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 게임이용장애(ICD-11 )국내 도입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문화연대는 16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WHO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과 관련한 핵심 쟁점을 살펴보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문화사회연구소 정원옥 대표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국민대학교 박종현 교수,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소장,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융합교양학부 오영진 초빙조교수, 한국게임산업협회 최승우 사무국장, 문화사회연구소 최준영 소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WHO의 국제표준안과 관련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의 진행과정을 짚었다.
WHO는 지난 2019년 국제 질병 분류 코드에 ‘게임이용 장애’를 새롭게 추가했다. 핵심은 게임을 즐기는 행위에 몰입하는 이른바 ‘중독’으로 인한 질병 존재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우리 정부 역시 KCD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등재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 2019년 5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7월부터 1차 회의를 시작으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는데 번번히 실패하며 4년째를 맞이하는 올해까지 이렇 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관련 현안을 다루는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문체부 역시 도입 여부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렇듯 첨예한 찬반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오는 2026년 1월 9번째 KCD 개정안의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 초안 작성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WHO의 권고를 그대로 시행했던 과거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번 ICD-11 역시 전면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며 이를 바라보는 게임업계의 위기감도 함께 고조되고 있는 상황.
지난 총선 게임부문 공약으로 질병코드 도입 저지를 약속했던 민주당은 지난 7월 15일 강유정 의원이 대표발의하는 ‘통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통계법 개정안은 21대 국회가 임기 만료되면서 폐기된 안건을 재발의 한 것으로 핵심은 국제표준분류를 반영해야 되는 현행 통계법(제22조 통계청장은 통계작성기관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통계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산업, 직업, 질병ㆍ사인(死因) 등에 관한 표준분류를 작성ㆍ고시하여야 한다)의 구속력을 낮추고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질병코드 등재와 관련된 11차례 회의를 통해 나왔던 내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이제는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
‘WHO ICD-11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등재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발제로 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학자이자 민관협의체 22명의 위원 중 한 명으로 개인적으로 바라본 현행 국내 도입 과정의 문제점을 짚었다.
현재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와 관련해 게임이용장애가 도박중독 장애와 유사한 뇌 반응을 일으켰다는 주장과 게임산업계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주장을 기본으로 하는 지지그룹과 학술적으로 통일된 정의가 없고 연구결과가 부족해 공중 보건과 의학 및 과학, 사회 및 권리 기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반대 그룹의 주장이 이렇다 할 협의점 없이 표류하고 있다.
WHO의 게임이용장애 등재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이 교수는 의료계, 게임계, 법조계,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 등 각계를 대표하는 민간위원 14명, 정부위원 8명 총 22명으로 구성된 민간협의체의 논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민간협의체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와 관련한 과학적 근거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1소위, 게임이용장애 실태조사 기획 연구를 담당한 2소위,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를 연구한 3소위로 구성해 단계적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올해 5월에 진행된 11차 협의체에서 최종 보고가 이루어졌다.
이 교수는 해당 연구에 대해 “협의체에서 논의한 연구결과들이 아직은 과학적 근거, 진단방법과 도구, 파급효과와 관련한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아직 충분하지 않고 협의체가 도입 여부를 결정 내리기에 아직 연구 및 분석 자료들이 매우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이용장애 실태조사와 관련된 보완 연구가 필요하지만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재 2026년 도입 여부를 결정을 앞두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보다 적극적인 활동 및 토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과학적 검증에도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서 도입 여부와 관련된 공청회 및 여론 수렴,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소화하기에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
이를 위해 ▲협의체 위원들의 이슈 토론 및 세미나 ▲결정에 필요한 객관적 근거마련을 위한 추가 연구 ▲WHO ICD-11에 대한 해외 연구동향 분석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공개 토론회 및 국회공청회 ▲국내도입 결정을 위한 합리적이고 객관적 의사결정 방법과 절차 도입 등의 과제를 늦어도 2025년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지금의 협의체 구조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이러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며 “협의체의 새로운 논의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고 국내도입과 관련한 좀 더 임상적이고 학술적인 연구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WHO의 권고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관행 사라져야…사회적, 문화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어서 ‘국내 게임 규제정책 환경에서 WHO 게임이용장애 도입 논란의 쟁점들 :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따른 법적 문제점 고찰’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국민대학교 박종현 교수는 KCD 도입과정의에서의 법적인 문제점을 살펴보고 다른 법률 및 정책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먼저 박 교수는 현행 통계법 22조에 대한 경직된 해석을 통해 WHO의 ICD 권고사항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권고’ 사항에 대한 수용과정에서 사회적, 문화적 합의가 수반되야 한다는 것. 앞서 설한 강유정 의원의 발의안을 언급한 박 교수는 국제기구의 분류를 국가가 그대로 따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정책 당국의 주체적인 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KCD를 통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취급의 헌법적 타당성도 검토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행정규칙에 해당하는 KCD가 법령의 수권에 근거하여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적용되는지, 또 법체계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헌법의 원리와 기본권의 내용을 준수하는지를 확인해봐야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게임이용장애를 KCD에 질병코드로 등록하게 되면 개인의 게임이용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사항에 대해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게 되고 이 경우 정당성에 대한 엄격한 판단 기준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국가 후견주의의 강화는 개인의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고 특정 행위를 법적으로 질병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 및 일반적 자유권 전체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해악이 확정되어야 하는데 자초하는 해악이 불명확하고 간접적이며 나아가 중대하거나 필연적이지 아니한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에 개입하는 국가의 작용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가 초례할 수 있는 법적, 정책적 문제들에 대해 ▲게임이용관련 세금 및 부담금 신설관련한 문제 ▲게임과몰입으로 일어나는 범죄와 관련해 형사책임조각사유로서의 게임이용장애 인정여부 관련 문제 ▲질병개념의 확장으로 인한 건강보험법상 비용 부담 문제 및 실제로 공적, 사적 위험보장 체계에서 실제로 질병으로 인정받기 힘든 정신질환 위험보장 체계 관련 문제 ▲정신적 장애에 대한 보호(복지 및 의료) 제도 적용관련 문제 등 법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모든 산업에는 명과 암이 있다. 그리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한데 사실 지금의 논의가 과연 게임의 순기능이나 문화적인가치를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진정 가치를 인정한다면 역 기능이 있더라도 대안적이고 점진적이고 순차적인 접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며 “현재 게임이용장애는 무조건 질병이라는 것을 전제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러한 선입견에 근거한 시각 속에서 정책의 정당성이 갖춰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WHO의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과 관련돼 관계자들이 참석해 현안을 논의하는 릴레이 토론회 형태로 진행되며 8월 중 2번째 토론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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