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겉은 1996년 속은 2020년, 트렌드가 지나치게 잘 반영된 '바람의나라: 연'

등록일 2020년07월20일 09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넥슨의 대표 타이틀을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메이플스토리'나 '던전앤파이터', '카트라이더'나 '서든어택'처럼 지금까지도 인기가 높은 게임들이 언급될 것이다. 나 또한 넥슨의 게임 대부분을 플레이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고, 그만큼 각 게임들에 대한 추억도 많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바람의나라'는 생에 처음 즐겨본 온라인게임으로, 아직까지도 구버전에 대한 추억이 서려 있는 타이틀이다. PC방에서 조금씩 캐릭터를 키워 3차 승급이 최고였던 시절 무려(?) '현사'까지 육성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클래식 RPG'라는 이름으로 무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비스되고 있는 '바람의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서비스 되고 있는 온라인 MMORPG'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넥슨의 대표 게임이다. 20여년 동안 그래픽 리뉴얼과 콘텐츠 업데이트를 이어오면서 과거 추억의 '바람의나라'가 갖고 있던 감성과 모습은 많이 희석됐지만, 여전히 특유의 게임성으로 장기간 서비스 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바람의나라: 연'에 대한 기대 반, 걱정 반이 들었다. '클래식'의 범주에 포함되는 올드 IP를 모바일게임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흔해진 요즘이지만, 플랫폼 특성과 지나치게 정형화 된 게임의 문법이 불만족스러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플레이 해본 '바람의나라' 모바일 버전, '바람의나라: 연'은 잘 만들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었다.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그때 그 감성은 여전하지만, 콘텐츠부터 BM까지 현 세대 모바일게임의 트렌드를 지나치게 잘(?) 반영하고 있었다. 감성과 추억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외형은 합격점… 특유의 게임성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
우선 초창기 '바람의나라'를 상징하는 구버전, 그리고 대대적인 그래픽 리뉴얼이 적용된 일명 신버전의 조화가 돋보인다. 두 버전의 장점만을 가져온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래픽과 각종 효과음, 스킬 이펙트 측면에서는 꽤나 만족스럽고 완성도도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싶다. 아, 물론 '바람의나라'를 해본 '추억보정'이 걸려 있는 상태임을 밝힌다.

 



 

스킬 시스템은 과거 단순히 배우기만 하던 구버전을 채택하지 않고 신버전의 그것과 유사하게 구현됐다. '지존'이 되어야 배울 수 있었던 '헬파이어'와 같은 주력 기술들은 빠르게 배울 수 있도록 해 지루함을 덜어냈고, 실제 플레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스킬들은 과감하게 쳐냈다.

 



 

가장 궁금했고 걱정스러웠던, 그러면서도 기대됐던 것은 역시 조작 방법이다. '바람의나라' 원작이 마우스 조작을 거의 베재한 채 키보드로 다수의 스킬을 빠르게 사용하는 방식인 만큼, 이를 물리 버튼이 하나도 없는 스마트폰 등의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할 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특히나 이 '그룹 사냥'의 재미야 말로 '바람의나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직접 해본 바로는 과거 키보드로 즐기던 특유의 손맛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바람의나라'스럽게 구현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원작의 투박한 셀 이동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타겟을 빠르게 변경하며 마법을 사용하는 등의 조작이 가능하고 20개에 달하는 스킬 슬롯도 지원한다. 모바일게임인 만큼 자동 전투시 우선 순위를 설정해 사냥의 효율을 높일 수도 있다. 키보드로만 조작하는 PC 온라인게임을 모바일로 가져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만약 앱플레이어로 플레이 하는 유저라면 키 매핑을 활용해 키보드로 조작하여 원작 '바람의나라'를 하는 듯한 기분도 느껴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앱플레이어에서의 조작은 레이드에서 빛을 발하는데, 가는 길은 자동 전투를 지원하지만 보스를 잡을 때는 직접 컨트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효율과 편의 측면에서는 자동 전투가 압도적으로 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동 전투를 활용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그래픽이나 조작 방식에 있어서는 원작의 느낌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 점을 칭찬할 수 있겠다. 지금의 넥슨을 있게 해준 게임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게임인 만큼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정도의 외형적 완성도라면 모바일게임임을 감안했을 때 선방했다는 느낌이다.

