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게임업계를 살펴보면 매출순위 고착화로 투자가 위축되고, 중국과 일본 게임사들이 규제와 제도 밖에서 한국시장 원거리 공략에 나서며 중견 개발사들이 너무나 추운 한해를 보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리니지' IP를 앞세워 승승장구한 엔씨, 해외에서 수입한 게임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카카오게임즈, 해외시장 공략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컴투스 등이 눈에 띄지만 대부분의 게임사가 2019년을 힘든 한해로 기억할 것 같다.
국내 게임사들에게 2020년도 역시 쉽지 않은 한해가 되겠지만, 그 동안의 노력을 보답받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뛰어난 결과물을 거둘 개발사도 분명 나올 것이다.
해가 바뀌고, 다들 준비중인 게임을 선보이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려고 박차를 가하는 시점에서 기자가 꾸준히 지켜봐 온 기대해도 좋을 개발사를 몇 소개해보려 한다. 한국 시장보다는 해외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수준의 게임 퀄리티를 보여주려는 개발사들이다.
"우리 IP로 게임 좀 만들어주세요", '일곱 개의 대죄'로 세계적 개발사로 자리매김한 '퍼니파우'
2019년 중엽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한 모바일게임 '일곱 개의 대죄: GRAND CROSS'를 선보인 퍼니파우는 뛰어난 그래픽과 액션 묘사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2020년에는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 이런 게임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개발력을 세계에 증명해 유명 IP 홀더들이 "우리 IP로 게임을 만들어 달라"고 줄을 서게 만들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2019년 하반기 '어떤 IP로 신작을 만들까'를 고민한 퍼니파우는 마음을 정하고 신작 개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 그거'라고 할 유명 IP로 신작을 만드는 한편,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연구도 충실히 진행하고 있어 2020년 관련 소식이 차차 공개되면 퍼니파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개발사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퍼니파우는 기술력 확보에 공을 들여 개발자를 200명 수준까지 늘린 상황. 퍼니파우 측은 "개발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준비중인 프로젝트들을 다 수행하려면 지금도 개발자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퍼니파우 서우원 대표는 한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북미, 유럽 등 서구권에서 성적을 내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아 왔는데... 최근 기자와 만나서도 "미국에서 1등을 하고 골든벨을 울리겠다"는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일곱 개의 대죄: GRAND CROSS'가 서구권 유저들에게 통할지를 지켜봐야겠지만, 후속 주자들도 있으니 서 대표의 자신감은 단발 승부에 건 호언은 아닌 셈이다.
'대항해시대 오리진' 준비중인 모티프, 믿고 기다리면 될 것 같다.
두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개발사는 오픈월드 MMORPG '대항해시대 오리진'을 준비중인 모티프이다. 개발을 꽤 많이 진행했지만 보안을 위해 일부 관계자와 IP 홀더인 코에이테크모게임즈에만 게임 내용을 공개하고 있어 관련 영상, 스크린샷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쭉 즐겼고, 특히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한국 최초로 세계 모든 주점 점원과의 호감도 맥스를 찍었던 기자로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타이틀이다.
직접 확인해 본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모티프 이득규 대표가 시리즈 팬이라고 밝힌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대항해시대2'와 '대항해시대2 외전'의 테이스트를 잘 살리면서도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요소를 적절히 수용하고 오리지널 요소를 가미한 정말 잘 만든 '대항해시대'였다.
교역과 모험, 그리고 전투를 적절히 담으면서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재미요소였던 투자와 해전, 주점 친목활동(...) 등도 담았다.
이런 콘텐츠적인 면 외에 그래픽 면에서도 굉장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라면 스마트폰을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2020년 연말쯤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함께 했던 어르신들을 다시 규합해 모험에 나서야겠다고 생각중이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기자가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몸담았던 네덜란드가 유저가 선택 가능한 국가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대신 오스만이 처음부터 선택 가능한 국가이니 포루투갈과 오스만 중 하나를 골라 플레이할 생각이다.
현재는 모바일과 PC 버전 출시를 확정지은 상황으로, 다른 플랫폼으로의 진출도 기대해봐야겠다.
일본시장 1등을 향해 달리는 엔픽셀 '그랑사가'
마지막으로 소개할 엔픽셀은 '세븐나이츠'로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한국게임이 일본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한 배봉건, 정현호 대표가 설립한 회사이다.
이들이 넷마블에서 독립해 개발사를 세운 시점부터 눈여겨 봐 왔는데, 신작에서 압도적인 아트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방향성이 마음에 들어 더 주목하게 됐다.
사실 엔픽셀의 '그랑사가'는 아트풍이나 제목에서 일본의 모 게임 느낌이 나 화제를 모았는데, 원래 제목이 '그랜드 사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하게 바꿨다는 느낌이 반에 굳이 이렇게 바꿨어야 했나 하는 느낌이 반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정현호 대표는 전작(세븐나이츠)으로 일본에서 결국 1등을 못했다는 점을 두고두고 아쉬워한 개발자로, 이번에야말로 일본시장에서 1등을 찍고 세계시장에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그랑사가' 개발진의 과반수가 아트팀이라는 점은 개발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 정현호 대표는 기자와 만나 "개발에 관여하는 인원은 200명을 넘어서지만 순전히 그랑사가 개발에 매진하는 인력은 170명 가량이다. 그 중 아트팀은 90명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배경, 캐릭터, 복식, 무기까지 무엇 하나 소홀히하지 않고 제대로 된 퀄리티를 보여주겠다는 '퀄리티 지상주의' 개발사가 멀티플랫폼으로 세계시장 1등을 노린다는데 응원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나.
엔픽셀의 그랑사가는 상반기 중 쇼케이스를 갖고 하반기 중 출시될 전망이다. 캐릭터를 내세운 게임으로 일본시장의 강력한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여기까지 소개한 세 개발사의 공통점은 게임 퀄리티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며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점, 멀티플랫폼에 시야를 두고 실제 준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시장만이 아닌 글로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시장이 고착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게임의 퀄리티로 승부할 수 있고,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그리고 새로운 플랫폼으로 나아가 승부하면 된다는 결론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세 개발사 모두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2020년 한국 게임들이 더 많은 플랫폼에서 활약하기를, 그리고 다시 세계시장에 한국게임의 저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