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게임시장은 예상하지 못한 호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며 세계 경제도 불안한 상황에 놓인 2022년에 접어들자 '사람들이 모바일게임에 더 이상 돈을 쓰지 않는다', '취미 생활에 많은 돈을 쓸 여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세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코로나 시기, 국내 게임업계는 갑자기 찾아온 호황과 재택근무로 인한 개발 지연이라는 특수 상황을 맞이했다. 매출 증대로 신작 개발의 지연은 큰 문제가 아니고 더 좋은 퀄리티로 승부할 수 있다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 게임사가 많았을 것이다.
근래 코로나 사태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며 준비한 대작 게임을 시장에 하나둘 선보이고 있지만 시장 상황이 전과는 크게 바뀌어 있어 고전하는 게임사가 많다. 특히 해외 시장 공략이 더 어려워졌다는 고충을 토로하는 해외사업 담당자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한국 게임사들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었던 중국시장이 한국 게임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소멸했고, 이제는 중국 게임들이 밖으로 나와 글로벌 모바일 게임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주요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중국을 '시장'으로만 바라보며 중국게임의 약진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판호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에만 관심을 가지고, 중국게임의 수준이 올라왔다고 해도 중국 내에서나 통하는 게임 정도로 치부하는 업계 관계자가 많았고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특히나 2022년에는 기대를 모았던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이 중국에 출시되었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둬 국내 게임업계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 전 중국 게임산업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고, '검은사막 모바일'이 출시된 2022년 모바일게임 시장 상황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중국게임의 최첨단에서 세계 게임시장의 지배적 초격차 게임으로 자리매김한 '원신'이 어떤 게임인지를 짚어본 뒤 현재 상황에서 한국 게임사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살펴보려 한다.
늦게 시작해 빠르게 성장한 중국 모바일게임 시장, 성장 한계도 빠르게 맞아
2012년 '애니팡'의 등장 후 빠르게 모바일게임으로 무게추가 옮겨간 우리와 달리 스마트폰 보급이 늦었던 중국 게임시장은 2014년 정도부터 급격히 성장해 2016년에야 PC 온라인게임을 제치고 게임산업의 주류로 부상한다.
모바일게임 시장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면 성장기, 개발사 주도기, 퍼블리셔 주도기를 거쳐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레드오션화에 도달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중국 시장은 늦게 시작했지만 빠르게 이 과정을 거쳐 모바일게임 시장 고속성장기가 시작된 지 불과 5년만인 2019년에는 이미 성장 둔화, 대규모 게임사의 빅게임이 아니면 승부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을 맞이했다.
'음양사'가 히트하던 2016~2017년만 해도 매년 수십 % 성장하는 고성장이 지속되어 2020년대에는 게임 하나가 중국 내에서 수조원을 벌어들이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유저풀, 과금액이 끝없이 증가할 수 없다는 당연한 결론과 함께 해외로 나가야 한다,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기기 성능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2019년 말경 중국 게임산업의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는 판호에만 집중해 판호 발급이 제대로 안되어 중국 게임시장 성장이 둔화되었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판호 발급 문제를 겪은 2018년이 지나 2019년에는 다시 연간 1462건의 판호가 발급되었고 중국의 게임시장 규모 확대도 지속됐다. 현재는 판호 문제가 중국 게임산업의 성장,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평가가 주류이다.
2019년, 자국내 시장의 성장세 둔화를 겪게 된 중국 게임산업이 내린 결론은 해외로 나가 이미 자국 시장을 장악한 현지 게임들과 경쟁하기 위해 게임의 '명품화'에 나서야한다는 것이었다. 너도나도할것 없이 '프리미엄 콘텐츠'를 내세우게 됐으며, 그 방향성은 우수한 IP를 정식 계약해 게임으로 만드는 방향과 초 대규모 사전개발과 매년 AAA 타이틀 개발비 수준의 라이브 업데이트 개발비용을 투자하는 대규모 개발로 나아가게 된다.
