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 겨우 5년형?" 궁금했을 당신을 위해, 게임처럼 배우는 양형기준 '당신이 판사입니다'

등록일 2018년03월16일 12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비롯한 각종 형사사건들의 재판과 관련된 소식을 접하다 보면 우리의 상식(?)에 비춰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형량을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사람을 죽이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징역 2, 3년에 불과하는 형량을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다지 큰 범죄가 아닌 것 같은데도 높은 형량이 부과되는 경우도 많다.

대체 왜 이런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처럼 법원이 내린 형량과 일반적인 국민들이 기대하는 형량 사이에 극명한 온도 차가 발생하는 것은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데 참고하는 '양형 기준'과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법감정'이란 대부분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나 법에 대해 갖는 정서를 의미한다. 사람을 죽였으면 마땅히 무기징역 수준의 형벌을 처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이나 생계형 범죄에 대해서는 다소 형량을 경감해야 한다는 등의 생각을 일반적인 '법 감정'으로 볼 수 있다.

형량을 부여하는 법관들도 결국에는 하나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경사유가 존재할 때 법관의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데, 이를 위해 주요 범죄 별로 지켜야할 형량의 범위를 둔 것이 바로 '양형 기준'. 법관은 법정형에 따라 정해진 형량의 범위를 정한 뒤, '양형 기준'에 따라 감경 요소와 가중 요소를 판단하여 그 형량을 정하게 된다.

'양형 기준'은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과 같은 개념이지만,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형량을 내릴 경우 그 사유를 판결문에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 기준을 위반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아무리 엄벌과 심판을 원하더라도 그에 합당하는 사유가 없는 한, 양형 기준을 크게 이탈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양형 기준은 대법원 관련 홈페이지에 명시가 되어 있지만, 법과 관련된 영역이 생소한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 1월 일반인들에게 양형 기준과 그 절차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국민들의 법감정과 실제 형량 사이의 온도차를 좁히기 위해 대국민 양형 체험 프로그램 '당신이 판사입니다'의 서비스를 실시했다. '당신이 판사입니다'에서 참여자는 자신이 직접 판사가 되어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실제로 대법원에 따르면, 프로그램 체험 이후 살인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택한 사람들의 비율이 10%에서 2%로 감소하고 무기징역 판단도 체험 전 5%에서 체험 후 0.5%로 줄어들 만큼 일반인들의 법감정과 실제 형량 사이의 간격이 많이 줄어들었다.

과연, '당신이 판사입니다'를 통해 일반인들이 자신의 법감정과 실제 양형기준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까? 직접 체험해 봤다.


1단계 - 사건 개요 파악 및 체험 전 형량 선택


대국민 양형 체험 프로그램 '당신이 판사입니다'에서는 사건 선택부터 판결 결과까지 작게는 총 8단계, 크게는 4단계에 걸쳐 판사가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먼저 살인과 절도 중 판결을 내려볼 사건을 선택하게 되면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알 수 있는 기사와 함께 체험 전에 자신이 생각하는 적절한 형량을 미리 선택해볼 수 있다. 처음에 선택한 형량은 이후 최종 판결 결과가 나온 뒤의 결과와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에 기사 내용만을 토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적정 형량을 선택하면 된다.


판결 전 적정 형량을 선택하고 나면, 사건 현장에 대한 간단한 내용을 배우들의 재연을 통해 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준다. 단편적인 신문 기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현장의 다양한 분위기와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파악할 수 있으며, 재연 배우들의 의외(?)의 명연기를 통한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기자의 마음을 약하게 했다. 그러나 기자는 판사의 입장인 만큼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한편, 재생되는 동영상은 3분의 2 이상을 시청하기 전에는 넘어갈 수 없다. 판사이기 때문에 최대한 사건을 유의 깊게 보고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로, 동영상을 다 보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하면 책임감을 가지라는 내용의 경고문도 볼 수 있다.

