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한국 게임업계가 맞이한 '콘솔게임 시대'를 지켜보며

등록일 2024년10월23일 09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2024년은 국내 게임업계에 그 어느 때보다 콘솔 플랫폼에 대한 도전이 활발하고 관심이 뜨거웠던 한해였다.

 

국내에 작은 시장만 존재하는 틈새시장, 마니악한 일부 게이머들만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콘솔게임에 크고 작은 국내 게임사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우리가 놀 곳이 아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던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이제는 '우리도 할 수 있다', '콘솔에 안 가면 답이 없다'는 정반대 이야기를 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일부 기업이나 대형 게임사, 혹은 인디 씬 일부에서 보이는 현상이 아닌, 게임업계 전반의 흐름이 됐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크래프톤, NHN과 같은 대규모 게임사부터 인디게임사, 개발자들까지 모두가 콘솔 플랫폼을 시야에 두는 시대. 기자 생활을 오래 했지만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부분유료화 과금 모델은 우리의 아이덴티티'라던 넥슨이 게임스컴과 도쿄게임쇼에 대작 패키지게임을 출품하고, 우리는 모바일, 혹은 온라인게임사라던 국내 게임사들이 앞다퉈 콘솔 진출을 발표하게 된 시대, 콘솔 플랫폼으로 게임을 만들지 않으면 정부 지원을 받기 힘들어진 시대. 이런 시대가 갑자기(?) 우리 곁에 왔다.

 

콘솔게임에 모두가 뛰어들게 된 계기와 현재, 인디게임 씬의 사정까지 국내 게임업계의 콘솔게임 도전 현황을 정리해 봤다.

 

성장 지속하지만 국내 비중 작은 콘솔시장, 글로벌 시장은 다르다
오랫동안 국내에서 콘솔게임 비중은 매우 낮았다. 해외시장과 동의어이던 중국 역시 콘솔 비중은 매우 낮았기에, 콘솔은 국내 게임사들에게 '우리 영역'이 아니었다.

 

출처: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소니의 신형 콘솔 '플레이스테이션5'가 나오고 닌텐도 스위치가 약진하며 국내 콘솔게임 시장이 성장했다지만, 2023년 기준 콘솔게임 시장은 국내 게임시장에서 5% 정도 비중에 머물러 있다.

 

일단 국내에서 성과를 낸 뒤 해외 시장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당연했던 국내 게임사들에게 콘솔게임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기란 쉽지 않았다.

 

모바일, PC 온라인게임과 달리 콘솔게임은 매년 새로운 타이틀이 잘 나오면 그해 좋은 성적을 내는 시장으로, 한번 잘 만들어 오랫동안 서비스하며 운영으로 수익을 내는 국내 게임사들의 일반적 사업 모델과 다르다는 점도 접근을 어렵게 한 요인이다.

 

출처: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콘솔게임 규모는 모바일게임에 추월당했다지만 여전히 커서 약 80조원에 달한다. 그때 그때 게임만 잘 만들면 이미 시장을 선점한 게임의 유저를 빼앗아와야 하는 모바일, 온라인게임과 달리 즉각적인 성적으로 연결된다.

 

글로벌 게이머들에게 통할 퀄리티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면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인데 덜컥 대규모 투자를 하기란 어렵고... 작은 규모의 게임을 먼저 만들어 출시해 보고, 그 다음에 큰 게임으로 나아갈지를 판단하자는 게임사와 인디게임을 퍼블리싱해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인 뒤 직접 제대로 만들어 승부해 보자는 게임사가 나타났다.

 

전자는 김민규 전 대표가 이끌던 라인게임즈가 내건 기치였고, 후자는 네오위즈가 쉽게 연상될 것이다. 라인게임즈를 비롯해 비슷한 시도를 한 게임사들은 작은 투자로 선보인 타이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역시 우리가 갈 시장이 아닌가' 라고 더 큰 투자를 망설이게 됐다는 것을 현재의 우리는 알고 있다.

 

반면 네오위즈는 자체 개발 타이틀 'P의 거짓'을 출시하기 전 '스컬' 등 인디게임을 퍼블리싱하며 콘솔게임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우리가 가서 승부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 그리고 운명의 게임스컴 2022를 맞이한다.

 

'P의 거짓' 쇼크, 업계와 정부 관심 콘솔게임에 집중
네오위즈 라운드8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싱글플레이 게임 'P의 거짓'은 게이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국내 게임업계, 무엇보다 정부 기관에 엄청난 충격을 안긴 타이틀이다.

 

독일 쾰른에서 매년 개최되는 게임스컴은 2009년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 게임 행사 중 하나이다. 세계 3대 게임쇼, 아니 E3가 폐지되어 이제는 2대 게임쇼라 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중 하나로 꼽히며 일본에서 열리는 도쿄게임쇼와 함께 세계 게임업계, 게이머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게임쇼이기도 하다.

