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의 매력적인 세계에 빠져드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정교하게 구축된 세계를 갖고 있어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하는 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현실 도피성이 강하다'라 부르면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과연 게임의 중요한 특징으로 작용하는 현실 도피성은 정말 나쁘기만 할까?
26일,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16)에서 Ustwo Games의 대니얼 그래이(Daniel Gray)는 현실을 벗어나 게임 속으로 빠져드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했다.
Ustwo Games는 올해의 애플 디자인 상, 올해의 아이패드 게임상 등 다수의 상을 받은 '모뉴먼트 밸리'를 개발했으며, 최근 VR게임 '땅의 끝(Virtual Reality: Land's End)'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개발자 대니얼 그래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라이언헤드 스튜디오에서 처음 게임 개발을 시작해 9년간 여러 게임사에서 일했다. 그는 Ustwo games에서 개발한 '모뉴먼트 밸리'와 VR게임 '땅의 끝'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게임, 더 나아가 VR게임이 유저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도피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실도피와 가상 세계: 가상현실 미래 전망(Escapism and Virtual World: A Look into Virtual Reality Future)'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발표에서 대니얼 그래이는 '현실 도피(Escapism)'의 정의를 먼저 짚고 갔다. 현실도피란 불안한 현실에서 안정과 위안을 찾고자 하는 욕구이며 특히 즐거움을 찾거나 환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대니얼은 스크린 너머의 가상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 전통적인 개념의 게임에서도 현실 도피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현실과는 다른 게임 속 세상에서는 현실의 법칙도 적용될 필요가 없으며 현실의 인물과 동일하게 행동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
Ustwo games의 인기작 '모뉴먼트 밸리' 역시 현실도피를 위해 제작된 게임이다. 기하학적인 지형을 움직여 착시 효과를 만들어내는 모험을 즐기는 일은 일상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경험이다. 그는 주머니 속의 모뉴먼트 밸리를 통해 유저들이 저마다 주머니 속 안식처를 갖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실도피의 특성은 Ustwo games의 VR게임 'Land's End'에서도 나타난다. 현실의 시각적, 청각적 감각을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VR은 그 자체로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Ustwo games는 별도의 컨트롤러 없이도 시선의 이동만으로 게임을 조작할 수 있게 했으며, 비현실적인 공간을 제공해 유저들의 상상력을 활성화시켜 보다 가상 현실 속 세계에 빠져들도록 설계했다.
끝으로 대니얼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여러가지 제약을 받으며 자유를 박탈당하고 갇혀 지내던 어린 시절 경험을 공유하며 게임이 주는 현실 도피의 긍정적 경험과 VR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도피는 때때로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긍정적인 것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 오랫동안 입원한 일이 있는데, 아주 잠깐이라도 병원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루는 아버지와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간 일이 있다. 당시의 나에게 아주 잠시 동안의 탈출도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라고 회상했다.
대니얼은 “이제 VR 기술의 힘을 빌려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완전히 새롭고 다른 세상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현실에서 보다도 풍요로운 기회와 경험이 주어진 가상의 세계로의 도피는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위안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라고 전하며 발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