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재를 둘러싼 각계의 의견을 좁히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게임미디어협회가 24일, 서울 역삼동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상반기 게임업계의 핫이슈 중 하나였던 게임 이용 장애와 관련된 전문의의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기존에 게임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했던 질병 코드 지정 토론회와 달리, 의학 및 인지과학 관점에서 서울대학교 의학과 이경민 교수를 초청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교수는 기존에 게임 이용 장애와 관련하여 알려진 잘못된 정보에 대해 바로잡으며, 게임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강조했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 코드로 등재하기로 결정한 이후, 국내에서는 게임계와 의료계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상황이다.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한 각종 토론회가 개최되고 언론에서도 수 차례 중요 사안으로 다루었으나, 정작 당사자인 게임계와 의료계는 물론이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지시로 민관협의체가 출범, 장기적 관점에서 게임 이용 장애 이슈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여정을 어제(23일) 첫 번째 회의를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국게임미디어협회와 한국게임기자클럽이 마련한 이날 초청 토론회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인지과학 협동과정 이경민 교수가 자리에 올랐다.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학과(신경과학교실)와 대학원협동과정 인지과학전공의 교수로, 행동신경학과 인지신경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인지과학회장(2014), 게임이용자보호센터장(2016-8)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Journal of Clinical Neurology 편집장과 게임과학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더불어 이 교수는 기초 뇌과학 및 임상 신경학 분야의 다양한 주제들은 물론,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종교와 과학, 비디오게임을 통한 인지 발달과 뇌건강 증진 등의 주제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 구성된 민관협의체의 계임계 측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게임 과용은 질병이 아닌 자기 통제력 발달의 과정
그는 게임의 과도한 이용(과용)은 단순히 질병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기 통제력 발달의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 시기에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지 기능을 많이 활용하게 되며 보상과 즐거움을 추구하게 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이 전략적 사고와 통제력 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통제 능력이 완벽하지 않거나 통제에 실패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 과도하게 게임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이를 온실 속 화초에 비유하며, 인지 발달을 위해서는 자기 통제를 실패하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자기 통제에 실패하면 문제가 크지만, 가상 세계인 게임에서는 그렇지 않다. 게임에서의 자기 통제 실패를 통해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하는 편이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 장애 이슈, 일반화 시키고 거시적으로 인식해야
또한 이 교수는 게임과 게임 이용 장애 문제를 보다 더 거시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세부 담론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각계에서 생각하는 관점이 모두 다르고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의미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내 입장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고양시키고 일반화 시킬 필요가 있다. 내가 서울대학교 교수이지만 그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인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라는 관점을 통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렇게 대화와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각 계의 관점을 상대에게 주입하고 상대화 시키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과몰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은 결국 중독이라는 표현에 대한 반작용이다. 중독이라는 단어는 담배, 마약, 도박, 술 등 부정적인 것들과 연관되게 되기 때문이다"라며 "물론 이러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관점을 주입하려 하거나, 상대화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은 당연한 것, 오히려 너무 적거나 지나치면 문제 생겨
한편, 이 교수는 마약을 할 때와 같이 게임을 할 때도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 만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파민'은 뇌에 존재하는 신경 전달 물질로, 뇌에는 100억개 가량의 세포가 있는데 정보를 주고 받을 때 사용되는 물질이다. 뇌 속에서 신경 세포들이 일상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신경 전달 물질의 일종인 것이다.
그는 "게임을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므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엉터리 3단 논법이다. '도파민'은 식사, 연애 등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분비된다"며 "분비 되느냐 아니냐 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분비되고 그 양이 얼마나 되는가,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과학적으로 중요한 질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 교수는 '도파민' 관련 행동 장애가 물론 존재하나, 이는 너무 분비되는 양이 많거나 적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무엇이든지 양과 시기가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거나 성행위를 하는 등 보상이 있는 행위를 할 때 평소 양보다 더욱 많은 양이 분비되는데, 상대적으로 코카인 등의 마약이나 각성제로 인한 수치가 훨씬 높고 이와 같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면 뇌 전체 신경 전달체계의 교란을 일으킨다. 또 반대로 지나치게 없어도 문제가 된다.
또 게임 이용자들의 뇌 변화, 마약 중독자들의 생리적 변화 연구, 마약 복용자와 게임 이용자 사이의 변화 등 해외 연구 논문들을 다수 소개하며, 다양한 형태로 연구하고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물론 '나쁜 게임'도 있다. 하지만 취사 선택하여 좋은 환경에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공부 만큼이나 인지능력을 키울 수 있다. 단순히 게임과 공부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은 아쉽다. '셧다운제'를 통해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게임을 문화로 발전시켜 사회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면에만 집중하거나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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