쉽게 말해 '고퀄리티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기 전 이미 게임 퀄리티를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해외시장 개척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중국을 제외한 세계 3대 모바일게임 시장인 한국, 일본, 미국 시장 모두에서 점유율 20% 이상을 차지하고 글로벌 모바일게임 시장 전체의 40%를 중국게임이 차지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검은사막 모바일' 쇼크, 중국 시장의 현재 보여주는 사례
2022년 4월, 펄어비스의 대표작 '검은사막 모바일'이 중국에 출시됐지만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흥행에 실패했다. 중국에서 또 한번의 한국게임 열풍을 기대했던 국내 게임업계에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검은사막 모바일'의 중국 시장에서의 아쉬운 성적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 퍼블리셔인 텐센트가 진심이 아니었다, 너무 늦게 출시되어 실패했다, 트렌드에 맞지 않는 장르, 그래픽 스타일, 소재 등이 문제였다 등등...
너무 늦게 출시되었다는 평가는 수긍할 만 하다. 판호 발급이 늦어지며 출시가 늦어졌고, 중국 시장이 크게 변화하기 전 진입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텐센트가 진심이 아니었다는 평가는 중국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야 할 수 있는 평가다. 텐센트가 해외 게임사의 게임을 출시했다는 것 자체가 높은 평가를 했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앞서 언급했듯 2019년 이후 중국의 대형 게임사들은 예전처럼 게임을 많이 출시해 되는 것 하나를 건지자는 방향에서 소수의 명품게임에 제대로 투자해야 승산이 있다는 쪽으로 전략이 바뀐 상태이다. '검은사막 모바일'은 텐센트가 '명품게임'으로 판단했기에 출시한 것이라 봐야 한다.
무엇보다 텐센트는 '검은사막 모바일' 출시 당시 대대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중국 톱클라스 예능인을 홍보모델로 기용하는 등 제대로 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실패한 것인데, 대대적으로 마케팅한 대작 신작 타이틀이 실패하는 것이 중국 게임시장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2022년 1분기 중국 매출순위를 보면 왕자영요, 화평정영, 원신, 몽환서유, 삼국지 전략판, 크로스파이어 모바일, 와일드 리프트 등이 최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오랫동안 서비스된 인기게임이거나 인기 PC게임의 모바일 버전들이다. 2020년 이후, 코로나 시기 중국 게임시장에 새로 나와 매출순위 최상위권에 진입한 신규게임은 '원신'과 '삼국지 전략판' 정도가 눈에 띈다.
한해에 1000개 이상의 신작 게임이 쏟아지는 중국 시장에서 새롭게 매출순위 최상위권에 진입하는 게임은 한해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다는 것으로, 앞서 서술한 대로 시장이 고착화되어 명품게임으로 승부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승부'나마 해볼 수 있는 시장이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승부해볼만 하다고 판단하고 출시한 명품 게임들도 줄줄이 실패하는 상황에서 잘 만든 '명품'게임이라고 평가받은 '검은사막 모바일'의 실패는 아쉽지만 충격을 받을 만한, 놀랄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코로나로 인한 모바일게임 시장 재팽창, 시선은 글로벌 시장으로
시점을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던 2020년 1분기로 돌려보면, 중국 게임업계는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고속 성장을 계속해 온 매출규모, 유저 수 면에서 성장이 크게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2019년 4분기 6억 5200만명 가량이던 모바일게임 유저 수가 2020년 1분기에는 6억 5400만명 가량으로 1%도 늘지 않았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중국 게임사들은 중국 내에서의 경쟁은 끝났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았다. 유저가 200만명 늘었다고 하면 한국 게임시장에서는 크게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올만 한데, 중국의 거대한 인구풀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라 해야겠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미성년자 보호 정책이 쏟아지며 미래 이용자 확보도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앞서 2020년 중국 내수 게임시장이 다시 한펀 크게 팽창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사실은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게임산업이 일시적 호황을 맞이했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물론 단순히 코로나의 영향으로 매출과 유저 수가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 게임 유저 층 확대에 한계를 느끼고 여성 게이머들에게 어필할 게임을 개발해 온 중국 게임사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여성 게이머가 크게 늘어난 것 등이 주효했다. 2022년 현재 중국 게임 유저 성비는 거의 1:1로, 남성과 여성 게이머 비율이 51:49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도 즐기는 유저가 많았던 '러브 앤 프로듀서'를 비롯해 여성향 게임들이 쏟아졌고 유저층을 빠르게 늘렸다. 남성과 여성 유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원신' 같은 타이틀도 힘을 발휘했고, 여성 유저 중 코어 게이머 비중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저층 다변화를 위해 장르 다변화에 나서 성공한 것은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 게임산업의 경쟁력이 되었다. MMORPG의 한국, 캐릭터 수집 게임의 일본처럼 주요 게임시장에는 대세가 되는 장르가 쉽게 연상이 되는데 중국 시장에는 그런 대세 장르가 없다. 슈팅 장르와 MOBA 장르에서 빅 히트작이 나오긴 했지만, 전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1/4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는 없다.