 



 

원작의 게임성을 원하셨다면, 잘못 찾아 오셨습니다
다만 모바일게임으로 만들어진 만큼 아쉬운 측면도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조작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아쉽다. 분명 원작 고유의 감각을 해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측면에서는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터치 기반의 디바이스의 한계를 극복 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화살표와 넘버 패드를 사용하며 사냥하는 '로망'을 생각했다면, 자동 전투의 높은 효율에 금새 가로막히고 만다. 물론 이것은 모바일 플랫폼 자체의 한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작의 게임성을 생각해 본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러한 조작 방식의 한계 때문에, 결국 원작 '바람의나라'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아이덴티티인 사냥과 컨트롤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게 된다. 자동 전투를 켜 놓으면 사실상 타 모바일 MMORPG와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는 오히려 '바람의나라: 연'을 하면서 구버전의 '바람의나라'가 하고 싶어 졌는데, 참 씁쓸하면서도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다.

 



 

이 외에도 지나치게 최신 트렌드가 잘(?) 반영되어 있다는 점 또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스탯에 보너스 효과를 주는 도감 시스템은 사냥, 장비, 환수, 전리품 등 그 분류가 지나치게 세세하다. 무시하고 플레이 할 수야 있겠지만, 쌓이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욕심이 있다면 마냥 '패스' 하기도 어렵다. 최근 모바일 MMORPG에서 이러한 시스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일정 수준 이후부터는 직접적으로 BM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퀘스트의 방식과 스크립트, 당연하게도 들어가 있는 천편일률적인 '탑'과 '레이드' 콘텐츠 등도 아쉬움이 남는다. 레이드나 '인형굴' 시점에서 하게 되는 파티 플레이가 재미가 전혀 없냐 하면 그것은 아니지만 원작만큼의 재미와 개성, 놀라움은 느껴볼 수 없었다.

 

게임 초반부터 즐거움 보다는 노골적인 과금 압박을 받는 구조에 대해서도 실망스럽다. 물론 천천히 한다면 어느 정도 '즐겜'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속 방지턱 같은 느낌의 진입장벽과 의도된 불편함은 불쾌함을 준다. 아닌 말로 "꼬우면 아시죠?"라고 물어보는 것 같다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게임을 플레이 하며 자연스럽게 '리니지M'과 '리니지2M'이 떠올랐다. 경매장, BM, 도감 시스템 등 게임을 아우르고 있는 구성들이 상당 부분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니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바람의나라: 연'을 플레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바람의나라: 연'은 '리니지'를 상당히 의식해 만들어진 느낌을 주는데, 느낄 수 있는 재미는 그리 유니크하지 못하다. 심지어 '바람의나라: 연'은 '리니지', 정확히는 엔씨소프트가 부러워 따라한 결과물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겉은 1996년, 속은 2020년
'바람의나라'가 국내 게임 역사에 있어 중요한 타이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바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관심을 받았고, 또 실제로 오픈 시점에서는 '연'이나 '무휼' 같은 도시 서버에 대기열이 생길 정도로 유저들이 몰렸다. 비교적 한산한 서버인 '세류' 또한 수천 명 단위의 대기열이 만들어졌다. 그만큼 기자 또한 어린 시절 '바람의나라'를 열심히 했고 또 추억하는 입장에서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모바일로 만들어진 '바람의나라'는 당시 '바람의나라'의 감성과 재미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그래픽과 효과음 그리고 이펙트, 음악, 맵과 NPC까지는 분명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도록 하는 그것이었지만, 게임을 플레이 하며 느낄 수 있는 게임성은 최근 획일화된 모바일 MMORPG 트렌드, 특히나 '리니지 형제'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리하자면 구버전과 신버전의 조화로운 그래픽과 효과음, 음악과 감성으로 잘 포장했지만, 내실을 따져보면 게임의 겉모습만 '바람의나라'일 뿐 게임성, 콘텐츠, UX, BM까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맛을 본 적이 있는 모바일 MMORPG였다. 칭찬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 리니지'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나를 포함해 원작 '바람의나라'를 양껏 즐겨본 사람이라면 게임의 외적인 모습에서는 잠시나마 향수와 추억을 느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망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당연히 매출 순위는 높게 나올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바람의나라: 연'은 17일 기준 '라그나로크 오리진'을 밀어내고 구글 플레이 매출 4위에 올랐다. 매출 순위 TOP 5를 보면 '리니지 형제'와 '뮤 아크엔젤', '바람의나라: 연'과 '라그나로크 오리진'이 버티고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올드 IP의 부활', '정통 IP의 저력 과시'와 같은 수식어는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게임판이 20년 전과 똑같다는 냉정한 비판에 일부 공감한다.

 



 

지금의 넥슨을 있게 해준 대표 타이틀이자, 많은 이들의 첫 온라인게임 라이프를 경험하게 해준 '바람의나라'의 후속작을 이렇게 대한 것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실망스럽다. 옛날 그 시절 적은 용돈으로 배를 곯아가며 PC방에서, 혹은 몰래 전화로 월정액을 결제하며 즐겼던 '바람의나라'는 말 그대로 추억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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