 


 

게임스컴 2022년 어워드에서 네오위즈의 신작 'P의 거짓'이 '최고의 액션 어드벤쳐 게임' 부문과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 여기에 '가장 기대되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까지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국산 게임이 게임스컴 어워드에서 상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국산게임이 게임기의 대명사,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서 가장 기대되는 게임으로 꼽히다니...
 

'P의 거짓'의 게임스컴 어워드 수상은 관련 정부 기관들에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것 이상의 충격을 줬다. 게임을 담당하면 사행성, 유해매체 같은 키워드로 싸우고 방어하고 비판받는 입장이 되는 것이 보통이던 것에서, 게임으로 세계적 권위의 상을 받고 세계 보편적 문화 콘텐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지원사업 참여 조건이 '콘솔로 게임을 출시하면 좋겠다' 정도에서 '콘솔로 게임을 출시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국내 게임업계에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네오위즈가 콘솔 플랫폼으로 AAA급 타이틀을 출품해 기술력과 게임성을 인정받는 것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 우리라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그리고 2023년 글로벌 출시된 'P의 거짓'은 개발 규모에 비해 준수한 판매량과 좋은 평가를 기록하며 개발팀에게 '세컨드 찬스'를 부여했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대표되는 수익모델을 배제한 완성된 콘텐츠를 판매하는 패키지형 게임이라는 점에서 경쟁사들의 신규 개발팀들에게도 레퍼런스가 되어줬을 것이다.

 

펄어비스 '붉은 사막'은 게임스컴 어워드 2개 부문에 노미테이트되었지만, '몬스터헌터 와일즈'가 너무 강했다. 다른 해였다면 수상이 가능했을까...
 

2024년 게임스컴에는 넥슨의 '카잔'과 펄어비스의 '붉은사막' 등이 출품됐다. 내심 수상을 기대했다지만, '몬스터헌터 와일드' 등 대작들에 밀려 수상은 불발됐다. 하지만 게임스컴 어워드에서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게임을 출품하게 되었다는 점, 글로벌 대작들과 대등하게 겨뤘다는 점은 'P의 거짓'부터 시작된 한국 게임사들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정부 주도의 급격한 콘솔게임 드라이브
국산게임이 콘솔 플랫폼에서 승부가 된다, 콘솔로 게임을 내야 한다는 정부, 기관의 인식은 지원사업 방향성으로 연결되어 풀뿌리 인디게임부터 국내 게임업계의 키를 콘솔로 급격히 기울게 했다.

 

8월 부산에서 열린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에서 만난 일본 등 해외 게임 개발자들은 한국의 지원사업에 부러움을 표했다. 한 일본 인디게임 개발자는 기자와 만나 "게임을 제작하는 데 정부가 지원을 해주다니 꿈같은 환경이다"라며 일본 정부에서도 비슷한 지원 사업을 해 주기를 바랐는데...

 

국내 인디게임사, 개발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지원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좋지만, 역시 지원 사업의 방향성을 따라가게 되어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BIC 2024에 출품된 이키나게임즈의 RPG 신작 '스타바이츠', Xbox를 시작으로 콘솔 플랫폼 전반에 출시될 예정이다
 

현재의 고충은 단연 '콘솔 플랫폼으로 가지 않으면 지원 사업 선정 자체가 힘들다'는 점과, 속도를 내라는 압박이 강하다는 점이었다. 한국인의 특성, 방향이 정해지면 앞만 보고 달려간다는 점과 빨리빨리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소한 콘솔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게임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콘솔 최적화 때문에 일정에 차질을 빚게 만드는 등 난맥상도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많은 인디게임사들을 콘솔 플랫폼을 시야에 두고 콘솔게임 개발에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BIC 2024 어워드에서 대상을 탄 '안녕 서울' 개발사 지노게임즈 김진호 대표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에 이어 도쿄게임쇼에서도 국내 인디게임사들이 들고 나온 콘솔게임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당분간 콘솔 플랫폼에 대한 관심, 지원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좋은 성적을 내는 게임사도 계속 나올 것이고, 국내 게임업계의 체질이 인디게임 씬부터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콘솔게임 개발 경험을 가진 젊은 개발자, 인디 개발사의 증가는 체질 전환을 노리는 게임사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대형 게임사들의 인식 전환, 서비스게임과 패키지게임 투트랙으로 
2024년은 대형 게임사들이 제대로 투자해 만든 게임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 한해이기도 했다. 출시된 게임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개발중인 신작들에 대한 기대를 크게 키웠다.

