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에 멋진 한해였다. 아카데미 공식지정 국제영화제로서 첫 행사를 치루며 국내외에서 훌륭한 작품들이 초대되었고, 전 세계에서 감독, 프로듀서 등 제작자들이 대거 부천을 찾아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대중적인 작품들과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함께 상영되어 좋은 균형 감각을 보여줬다는 점도 칭찬하고 싶은 부분. 여기에 일본의 인기 성우 호리에 유이가 영화제를 찾아 마니아들의 관심도 집중되었다.
지금은 2019년 행사를 한창 준비가 한창중인 시기. 2018년 행사를 돌아보고 2019년 BIAF에서는 어떤 걸 준비하고 있는지 듣기 위해 BIAF 김성일 수석 프로그래머와 다시 만났다. 지난해 영화제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반년만이다.
BIAF에서는 2017년과 2018년 두 번의 행사에 성우를 초대해 관객들과 접점을 만든 것을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2019년 행사에도 성우를 초대하기 위해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들과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여기에 국내외 감독, 프로듀서들이 부천을 찾아 한국 관객들과 만나고 예술성이 높은 작품부터 대중적인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올해도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일 프로그래머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BIAF2018을 돌아본 소감과 2019년 전망
이혁진 기자: 먼저 2018년 BIAF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성일 프로그래머: 균형이 잘 맞았던 행사였어요.
전체적으로 일본 작품이 많다는 지적이 전부터 간혹 있는데, 전체 상영작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지만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 많았습니다. '하이큐' 극장판, '겁쟁이페달' 같이 잠재 팬이 많은데 소개되지 않던 작품들이 걸린 경우도 있었고요. 일본의 감독들이나 유명 캐릭터 디자이너들이 BIAF에 많이 오셔서 기억에 남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늘 보면 유럽 작품도 많고 심사위원도 아시아와 서구권에서 비슷한 비율로 구성이 되고 있습니다. 역대 개막작만 봐도 유럽과 미주 작품이 많았어요. BIAF2018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나 2017년의 '빅 배드 폭스'도 그랬죠. 2016년 '쿠보와 전설의 악기', 2015년도도 '에이프릴(아브릴)과 조작된 세계'가 그러했네요. 그러고 보니 근 5년간 아시아 작품의 개막작 선정은 없었던 것 같네요.
초대 손님도 디즈니부터 유럽,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많은 분들이 BIAF를 찾고 있는데, 이건 지난해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김성일 프로그래머: 지난해에는 일본의 인기 성우 호리에 유이가 BIAF를 찾아 디즈니 감독님을 만나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이 안 통하더라도 같은 애니메이션 일을 하는 각 나라 분들이 만나는 건 좋아하는 지점입니다.
지난해 '포카혼타스' 에릭 골드버그 감독님이 호리에 유이씨를 만나 미키마우스 그림을 선물하고 호리에 씨는 답례로 싸인한 피규어를 선물하더군요. 일본의 감독님들도 서구권 감독, 제작자들과 소통을 했는데 이런 부분이 좋아서 BIAF에 한번 오신 분들이 다시 찾아오는 케이스가 많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도 일본 성우 몇 분을 연락 중에 있습니다.
일본의 거장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님이 BIAF에 와서 아카데미(오스카) 회원들과 교류를 하고 아카데미 회원이 되셨는데, 감독들이 자기 나라, 대륙에 국한되어 활동하는 게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져 세계에서 활동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올해 BIAF는 어떻게 치뤄질까요
김성일 프로그래머: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제가 해가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는 게 이상한 거죠. 기본적인 부분은 유지하되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해 나가려 합니다. 상영작과 게스트도 30%는 기존에 BIAF를 통해서 인연이 되었던 감독들의 신작과 재방문, 거기에 70% 정도 새로운 분들을 모셔오게 될 것 같네요.
기본적으로 BIAF는 물론 각종 영화제에 꾸준히 출품하고 수상하는 감독들이 찾아오고, 한번 왔던 감독이 다시 BIAF로 돌아오는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2015년 '미스 호쿠사이'로 하라 케이이치 감독이 대상을 수상했는데, 올해 장편 신작이 나와 섭외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고요. 이전에 수상한 감독의 신작이 나오고 그 작품으로 다시 영화제를 찾는 건 영화제 역사에서도 환영할 일입니다.
게스트 외에 영화제의 콘텐츠 면에서 새로운 점은 어떤 걸 기획하고 계신가요
김성일 프로그래머: 올해 처음으로 국제경쟁 부문에 'VR' 경쟁을 추가합니다. 5월부터 출품안내를 할 예정이고요. 애니메이션은 VR을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최적의 장르라고 봅니다. 단순히 체험하는 엔터테인먼트 수준의 VR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예술성과 미래의 가치, 현재 기술이 융합한 VR 작품들을 찾고 있습니다.
일단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2편이 떠올려지는데요. '공각기동대 버추얼 리얼리티 다이버'와 아카데미 수상 감독인 존 커스 감독이 연출한 '항해의 시대' 같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고 애니메이션의 범주를 넓힌 장르 작품도 포함될 것 같습니다.
VR 애니메이션 영화가 경쟁부문을 진행할 정도로 많이 나오고 있나요
김성일 프로그래머: 그럼요. 일단은 오픈 경쟁으로 폭넓게 출품을 받을 예정입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BIAF에서 꼭 상영했으면 좋겠네요.