MOBA, RPG, 전략게임 등 1억명 이상의 유저가 존재하는 인기 장르가 있지만 비중이 크지 않은 장르에도 수천만명의 유저가 존재한다. 다양한 장르, 유저층을 타깃으로 한 게임들이 꾸준히 개발된 것은 코로나 시기 해외로 나온 중국게임들이 '먹히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2020년 코로나 사태 하에 큰 폭으로 성장했지만, 2019년을 경험한 중국 게임사들의 시선은 이미 글로벌 시장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토양 속에서 세계 시장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초격차 게임 '원신'이 등장했다.
'원신' 쇼크Ⅰ, 신작 개발비의 2배를 매년 업데이트 개발에 투입한다
중국 게임들이 중국 밖에서 벌어들인 돈은 2021년 26조원에 달했다. 2022년에는 규모가 훨씬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이런 중국게임의 해외시장의 약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는 게임은 미호요의 '원신'이다.
'원신' 등장 전 중국게임 하면 주로 한국과 일본, 동남아 시장에서 캐릭터 수집형 게임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전략게임들이 아시아와 서구권에서 고루 좋은 성적을 내는 이미지였다. 중국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유저가 한국은 물론 일본, 서구권에도 많았다.
2020년 말 등장한 '원신'은 전 세계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그리고 콘솔에서 압도적 성적을 거두며 중국게임의 이미지를 크게 바꿔놓았다. 중국게임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던 이들의 생각을 180도 바꿔버리는 타이틀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많은 게임사들이 성공한 게임을 분석해 개발중인 게임에 참고, 반영하고 개선해 적용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원신'은 경쟁사, 개발자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주는 게임이 되고 있다. 흉내낼 수 없는 초격차 게임이라는 이야기를 국내 개발자들에게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모바일, PC에 콘솔까지 멀티플랫폼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며 점검을 진행하지 않는 운영, 월간 액티브 유저 6500만, 동시접속자 900만명(이것도 지난 데이터로 지금은 규모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이 몰려도 아무 문제없는 서버, 싱글플레이에 초점을 맞추고 대규모 스토리 콘텐츠를 일회성으로 소비해버리는 개발방향, 대형 MMORPG의 연단위 확장팩 수준 콘텐츠를 월단위로 투입하는 업데이트 주기 등.
'원신'은 국내 게임사는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도 따라할 수 있는 게임사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초대형 개발 규모에 더해 중국 게임산업이 수년간 정립한 개발 이론, 스토리 작법의 정수가 망라된 타이틀이다.
'원신'의 개발비는 출시 전 이미 1억달러(약 1440억원)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더 놀라운 것은 개발사인 미호요가 업데이트 개발에 신작 개발보다 더 큰 개발비를 투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호요는 2020년 '원신' 출시 후 2021년부터는 연간 개발예산을 2억달러(약 2880억원) 이상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0년 말 출시된 '원신'은 출시 직후부터 좋은 성적을 거뒀고, 미호요는 '원신' 개발비를 빠르게 회수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초반 성적이 좋으니 업데이트 개발에 수천억원을 투입하자는 발상을 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든 게임인이 많을 것 같다.
중국 게임산업에서는 2016~7년 모바일게임이 주류가 된 시점에서 이미 모바일게임의 가치를 현재 매출액이 아닌 미래 가치에 기반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작 게임의 연매출이 현재 1000억원 수준이라도 5년 뒤 1조원 규모가 될 수 있다면 이 게임의 현재 가치는 5000억원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느낄 독자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정도 가치가 있고 그렇게 클 수 있으니 투자를 크게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는 이야기이니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래 가치'는 단순 게임 매출만이 아니라 콜라보레이션, 멀티미디어 전개 등이 포함된 IP화 가치를 포함한다.
