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게임의 부상, '쫓기는 입장'에서 '쫓는 입장'이 된 한국 모바일게임

등록일 2015년03월09일 17시10분 트위터로 보내기


지난 2월 17일 발표된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전략적 제휴 체결 소식은 국내외 게임업계를 깜짝 놀라게했다. 이 자리에서는 주로 양사의 제휴 배경과 엔씨소프트의 경영권을 둘러싼 이야기가 주목받았지만 기자에게 가장 큰 놀라움을 준 것은 넷마블을 이끄는 방준혁 의장의 현실인식과 미래 전망이었다.

 

방 의장은 양사의 전략적 제휴 체결식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 게임의 급성장으로 한국 게임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는 충격적인 진단과 함께 특히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현재 국내 구글플레이 매출순위 상위권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외산게임이 반년 후면 70%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외산게임의 중심 역시 중국게임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방준혁 의장의 이번 발언은 국내 1등 게임사를 이끄는 입장에서의 발언이라 뒤늦게(?) 화제를 모았지만, 사실 중국 게임사의 한국지사나 국내 모바일 개발사들 사이에서 중국 모바일게임의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고 국내시장 잠식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지는 오래됐다.

 

30위권 안에 안착한 중국게임들(파란 사각형)

 

중국게임이라고 하면 여전히 표절게임이나 수준낮은 게임을 연상할 사람도 있는 반면 이미 한국이 따라잡을 수 없는 단계까지 가버렸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개발환경, 수준이 어떤지, 중국게임의 현재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비포 도탑전기, 애프터 도탑전기
국내 모바일 게임 개발자들에게 '비포 도탑전기, 애프터 도탑전기'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도탑전기의 중국에서의 대성공을 전후로 모바일게임의 흐름이 크게 변화했다는 인식을 표현한 말로, 도탑전기 전에는 중국게임이 한국게임을 베끼는 시절이었다면 도탑전기 후에는 한국게임들이 중국게임을 베끼는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흐름은 2014년 하반기에 이미 포착되었지만, 중국게임이 국내 모바일게임의 인기, 매출순위의 과반을 점령하는 것은 2015년 말~2016년 상반기 쯤에나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넷마블 방준혁 의장이 그보다 훨씬 빠른 시점, 2015년 8~9월에 중국게임의 국내시장 순위 장악이 이뤄질 것이라 예견한 것은 퍼블리셔의 입장에서도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넷마블이 들여온 중국게임 '리버스월드'는 중국게임이라는 걸 모르고 플레이한 유저도 많았다

 

국내 퍼블리셔들은 그 동안 어떻게든 국내에서 좋은 게임을 만들어 성공을 시키고 해외에 수출해 대박을 내 보겠다는 기본 전략 하에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개발사에 투자해 왔다. 하지만 중국게임들이 국내에서 (중국 온라인 게임과는 달리) 성공하는 사례가 자주 나오고, 유저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지켜보며 서서히 전략에 수정을 가하게 되었다. 그 방향은 값싸고 질좋은 중국게임들을 다량으로 들여와 승부를 보는 쪽이다.

 

이미 국내 굴지의 모바일 게임 퍼블리셔 A사가 중국게임만 수십종을 계약해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 융단폭격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으며, 국내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중국 게임사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 중국회사 한국법인들의 목적이 소싱이 아니라 중국게임의 한국 수출이라는 점이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개발의 핵심은 규모와 속도, 저작권은 돈 벌어 해결한다
중국 개발사들은 기본적으로 모바일 게임 개발팀 규모가 크다. 30~50명 선으로 기본 개발팀을 꾸리고 많게는 100명 이상, 200명 이상 팀을 꾸리기도 한다. 곧 국내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인 쿤룬코리아의 '태극팬더' 개발팀은 120명 선이다.

 

중국 개발사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콘텐츠의 규모와 개발속도이다. 콘텐츠 규모를 늘리기 위해 개발팀 규모를 키우고 개발속도를 올리기 위해 리소스는 외부에서 끌어쓴다. 국내에서는 큰 이슈가 되고 반발을 사는 '그래픽 리소스 표절'은 중국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블리자드의 '디아블로'를 그대로 모바일로 옮긴 '암흑여명'

 

중국 게임회사들은 그래픽 리소스에 대해 '일단 끌어다 만들어 실패하면 접고 성공하면 돈을 주고 해결한다'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캐릭터를 활용한 '마스터탱커2'와 '뮤'리소스를 활용한 '전민기적'이 이런 방식으로 해결을 한 경우이고, '디아블로'를 활용한 '암흑여명', '리그오브레전드'를 그대로 모바일로 옮긴 'FFF'(파이트 포 프리덤)는 아직 해결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지만 원본(?) 게임을 그대로 모바일로 옮긴 케이스다.