우리나라에서는 VR이 주로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기보다는 어뮤즈먼트 파크 중심, 콘텐츠도 놀래키는 것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신주쿠 VR의 '에반게리온' , '건담' 같은 캐릭터만 씌워진 것들은 자체적인 스토리를 가진 형태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만한 시사점은 없더라고요.
현재 VR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저도 VR 경쟁을 위한 사례와 선행 지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국내 작품들도 많이 출품되어 경쟁부문에서 경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에 BIAF에서 만나게 될 작품과 게스트는...
올해 BIAF에는 어떤 분들이 찾아오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확정된 부분이 있다면 살짝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서 언급하신 하라 케이이치 감독님은 저도 뵌지 오래되어 다시 뵙고 싶네요.
김성일 프로그래머: 사실 하라 케이이치 감독은 '미스 호쿠사이'로 이미 BIAF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올해 신작 '버스데이 원더랜드'가 있어요. 장편 경쟁 감독으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이 방문해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합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신작이 나온 '에이스컴뱃' 시리즈 등 게임 작업도 하신 분이고요. 일본에서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 세상의 한구석에' 확장판 이야기도 좀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카타부치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해 듣는 심도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마키 타로 프로듀서,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김성일 프로그래머
카타부치 감독님은 엄청 바쁠 시기에 한국을 찾으시네요. 12월에 '이 세상의 한구석에' 확장판 개봉이 예정되어 있을 텐데...
김성일 프로그래머: 지난해 포스터와 트레일러를 만들어 주신 것도 그렇고, 심사위원장으로 오셔서 시간을 많이 쓰셨는데, 지난 3월에 도쿄를 방문해서 요청을 드리자마자 흔쾌히 수락하셨네요. 감독의 의견을 존중해서, 제작사 GENCO에서도 배려를 해 주셔서 가능했어요.
개봉 2개월 전 한국을 찾아오실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습니다. BIAF에 두번 오셔서 좋은 기억을 남기고 가신 것 같네요
김성일 프로그래머: 부천을 2번 방문하시면서, 한국음식, 특히 간장 게장을 정말 좋아하셨고, BIAF에 대한 좋은 기억이 3번째까지 이어지네요. 올해 마스터클래스 정말 특별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방에서 즐기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감독의 목소리를 듣고 그림도 보고 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 아닐까 합니다. 2011년에 '인어공주', '알라딘' 그리고 '모아나'까지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작품들을 만든 존 머스커 감독님이 오셔서 팬들에게 그림을 많이 그려주셨는데 그 때 그림을 받은 분들이 이제 2~30대가 되었겠죠. 어린 시절 기억으로 애니메이션에 더 관심을 가질 겁니다. 영화제가 그런 분위기로 이끌어 세대를 초월해 나가길 바랍니다.
상영작 윤곽은 언제쯤 나올까요
김성일 프로그래머: 8월말에 전체 라인업이 나올 것 같습니다. 기자회견을 9월 첫주에 해요. 이미 확정된 작품도 꽤 있고요. 작년에 화제작으로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 '멋진 케이크!' 같은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닙니다만 출품 초기단계애서 꽤 좋은 작품들을 확정했습니다.
화제작으로 '너의 이름은.' 으로 BIAF2016에서 2개 부문을 수상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도 어떤 형태로든 상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심사위원상을 받은 '푸난'의 경우도 드니 도 감독과 세바스티앙 오노모 프로듀서가 방문해 한국 관객들과 만났는데 그런 부분이 영화제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겠죠. 올해도 감독님들이 많이 찾아오실 것 같고 그런 분들이 오시면 다음 작품을 위한 영감을 받고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저희 영화제의 가장 큰 목표일 것 같습니다.
BIAF2018 포스터와 트레일러를 2017년 수상자인 카타부치 감독님이 맡았듯, 이번에는 지난해 수상작 감독이 맡으시는 건가요
김성일 프로그래머: 감독님들이 자신의 창작활동을 접어두고 영화제에 같이 참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이 세상의 한구석에'의 배경이 된 히로시마 쪽에서도 카타부치 감독의 만든 포스터와 트레일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더라고요. 심지어 히로시마 공항과 히로시마 관공서에도 포스터가 전시가 되었어요.
올해는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푸난'의 드니 도 감독이 BIAF2019 포스터와 트레일러를 맡아서 완성했고, 4월 안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유럽에서는 드니 도 감독이 포스터를 그린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어서 벌써 기사화가 되기도 했었어요.
올해 '아니메재팬'을 보니 패밀리 세션을 무척 강조하더군요. 그런 방향도 염두에 두고 있으시겠죠
김성일 프로그래머: 아니메재팬에선 패밀리 세션을 무료로 개방하고 가족단위 관람객만 입장시키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BIAF에서 10년 동안 빠짐없이 뽀로로, 타요 등을 같이 프로모션 했어요. 애니투게더 섹션 안에서 가족친화적인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BIAF2019를 기대하고 있을 영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성일 프로그래머: 무엇보다 BIAF 단편 대상 수상작은 아카데미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에, 현재 출품도 꽤 많고, 좋은 프리미어 작품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요. 이러한 작가주의 예술로서의 애니메이션들은 상업 영화 테두리에 수용이 잘 안되는데요. 관객이 덜 들어도 기본적으로 소개가 가능하다면, 영화제에서 무조건 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의 콘 사토시 특별전도 사실 그 위험부담을 알고 시작했는데, 다행히 예상보다 많은 관객이 와 주셔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아무쪼록 감독, 창작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 관객이 많아지는, 많이 찾고 다음 회를 기대하게 하는 애니메이션영화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