제대로 개발해서 게임을 성공시키고 사랑받으면 스핀오프 게임 등 게임 확장은 물론 게임을 기반으로 한 상품, 애니메이션, 실사 드라마, 연극, 콜라보레이션 등 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 그를 위해선 일단 게임을 진짜 제대로 잘 만들어야 하니 투자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이게 개념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대규모 개발비 투자로 이어진다는 점이 거대한 시장에 기반한 중국 게임산업의 호방한 기풍(?)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10년대 중엽부터 나타난 이런 초기 개발비 투자는 미국 테크기업들의 초기에 미래가치까지 모두 고려해 투자를 받고 투자한다는 사업이론의 변주에 가깝다. 미국에 유학해 미국 IT업계에서 일하다 중국 게임사에 합류해 사업을 맡는 경우가 많아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도 가능한데, 기자가 만난 미호요 임원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경력을 쌓은 영어가 유창한 인사였던 기억이 남아있다..
'원신' 쇼크 Ⅱ, 신규 콘텐츠를 계속 제공하면 되는데 반복 콘텐츠를 왜 만들어?
미호요의 대규모 개발비 투자가 어떤 기반에서 이뤄졌는지를 간략히 설명했는데, 국내 개발사들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원신'이 단순히 개발자와 개발비를 다른 게임보다 많이 투입한 규모가 큰 게임이라는 점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개발 사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흉내낼 수 없는 초격차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것으로, 기존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의 설계 사상을 근간에서 뒤집어버린 게임이 '원신'이다.
최근 일본 게임업계에서는 '원신'이 소개된 후 모바일게임 유저들이 다른 유저들과 함께 즐기는 소셜 요소나 경쟁 콘텐츠보다는 싱글플레이 콘텐츠, 스토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은 물론 세계 모바일게임 유저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저들의 그런 성향, 요구는 이미 있던 것이지만 '원신' 등장 전 모바일게임에서 싱글플레이 콘텐츠는 개발 비용은 많이 드는 데 비해 한번 즐기면 끝이라 효율이 극도로 나빠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요소로 분류됐던 것이 사실이다.
스토리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모바일게임들도 스토리 콘텐츠 업데이트는 매우 긴 텀을 두고 진행이 되고 있고, 처음에 스토리와 싱글플레이를 장점으로 내세워 출시된 게임이라도 유저들이 원하는 속도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없어 결국 PVP와 반복 콘텐츠를 엔드 콘텐츠로 제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싱글플레이 콘솔게임이 모바일게임과 온라인게임이 득세한 후에도 힘을 잃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잘 만든 싱글플레이 콘텐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지속적인 운영을 해야하는 온라인, 모바일게임에서는 개발 효율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 시공간을 불특정 다수의 유저가 공유하는 멀티플레이 게임의 경우 콘솔게임의 싱글플레이 캠페인과 같이 정제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기에 그보다는 다른 유저와의 사이에 발생하는 불확실성에 기반한 재미를 주는 방향으로 개발 방향이 발전한 것이다.
서비스를 이어가야 하는 멀티플레이 게임은 유저들의 플레이타임이 무제한에 가까워지므로 개발 방향에서 콘텐츠의 생산성과 반복에 의한 재사용성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싱글플레이 콘텐츠는 첫 플레이에서는 큰 재미와 만족감을 제공하지만 반복 플레이 시 경험이 급격히 나빠지고 피로가 심해진다.
MMORPG로 대표되는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들이 성장과 유저 간 인터랙션(경쟁)을 게임의 핵심 요소로 두고 싱글플레이 요소는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싱글플레이, 유저들의 조작을 통한 결과 획득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그 부분은 이펙트와 애니메이션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보여주며 자동 사냥을 통해 성장의 보람만 제공해도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게임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 한국의 게임사들이 '결국에는 이것이 세계에도 통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여겨진다. 계속해서 공략해도 서구권이나 일본 유저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다.