2단계 - 양형 조건 파악 및 법정 공방


사건의 개요와 자세한 배경을 파악했다면, 이제 본격적인 법정 공방에 앞서 법정형 및 양형 조건에 대해 파악하는 시간을 가질 차례다. 아무리 기구한 사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감형의 조건은 양형 기준에 따르기 때문에 사건의 어떤 요소들이 감형 사유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한다.

수많은 법정형 중에서 해당 사건에 해당하는 법정형과 양형 기준을 선정해서 보여주며, 알기 쉽도록 핵심만 잘 요약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적용 기준을 파악할 수 있다.


양형 판단에 대한 중요한 근거들을 제대로 숙지했다면, 이제는 법정 공방에 들어갈 차례다. 법정 공방 단계에서는 검사, 변호사, 피고인 3명의 이야기를 듣고 판결을 선고하게 된다. 검사와 변호사에게 범죄 경위, 피해자와 피고인에 대한 이야기,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각 인물들의 최종 의견 진술을 들을 수 있다.

여기서도 배우들의 명연기로 인해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지만 과몰입은 금물.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고려하면서 감형과 가중 처벌 요소들을 파악해야 한다. 법정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논쟁은 없지만, 검사와 변호인 측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올바른 판단을 하다 보면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3단계 - 양형 심리 및 선고


사건 전체에 대한 개요 파악과 법정 공방 만으로는 해당 사건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다. 사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피고인의 개인적인 생활 환경과 교우관계, 평소 행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피고인의 주변 사람들이 탄원서를 제출한다.

탄원서는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이야기 이외에도 가중 처벌을 원한다는 내용도 있기 때문에 탄원서의 내용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탄원서 검토를 끝으로 모든 심리 과정이 끝나면 이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 수도 있는 선고 단계만이 남았다. 여기서는 앞서 숙지했던 양형 기준과 법정 공방 내용, 탄원서를 바탕으로 하여 직접 징역과 벌금, 집행유예의 정도를 정해야 한다. 단순히 사건 기사만 접하고 형량을 결정하던 초반과 달리, 머리 속에 많은 고민이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선고 뒤에는 자신이 선고를 내리는 데 있어 영향을 준 요소를 최대 2개 선택할 수 있다. 감경 사유와 가중 사유 중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준 요소를 고르고 법감정 자료 수집을 위한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나면 이제 마지막 단계인 판결 결과로 향하게 된다.

4단계 – 판결 결과 확인


마지막 단계인 판결 결과에서는 실제 사건 발생 당시에 내려졌던 판결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이 프로그램 체험 이전에 생각했던 적정 형량과 프로그램에서 선고 단계에서 생각한 적정 형량을 비교해볼 수도 있다.

여기에 실제 판결문을 같이 보여주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해당 형량이 선고되었는지 마치 문제를 풀고 정답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었다.

대국민 양형 체험 프로그램, 생소한 양형 기준과 판결 과정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대국민 양형 체험 프로그램 '당신이 판사입니다'를 통해 그동안 모르고 있던 양형 기준과 판결 과정을 마치 게임을 하듯이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프로그램 전체의 진행 방식도 극적인 요소는 없지만 마치 스토리 기반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재미를 주었으며, 재연 영상이나 법정 공방 단계에서의 연기들도 훌륭했기 때문에 몰입도가 높았다. 특히 기자는 법정 추리 게임인 '역전재판4'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국민 참여 재판이 생각나기도 했다.

물론 판결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으며 양형 기준도 국민들의 법감정과 정서를 반영하여 수정될 수 있는 만큼, 기자나 다른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생각한 적정 형량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해당 프로그램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너희는 틀렸고 우리가 옳다”가 아닌, 함께 양형 기준과 판결 과정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고 더 나은 기준을 위한 대화와 소통의 장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당신이 판사입니다'에서 체험할 수 있는 사건은 살인과 절도 2가지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의 법감정과 실제 판결 사이의 온도차가 많이 나는 두 범죄 유형 이외의 다양한 범죄들의 기준과 선고 절차를 체험해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추후 다른 범죄 사건 기록들이 추가되기를 기대해본다.


▶'당신이 판사입니다' 체험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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