믹한 액션 장면들도 일품이다. 특히 샌프란소쿄 항구와 언덕에서 빅히어로가 탄 차를 쫓는 스푸키 마스크의 추격 장면이나 일본의 코이노보리처럼 떠 있는 플로팅팬 사이사이로 비행하는 베이맥스와 히로의 모습처럼 4DX에 최적화된 볼거리들이 상당하다.

겨울왕국 때도 화제가 된 디즈니의 전문 성우를 활용한 한국어 더빙은 빅히어로에서도 여전히 좋다. 특히 4DX의 수혜를 받을 장면이 많은 빅히어로의 경우 자막을 보는 대신 한국어 음성을 듣는다면 보다 시각적인 집중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더빙의 장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한 다인종 히어로란 컨셉을 전면에 내세운 빅히어로인만큼 캐릭터에 따라 조금씩 다른 영어 발음과 억양이 한국어 더빙판에서 죽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빅히어로는 장점만큼 단점도 선명하다. 우선 캐릭터 밸런스의 실패가 눈에 들어온다. 원제가 빅히어로6이지만 실제 빅히어로 안에 그려지는 모습은 베이맥스와 아이들 혹은 빅히어로2+4로 생각될 정도이다. 그만큼 베이맥스와 히로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의 비중이 낮고 기능적이다.

무엇보다 큰 단점은 급전개 되는 악역의 사연과 부족한 매력이다. 빅히어로에서 사적 원한으로 빌런이 된 캘러한(스푸키 마스크)과 이익에만 눈이 먼 CEO 크레이는 아이언맨2의 이안 반코(위플래시)와 저스틴 해머를 거의 그대로 복제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어벤저스라는 큰 그림의 부속으로 전락해 좋지 못한 서사와 낭비된 악역들로 비판 받았던 아이언맨2와 똑같은 단점을 빅히어로도 가지고 있다. MCU 페이즈 1 때와 같이 캐릭터 스토리텔링의 배분에 실패하다보니 주인공 이외의 모든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급전개되고 그만큼 개성이나 매력을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또한 빅히어로가 활약하는 도시인 샌프란소쿄도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네이밍에서 알 수 있다시피 샌프란시스코+도쿄인 샌프란소쿄는 미국과 일본을 융합할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사실상 그냥 샌프란시스코일뿐이다. 욱일기 논란 같은 헛소리와는 별개로 빅히어로를 보면 무대가 굳이 샌프란소쿄여야만 할 이유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를 베이스로 금문교에 토리이 장식을 얹는다고, 가게 앞에 마네키네코를 둔다고 일본 문화가 융합된 것이라고 보기엔 부족한 점이 있지 않을까? 애초에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인 미국이 베이스이기에 오히려 사족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언뜻언뜻 비치는 이스터에그들을 비롯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빅히어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받아들였다기보다 그저 여태까지 수집한 디즈니 IP의 총합을 보여주는 것 같다. 샌프란소쿄는 존 라세터를 비롯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바치는 존경의 뜻일 수도 있겠으나 그 존경심을 미국과 일본이 잘 어우러진 세계관으로 표현하는 경지까지 승화시키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빅히어로는 새로운 창조물이라기보다 MCU의 성공 코드를 그대로 가져와 잘 만든 기성품에 가깝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치자면 기존에 존재하는 각종 모에 코드를 잘 조립했달까? 그런데 사실상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코드와 최상급의 재료를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디즈니이기에 조립만으로도 이런 퀄리티가 나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기성품으로서 내비치는 단점을 베이맥스라는 캐릭터의 압도적인 매력으로 덮어버렸다. 마치 아이언맨 1, 2의 토니 스타크처럼 말이다.

쿠키 영상을 통해 카메오 등장한 스탠 리를 보면 빅히어로는 마지막까지 MCU의 공식을 철저히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소 기복이 있던 페이즈1이 어벤져스로 정리된 이후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든 것처럼, 빅히어로도 차후의 시리즈 전개에 따라 더욱 매력적인 작품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좀 더 고유의 개성을 가진 작품으로 진화할 빅히어로 차기작이 기대된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빅히어로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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