 

시프트업 '스텔라 블레이드'는 콘솔게임의 본고장 일본에서 호평받으며 품귀현상을 빚어 화제를 모았다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는 국산게임 최초로 소니가 직접 퍼블리싱하는 세컨드파티 타이틀로 출시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프트업은 '스텔라 블레이드'의 업데이트, 콜라보를 진행하며 IP로 확립해 나가는 한편 신작에도 도전할 계획. 그 자신이 콘솔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이기도 한 김형태 대표는 서비스형 게임보다는 콘솔 유저들에게 친숙한 판매형 타이틀을 먼저 선보였으며, 기반을 다진 뒤 서비스형 게임에도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넥슨은 부분 유료화 타이틀 '퍼스트 디센던트'를 출시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소울라이크 기대작 '카잔'을 게임스컴과 도쿄게임쇼에 출품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넥슨이 준비중인 콘솔 타이틀은 더 있고, 게임의 성격에 따라 서비스형 타이틀과 판매형 타이틀, 투트랙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 역시 스위치로 '배틀 크러쉬'를 출시해 콘솔게임사가 됐고, 대작 'TL'의 콘솔 버전 출시를 앞두고 있다. 준비중인 타이틀 중 콘솔 플랫폼을 시야에 둔 타이틀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비스형 게임이 많지만 판매형 타이틀을 배제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NHN도 스위치 플랫폼을 시야에 두고 있으며, 넷마블의 최대 기대작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은 콘솔을 포함한 멀티플랫폼 타이틀로 개발되고 있다. 'P의 거짓'으로 국내에 콘솔게임 붐을 일으킨 네오위즈는 추가 콘텐츠와 후속작에 더해 더 많은 콘솔 플랫폼 타이틀을 준비중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게임사에서 신규 개발팀이 이미 성적을 낸 국산 게임 사례를 들며 판매형 BM을 제안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은 불안해하는 경영진이 많지만, 사례가 더 쌓이면 불안은 점차 작아져 갈 것이다.

 

문체부 용호성 1차관이 도쿄게임쇼 현장에서 '카잔'을 플레이하고 있다
 

네오플 대표로 '카잔'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윤명진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자신있는 '액션'을 제대로 담은 '카잔'에 이어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 나가 최종적으로는 거대한 필드에서 자유롭게 액션을 즐기는, 오픈월드 온라인 액션게임을 개발한다는 장기 플랜을 제시했다.

 

일본의 액션게임 명가 프롬 소프트웨어가 '다크소울'부터 시작해 '엘든링'에서 오픈월드 게임을 선보여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판매량과 평가를 이끌어 낸 것처럼 장기적인 시야에서 네오플을 액션게임, 콘솔게임 명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윤명진 대표와 앞서 언급한 김형태 대표처럼 콘솔게임도 두루 즐긴 젊은 경영자들이 게임사에 더 많이 생긴다면, 한국이 콘솔게임 강국이 될 날이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콘솔게임 원년, 이번에는 진짜라고요
콘솔 게임 비중이 낮은 한국과 달리 북미와 유럽 등 서구권 시장에서는 여전히 콘솔게임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과 비슷한 시장으로 분류되던 중국 시장도 '오공'의 기록적인 성공과 함께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게임산업은 모바일 플랫폼, MMORPG 장르, 그리고 확률형 아이템으로 대표되는 BM을 바탕으로 단기간 내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동시에 유저들과의 적대적 관계, 글로벌 시장에서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부정적 환경에 놓이게 된 것도 사실이다.

 

국내 주요 게임사의 콘솔, PC 플랫폼, 그리고 패키지게임 도전은 매출 확대라는 경영적 목표를 넘어 글로벌 게임사로 도약할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그 동안 '한국 콘솔게임 원년'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국산 콘솔게임이 나왔다는 소식에, 국내 대형 게임사가 콘솔 플랫폼으로 게임을 낸다는 소식에 그런 표현을 쉽게 써 왔다. 하지만 기존 콘솔게임 강자들과 제대로 붙어 경쟁하고 평가받고 성적을 내는 게임이 나왔느냐고 하면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도쿄게임쇼 2024 '카잔' 부스 전경
 

하지만 2023년 하반기 네오위즈 'P의 거짓'과 '산나비', 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의 선전부터 2024년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 넥슨의 '퍼스트 디센던트'가 세계 콘솔게임 시장에서 제대로 승부해 결과를 냈다는 점, 한국 최대 게임사 넥슨이 게임스컴과 도쿄게임쇼에 대형 부스를 내고 콘솔게임 유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기대받는 게임사가 되었다는 점은 이제까지 가볍게 사용하던 '한국 콘솔게임 원년'아라는 표현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국내 게임사들에서 개발되고 있는 신작 게임들이 잘 마무리되어 좋은 성과를 내고, 콘솔게임에 대한 투자 확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급격한 드라이브가 걸린 인디게임사들의 콘솔 진출에서도 좋은 결과가 많이 나오길 응원한다.

 

2025년에는 더 좋은 소식이 많아질 것 같다. 국산 콘솔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닌, 평범한 소식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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