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열리는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는 'ICD-11' 개정안 채택 논의를 앞두고, 문화연대가 주최한 긴급 토론회가 금일(3일) 서울 홍대입구 인근 '청년문화공간 JU 동교동'에서 진행됐다.
'세계보건기구 게임 질병 코드 분류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긴급 토론회에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 박근서 교수,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산업과 박승범 과장, 믹스라이스 양철모 작가, 온상민 e스포츠 해설자, 한국게임학회 위정현 학회장,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 이혜영 문화연구자 등 다수의 게임계, 문화계, 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전형적인 '의료화' 과정을 밟고 있는 게임… 누가 게이머들을 '환자'로 만드는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가 '누가, 왜 우리를 환자로 만드는가? 게임중독의 질병화 역사에 대한 소고'를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진행했다. 윤 교수는 먼저 과거 연구됐던 게임 장애(중독)과 관련된 정신의학계 논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가장 많은 '게임 장애(중독)' 관련 논문을 발표한 국가는 한국으로, 총 91편의 논문이 나왔다. 중국(85편)과 미국(83편)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한국은 인구당 논문 편 수에서 1위를 차지해 비중이 높게 나타났으며, 이중에서도 정신의학 논문은 절반 이상인 59.3%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심리학 논문은 15.4%에 그쳐 국가별 논문 편수의 평균 비중인 24.4%를 밑돌았다. 중국 또한 한국에 이어 정신의학 관련 논문이 전체 논문 편수(85개) 중 49.4%에 달할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논문은 저자가 소속된 기관을 기준으로 하므로, 국적으로 따지면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게임 장애(중독)' 논문 수가 가장 많은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동아시아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으로, 연구비 지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또 윤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의 '게임 장애(중독)' 관련 연구자들이 '게임 장애(중독)'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68.6%에 이르는 연구자들이 '중독' 개념을 전제하거나 동의한 후 연구에 임하지만, 동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의 경우 90% 내외의 비율을 보일 정도로 그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질병에 대한 연구는 단어를 정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 옳지만,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이미 중독이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윤 교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진단 도구와 진단 척도는 타당도가 결여되어 있다고 말했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척도는 Young이 만든 IAT(Internet Addiction Test)다. 이 외에 GAS(Game Addiction Scale), CIAS(Chen Internet Addictino Scale) 등이 있는데, 모두가 같은 척도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것을 가져다 쓰다 보니 장애(중독)의 유병률(Prevalence)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타나게 됐다.
윤 교수는 "Young의 IAT가 게임 장애(중독)을 진단하는데 적절한 척도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IAT의 7번 문항은 '공부나 해야 할 일을 하기 전에 이메일부터 먼저 확인한다'인데, 이 문항을 게임에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고려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러한 일련의 연구 및 활동들이 게임을 '중독'되는 악(惡)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의료화'의 사례라고 힘주어 말했다. 의료화란, 비 의학적 문제가 의학적 문제가 되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즉,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이 질병이나 질환과 같은 '치료'를 해야 하는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지금까지는 게임이 의학적 문제로 여겨질 여지가 없었지만, 게임이 치료해야 하는 '병'으로 낙인 찍혀 '의료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만약 'WHO'가 이야기한 대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게임 장애(중독)'의 질병 코드 등재가 이루어지면 큰 혜택을 보는 것은 학부모들이다. 게임을 오래하는 아이의 부모는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며, 단순히 치료해야 하는 '병'으로 분류되어 편해진다는 것이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복잡한 연구 과정 없이도 단순히 '게임 장애(중독)'라고 진단하기만 하면 된다. 게임이 만병의 근원이 되는 셈이다. 또한 윤 교수는 병원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수 년 동안 비보험 치료로 경제적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을 것이라며 현 상황을 비꼬았다.