지금 와서 보면 안일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상황이었기에 결국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게임인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원신'이 등장하면서 그런 전략에 문제가 생겼다. 성장의 보람으로 가기 전 단계, 싱글플레이 부분을 재미있게 만들어 기준을 높여버리니 '이게 더 잘 만든 게임이구나', '이게 재미있는 게임이구나'라고 앞 부분에서 비교가 끝나버리고 기존 스타일의 모바일게임이 가진 설계 상 장점까지 유저들이 도달조차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현재 미호요는 '원신'에서 6주마다 확장팩 수준의 대규모 스토리와 퀘스트, 신규 지역을 추가하고 매주 큰 규모의 신규 이벤트(전투, 수집, 스토리 퀘스트 등)를 제공하고 있다. 인게임 이벤트 외에 웹 이벤트도 빈번히 진행하며 유저들에게 일체감과 만족을 주기 위한 오프라인 이벤트, 콘서트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10년대 중엽 중국에서 논의되던, 블리자드 팬들이 우스개로 하던 소리인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확장팩이 나올 때마다 너무 재미있는데, 엔드 콘텐츠인 레이드는 한번 깨면 그 다음부터는 작업이 되고, 무엇보다 확장팩이 너무 띄엄띄엄 나오는 것 아닌가, 확장팩이 매달 나오면 더 끝내주지 않을까'를 실제 구현한 게임이 원신인 셈이다.
기자는 '원신'을 플레이해보지 못한 게임인들에게 '스토리가 좋고 싱글플레이가 재미있다고 하는데 스토리 다 깨고나면 뭐 할 게 있나, 엔드 콘텐츠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자주 듣고있는데, 미호요는 스토리를 다 깨면 다음 스토리를 제공하고, 엔드 콘텐츠가 필요없이 끝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싱글플레이 반복이 피로를 주고 재미를 못 준다면, 새로운 싱글플레이를 끝없이 주면 해결될 일 아닌가', 농담같은 일을 실제 개발 방향으로 삼아 실현시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국내 게임사들의 고민은 깊어지는데...
이미 아시아, 일본은 물론 북미와 유럽 유저들도 원신에 빠져버렸다. 잠재 유저들이 앞서 언급했듯 한국 게임들이 장기로 삼던 부분에 도달조차 못 하게 되어버렸다.
더 큰 문제는 국내 게임사들이 대책을 마련하고 대안을 찾기도 전에 원신의 성공을 지켜보고 따라할 역량을 지닌 중국 대형 게임사들이 대규모 투자로 멀티플랫폼,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대작들을 속속 내놓을 것이라는 점이다. '원신'의 미호요 역시 복수의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원신'을 참고해 개발됐다지만 고작(?) 200명 규모의 소규모(??) 개발로 도전했다 실패한 '타워 오브 판타지'와는 다른, 진짜 대형 게임들이 차례로 등장할 것이다.
국내 게임사들로 시선을 옮기면, 국내 시장과 한국형 MMORPG가 통하는 대만 등 일부 시장만 타깃으로 해도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으니 고퀄리티 한국형 MMORPG에 도전하는 게임사는 계속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틀 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앞선 게임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그래픽과 완성도를 보여줘야 해 극소수 게임사의 대형 게임들만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국내 대형 게임사들 역시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멀티플랫폼, 고퀄리티, 다양한 장르라는 방향으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엔씨소프트, 시프트업, 크래프톤이 준비중인 대형 콘솔, PC 타이틀을 2023년에는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초기부터 대규모로 개발해 제대로 된 퀄리티로 도전해야 한다는 중국식 개발 사상에 가장 근접한 펄어비스의 '붉은사막'과 '도깨비' 등 차기작에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현재 가장 속도를 내고 있고, 가장 먼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는 국내 게임사는 넥슨이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허민 고문의 개발 허들을 넘은 신작들, '마비노기 모바일', '퍼스트 디센던트', '카트라이드 드리프트', '워 헤이븐' 등이 지스타에서 공개될 예정으로, 기존 넥슨 게임들과는 다른 유저층, 보다 폭넓은 유저층, 다양한 플랫폼 공략에 서둘러 나설 계획이다.
기자는 그래픽, 게임 디자인 면에서는 국내 게임사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한국 게임의 최대 약점은 '스토리'로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어떻게 이뤄지느냐가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 같다. 텐센트 등 중국 게임사들이 스토리텔링이 강점이라는 게임사들을 국적 불문 사들이고 있는데, 그런 부분을 참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온라인게임이 주류가 된 뒤 개발효율이 나쁜 싱글플레이 부분을 잘라내고 좋은 스토리, 무엇보다 이야기의 마무리를 경험해 보지 못한 국내 게임사들이 경험 부족을 이겨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싱글플레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현재 국내 게임업계에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은 가능성을 가졌다는 의미도 될 테니 절망보다는 희망을 갖고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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