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개발자들과 유저들의 축제 '부산 인디커넥트 페스티벌 2017'의 본격적인 개막에 앞서 유명 게임 개발자들의 강연을 들어볼 수 있는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연사들의 컨퍼런스 세션 발표에 앞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진지한 게임들을 개발하고 있는 1인 인디게임 개발자 소미(Somi)가 '레플리카 –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을 주제로 키노트 발표를 맡았다.
'레플리카'는 플레이어가 핸드폰을 가지고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인디게임이다. 정부기관의 대규모 감시체제와 파시즘, 언론 통제와 개인의 훔쳐보기 본능, 죄수의 딜레마 등을 다루고 있는 게임으로 다수의 인디게임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억압받는 시대를 살아가는 게임 개발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미는 '레플리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개발자인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나'라는 존재는 개인적 경험과 살았던 시대적 상황이 합쳐져 있는 사람이고,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발자가 살고 있는 시대의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나라'에서 문화인들은 블랙리스트에 등재됐고, 정치 비판 코미디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또,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악의적 여론을 조성했다. 21세기 '라스푸틴'의 재현이라는 여론이 있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테러방지법' 논란 당시 필리버스터에서 한 야당 의원이 소설 '리틀 브라더'를 소개한적이 있다. 그 소설을 읽었을 때,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현실보다 오히려 그 소설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라며 "작가는 글로, 화가를 그림으로, 음악가는 노래로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게임 개발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레플리카'로 대중의 잠재의식에 대해 말하다
'레플리카'에서 플레이어의 친구는 일반적인 고등학생들과 버스카드 경로 정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미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상태다. 플레이어는 친구의 테러범이라는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SNS에 적은 댓글이나 반응, 티셔츠에 그려진 캐릭터와 문자 송수신 기록 등이 친구가 테러범이라는 증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선택할 수 있다. 친구를 테러범으로 만들거나, 정부기관의 압박에 거부하고 맞설 수도 있다.
소미는 이에 대해 "게임이 가지는 장점 중 하나는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작자의 의도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도덕적 선택을 강요하고, 플레이어들은 선택에 의한 결과와 중압감, 죄책감, 책임을 느낀다"라며 "게임 속 인물들의 상황과 인물들의 고뇌를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플레이 하는 사람이 책임감과 죄책감을 단 한번이라도 느낄 수 있길 바랐다"라고 설명했다.
'레플리카'에는 국가와 각종 파시즘 등의 실제 크게 논란이 됐던 사건들이 게임 속에 녹아 들어있다.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기사나 댓글들 또한 당시 실제 반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를 접한 일부 유저들은 "너무 과장된 것 아니냐", "유치하고 만화 같은 내용이다"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는 "게임을 출시한 후 '게임 만든 개발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리플을 보고 모든 신상정보를 지웠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접했을 때 매우 두려웠고 혼란스러웠다"라며 "'제가 아니라 고양이가 게임을 했습니다' 등의 농담을 단순한 '밈(유행)'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행하는 농담에는 반드시 대중의 잠재의식이 포함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레플리카'는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의 매출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또, 터키에서는 유저들이 당시 터키의 정치적 상황과 게임을 비교하면서 이메일을 보내거나, 팬 사이트를 만들어 게임을 홍보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소미는 "매출 지표를 보고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게임이 정치적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매출이 매우 높아 상당히 놀라웠다. 누군가 에게는 디스토피아 만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이지만, 누군가 에게는 현실이라는 것을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을 만든다는 것
소미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상호작용과 그 사이에 내포된 권력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을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즉, 개발자가 작품을 통해 사회와 민족,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적인 매체로서의 게임을 만드는 작업인 것.
그는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내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고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은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내기에 가장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소미는 이날 키노트 발표의 말미에 그가 설명한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개발'의 연장선상에 있는 신작 리갈 던전(Legal Dungeon)을 공개했다.
'리갈 던전'에서 플레이어는 경찰대학을 갓 졸업한 신임 경찰이 되어 수사가 이미 완료된 사건의 서류를 검토하고 수사 결과를 기록한 의견서를 작성해야 한다. 피의자의 범죄 사실과 관련 법령의 구성요건, 판례, 이전 사건의 내용을 비교 분석한 후 피의자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임무다.
그는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경찰에 대한 문제가 수면위로 나왔으면 좋겠다. 상명하복의 조직에서 개인이 받은 점수는 국가를 위해 얼마나 충성하는지 판단하는 지표가 된다. 피해자는 누가 지키고, 범죄의 예방은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라고 지적했다.
키노트 발표를 마치며 소미는 "'리갈던전' 을 플레이 하면서 여러 선택을 하고, 법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자신의 도덕적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면서 죄책감,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게임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라며 "앞으로도 생각과 관점을 담은 게임을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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