발제를 마무리하며 윤 교수는 "이러한 '게임 장애(중독)' 코드 등재 이슈는 게임 장르나 플랫폼, 기술적 산업적 환경 변화 등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연구자가, 제한된 피험자를 대상으로 자의적 게임과 불완전한 진단 도구로 연구를 한 다음, 그 결과를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는 주장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라며 "과연 누가, 왜 사람들을 환자로 만드는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보호-정신의학-보건의료로 이어지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
다음으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가 자리에 올라 '게임, 중독 물질 혹은 질병 코드가 아닌 놀이문화의 플랫폼'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게임을 규제하는 방식과 과정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먼저 첫 번째는 청소년 보호론이다. 청소년 보호론은 말 그대로 게임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셧다운제'로 대표되는 2000년대 이후 시기로, 당시 '셧다운제'의 핵심은 보건의학이나 정신의학이 아닌 단순한 청소년 보호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후 게임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고, 2013년에는 급기야 '게임 중독법'이 발의됐다. 이 교수는 "'중독'이라는 것은 정신의학의 대상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는 청소년 보호라는 울타리 안에서 논의됐다면, '게임 중독법'의 발의로 인해 게임이 질병의 대상으로 정의되어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WHO의 게임 장애(중독) 질병 코드 문제는 또 다른 단계, 즉 '보건의료' 단계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이러한 3단계가 순차적으로, 그리고 또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 교수는 보건의료로 게임을 바라보게 될 경우, 게임이 가진 '놀이' 요소, 산업적 요소, 예술 및 미학적인 요소들을 일거에 제거해버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주무부처와 업계에 적극적인 대응과 담론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어느 때보다 크게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WHO'가 '게임 장애(중독)' 질병 코드를 분류하는 이유가 아이들의 정신적, 심리적 장애를 치료하고 의료 혜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일부 이해한다. 하지만 코드로 분류되는 순간 지금까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일종의 교정 또는 순화와 '게임 장애(중독)'으로 분류된 것은 180도 다르다"고 한 차례 더 강조했다.
더불어 이 교수는 질병 코드 등재 이후 국내에서 다시 '게임 중독법'이 발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게임 중독법'을 다시 발의할 법적 근거를 'WHO'가 제시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게임 중독법'은 게임의 가치를 '중독'이라는 이유로 지워버리는 논의다. 게이머가 마약 중독자와 동급으로 평가되고,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지 의문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플레이하고 만드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게임이 갖는 문화적 가치에 대해 평가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그는 "게이머들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다. 인간의 근본적인 놀이 문화의 욕망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가치를 낮게 평가할 수도 없다"며 "게임은 가장 진화된 놀이다. 왜 영화보다, 만화보다 더 강력하게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게임은 '인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 '게임 장애(중독)' 등재에 반대 입장... 적극적인 대응 반드시 필요해
두 참석 패널의 발제에 이어, 현장에 참석한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들어볼 수 있는 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대구가톨릭대학교 박근서 교수는 "최근 사태를 목도하면서 1990년대 말 만화가 처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문화 콘텐츠, 대중문화 현상을 놓고 엄청난 공세, 공격을 받았던 경험은 최근 경험으로는 만화가 가장 가까울 것 같다"며 "문화 파괴,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는 "재미있는 점은, 만화와 게임은 분명 다르다"며 만화를 공격한 포인트가 '문화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만화가 청소년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좋지 않은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이 당시 만화를 바라보는 비난의 주 이유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게임을 둘러싸고 있는 담론은 노동자와 자본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싸움과 같이 수직적이면서도 문화적인 현상이 아닌, 실직이나 정신적 질병 등 개인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는 어떤 게임이 좋은지, 어떤 방식으로 게임이라는 문화를 향유할지,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를 고민해야 하지만 중독이 이를 압도해버리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문화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산적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게임이 하나의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체부 박승범 게임산업과 과장은 "공무원들이 수동적인 면이 있고, 정부 프로세스에 익숙하다 보니 중요한 문제에 대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겠다"며 "양육 태도나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학업 스트레스 등 사회적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정부 기관에서 말하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한 진실은 계속해서 밝힐 것이며, 질병 코드 등재도 확실히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음으로는 양철모 예술가가 발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게임이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소통의 도구이자 수평적인 놀이이며 생활의 일부인 만큼, 이를 '게임 장애(중독)'이라고 확정한다면 일상생활 속 '폭력'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더불어 영화의 '스크린쿼터제'를 예로 들며, 대중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이슈 파이팅'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e스포츠 대회에서 해설가로 활약하고 있는 온상민 해설자는 "업계 종사자로서 이런 토론회가 열리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 같다. 누가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일을 벌이는 것인지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게 된다"며 "게임 자체가 나쁘다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이들은 폭력적이고 사행성이 짙은 게임들 만을 언급한다. 긍정적인 부분을 적극 어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더불어 그는 "과거 젊었던 때에는 20시간씩 연달아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못한다. 게임은 단순히 하나의 문화일 뿐이다"라며 어른들이 바라보는 게임의 가치와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게임협회 위정현 학회장은 "2018년 '게임 장애(중독)' 질병 코드 등재 이슈가 터져 나오면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전쟁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그 배후에 일부 의사 단체와 보건복지부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며 "그동안 이러한 게임에 대한 공격에 지리멸렬하게 반응했다. 정작 주체인 게임산업계가 왜 관망하고 대응하지 않는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이번 질병 코드가 등재될 경우 중소 게임사와 청소년들이 크게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를 나타냈으며, 학부모와 나이가 많은 세대를 포함해 국민의 절반이 게임을 싫어한다는 것을 인정하되, 게임 대 비게임은 100%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므로 창작과 표현과 예술의 자유 그리고 미디어의 자유를 대중에게 적극 어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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