 

'FFF'(파이트 포 프리덤)는 '리그오브레전드'를 그대로 모바일로 옮겼다

 

위에 언급한 게임들은 모두 모바일 게임들이다. 이미 중국게임들은 예전처럼 단순히 그래픽 일부, 캐릭터 조형만 갖다쓰는 게 아니라 원본 게임을 그대로 모바일로 옮기고 변형을 가한 버전을 만들어 서비스하는 수준까지 왔다.

 

암흑여명같이 디아블로를 그대로 베낀 것을 두고 유저들은 '어휴 디아블로 베낀 것 봐'라고 생각했겠지만 개발사들은 '디아블로를 모바일에서 그대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놀랐을지도 모른다.

'언리얼 엔진' 사용 증대, 온라인게임과 코어게임들의 성공
중국게임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모바일 개발사들의 언리얼 엔진 사용 증대다.

 

에픽게임스에 따르면, 이미 중국 언리얼 엔진 개발자 수는 한국과 비슷, 혹은 더 많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3D 액션게임을 자체엔진으로 제작하던 개발사들이 개발기간 단축을 위해 언리얼 엔진을 채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에픽게임스 역시 이런 중국시장 변화에 발맞춰 중국시장에 맞춘 라이센스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한국 개발사들이 '블레이드' 성공 후에야 언리얼 엔진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에서는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한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한국시장 공략 준비도 착착 갖춰가고 있다.

 

오랫동안 캐릭터 수집, 육성형 RPG가 득세하고 있는 한국시장에 비해 중국시장이 갖는 또 하나의 강점은 그 거대한 시장규모에서 비롯된 다양한 장르의 대중화다.

 

PC웹게임에서 단련된 서버기술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중국 모바일 MMORPG들은 이미 국내에도 수입되어 '여우비', '오스트크로니클' 등이 매출순위 상위권에 안착했으며, 실시간 파티플레이와 싱글플레이를 모두 지원하는 뛰어난 그래픽의 모바일 MORPG 역시 국내시장에 속속 들어오고 있다.

 

'전민돌격'은 TPS에 성장요소를 더해 중국 모바일 게임시장 최고 인기게임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부 국내 개발사가 향후 힘을 발휘할 장르라는 전망 하에 도전했다 실패를 맛본 모바일 FPS 장르 역시 중국에서는 1등게임 '전민돌격'으로 대중화에 성공했다. 전민돌격을 보면 중국게임이 더 이상 '무시못할' 수준이 아니라 '놀라운' 수준임을 실감할 수 밖에 없다.

 

중국 모바일 개발사 상당수가 모바일로 개발한 3D 게임들의 콘솔(플레이스테이션4, Xbox One) 이식작업에 나선 점도 콘솔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 가진 채 국내시장에 침잠한 국내 개발사들과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이제 추격자의 입장에서
국내 개발사들이 아직 비교우위에 있는 부분은 뭐가 있을까?

 

에프엘모바일코리아 박세진 한국지사장은 "자금력, 시장규모, 개발규모는 중국이 앞서지만 아직 기획력은 한국이 좀 더 우위에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중국과 국내시장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는 한 모바일 게임 개발, 퍼블리셔 관계자는 "한국이 아트 외에는 잘하는 게 없는데 중국은 아트는 갖다쓰면 된다고 생각하므로 실질적 우위를 가져다줄 수 있는 건 IP 뿐"이라 잘라 말했다.

 

쿤룬코리아 라이언 옌 부사장은 "우수한 개발자들이 한국에 많다"고 했지만 현재 중국회사로 이직하는 한국인 개발자가 끊이지 않고, 개발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인 상황에서 이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제 추격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가진 강점을 확인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시점이 왔다. 일본처럼 쌓아둔 IP를 가졌다면 좋았겠지만, 그것도 아닌 우리에게 답은 너무나 뻔한 답, 규모와 아이디어와 세계화밖에 없는 것 같다.

 

넷마블이 세계시장에서 승부하기 위해 엔씨소프트와 손잡고 IP 확보,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것도 이런 상황 하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국내시장보다 동남아, 북미, 남미 등 해외시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일부 개발사, 퍼블리셔들의 도전 역시 그렇다.

물론,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기 위해 작은 개발팀으로 도전에 나선 개발사들은 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게임들이 중국 밖으로 쏟아져나오며 경쟁은 더욱더 가혹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각종 규제와 발목잡기로 게임산업 발달을 방해해 온 정부와 눈앞의 이익에 근시안적 대처만 해온 게임회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를 위해 뭘 해야할지를 모색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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