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콘솔 유통사 및 퍼블리셔들의 고민은 '이 타이틀을 어떻게 한국에 가져올까'였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타이틀이 있더라도 그것을 국내에 유통하기까지 수많은 장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 제안을 하기 위해 안내 메일을 보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국의 시장 현황'에 대한 자료 요구가 대부분이다. 여기엔 두 가지 의도가 숨어 있다. 정말로 시장 현황을 몰라 시장 현황과 사업 전망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 그대로의 의미와 이미 시장 현황이 어떤 줄은 알고 있지만 얼마나 잘 포장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현황과 그들이 말하는 시장 현황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소위 '떠보기'였다. 애석하게도 적어도 기자가 알고 있는 한 대부분의 해외 게임사들의 의도는 후자에 있었다.
물론 한국에 출시 해 수익을 내야하는 해외 게임사들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심사숙고할 부분이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해외 게임사들을 이해시키고 어떻게든 국내에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내 유통사나 퍼블리셔들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안타깝다. 때문에 오랜 실랑이 끝에 어렵게 계약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잘해야 본전'이고 이마저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업계에서는 보통 A급 이상의 타이틀의 계약 성사율을 약 50%정도로 보고 있다. 예외적으로 계약이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는 판매자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항이 적용된다. 타이틀 명을 말할 수 없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 대형 타이틀 역시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이 진행됐다. 판매량 자체는 좋았지만 결국 허울 좋은 성과에 불과했고 지난해 한 대기업의 영업이익 2억 원을 떠올릴 정도로 실제 이익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결국 많은 돈이 필요한 대형 타이틀의 계약 진행은 또 다시 좌절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다소 암울한 이야기지만 어찌됐든 이러한 릴레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변한 점이 있다면 바로 현지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해외 개발사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패키지 시장이 국내에서 사장된 지 약 10여년 만에 생긴 변화다. 소비자로서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현지화 타이틀이라고 해도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AA급 이상의 타이틀에서도 현지화를 통해 얻어지는 기대 수익률은 잘해야 기존 판매량의 10%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간혹 10만 장 이상의 걸출한 판매량을 보여준 ‘GTA5'와 같은 타이틀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극히 일부 중의 일부다. 현지화 비용의 부담은 고스란히 판매자가 부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개발사 차원에서의 한국인 스텝의 지원이 이어져 자체적으로 현지화가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다. 정부에서도 번역 사업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인력과 자원의 한계가 있다. 즉 현실적으로 현지화 판매를 일상적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은 아직까지도 없는 것이다.
번역 작업에 투자되는 비용은 게임마다 차이가 있지만 방대한 분량을 작업해야 되는 RPG의 경우는 전체 사업 비용의 20%를 웃도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이 타이틀은 기존의 비현지화 타이틀의 판매량 대비 20% 이상의 판매고를 넘겨야 이익이 남는다. 이를 넘지 못한다면 결국 현지화를 하고 유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지만 회사 자체는 적자를 보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현지화 바람이 워낙 거세 AA급 이상의 타이틀은 당연하게도 현지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덩달아 상승하게 되버린 상황이라 쉽사리 비현지화를 결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며 한 관계자는 “10년을 버텼는데 이젠 1년도 못 버틸 것 같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시장 외 소비자의 분위기와 시장 내 판매자의 분위기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만족스러운 게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그간 노력을 해외에서는 이제 알아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검색을 통해 게임을 내려받고 검색을 통해 한글패치를 강요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품게임을 구매하세요”라며 많은 이들이 외치고 있지만 현실의 판매량은 이러한 행동이 무색할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나마 PS4의 국내 보급 활성화로 양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변해야 될 때다”라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인식 변화 없이는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변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이다. 현지화 열풍에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업계 관계자들이 앞으로도 별 탈 없이 쭉 다양한 게임을 서비스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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