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크루세이더 킹즈 3', 어설픈 군주는 살아남지 못하는 중세 시대 시뮬레이터

등록일 2020년09월23일 12시53분 트위터로 보내기

 

막막하고 어렵다. 이 단순한 표현만으로 게임을 한 번에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름 아닌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설사'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신작, '크루세이더 킹즈 3'다.

 



 

만약 이 게임을 처음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부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이번 작에서는 전작에 비해 매우 상세하고 친절하게 구현된 튜토리얼이 존재하지만, 그 내용이 방대해 자세히 이해하며 넘어가려고 한다면 '스팀' 환불 2시간 제한 정도는 가볍게 넘어버린다. 만약 게임을 '잘' 해보려고 생각한다면 공부를 해야 하는 수준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한국어화와 튜토리얼이 함께 제공되어 진입장벽은 전작에 비해 낮아졌다
 

심지어 자신이 어지간히 중세를 포함한 세계사에 정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역사일 뿐 '크루세이더 킹즈 3'에서는 또 다른 세계선이 매번 펼쳐진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숙련되지 않은 플레이어는 살아남기 위해 또는 자신의 영토와 병사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한국어화를 한 팀에게 박수를...
 

중세 시대를 모니터 속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게임 내 세계에서는 마치 연예인 이휘재가 등장했던 'TV 인생극장'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플레이어에게 수많은 선택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들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결과로 돌아와 플레이어에게 '보답' 한다.

 

권모술수가 판치고 암살과 모략이 밥 먹듯 일어나는 중세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현대 시대에서의 윤리나 규칙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어진다. '중세 아침 드라마 시뮬레이터'와 같은 별명이 괜히 붙는 것이 아니다.

 



 

흔히 도전의식을 고취시키는 높은 진입장벽은 넘어서는 순간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굳이 예를 들자면 리듬게임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보이지 않던 패턴이 갑자기 쳐지고, 손도 대지 못하던 곡을 클리어할 때 느껴지는 희열은 경험해본 사람은 공감할 것 같다.

 

하지만 매우 짧은 템포로 자주, 또 눈으로 직접 성과를 느껴볼 수 있는 리듬게임과는 달리, 한 게임의 템포가 매우 길고 익혀야 할 것이 많은 '크루세이더 킹즈 3'에서는 상당한 인내심과 장기적으로 지켜보는 여유로운 자세를 요구한다.

 

전쟁, 결코 전쟁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군주가 되어 로마 제국처럼 세계 통일을 이룩할 것이라는 야망에 빠졌지만 이는 '빨리빨리'와 '잘 하고 싶다'는 지극히 한국인 게이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큰 착각이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조언한 것과 같이 매우 여유롭게, 장편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는 것처럼 물 흐르는 대로 플레이 하는 것이 이 게임의 매력에 빠져 오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분명 머리에서는 '크루세이더 킹즈 3'가 가진 매력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한 번 붙잡으면 수 시간에 걸친 장편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 게임은 플레이 하기에 상당히 힘겹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앞서 다소 게임의 무거운 면만 이야기한 것 같지만, 분명 '역사덕후'나 시뮬레이션 장르에 재미를 느끼는 게이머도 있을 것이다. 팬들의 염원이 담긴 한국어화가 이루어졌고, 전작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잘 짜여진 게임성도 갖췄다. 수많은 파라미터들을 이리저리 조작하고 내 뜻대로 운영해 나가면서 대규모 시뮬레이션 게임 특유의 '관리'하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다.

 



 

다만, 나는 나름 하드코어 게이머라고 자부했던 것과 달리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깨달았다. '토탈 워'나 '문명'과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은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되는 무서운 게임이라고 말이다. 또 멋들어진 냉병기와 번쩍거리는 철제 갑옷 그리고 대규모로 펼쳐지는 싸움처럼 중세 시대 하면 막연히 떠올리는, 그리고 미디어에서 흔히 표현되는 것들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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