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디지털 시장법이 올해 초부터 시행됨에 따라 일명 '게이트키퍼'로 분류되는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반독점 행위 규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모바일 생태계에서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법 제도 수립에 나서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동안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를 소유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은 모바일 생태계를 사실상 독점 지배해왔다. 시장에서의 압도적인 지위와 영향력으로 인해 독점적이고 경쟁이 없는 생태계가 조성되었고, 구글과 애플 만을 위한 '수수료 화수분'이 만들어지게 됐다.
많은 이용자들이 존재하는 곳에 계속해서 더 많은 이용자들과 콘텐츠가 모이면서 쏠림 현상은 가속화 됐다. 기업과 이용자 모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앱 및 게임의 인 앱 결제에 부과되는 높은 수수료는 기업에게 큰 부담이 된지 오래며, 이 부담을 이용자들이 사실상 일부 분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정해져 버린 업계 표준 수수료 30%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고 기업의 부담은 결국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30% 수수료에 반기 든 에픽게임즈… 애플과 정면 충돌
이러한 흐름에 가장 처음으로 반기를 든 것은 에픽게임즈였다. 애플과 에픽게임즈는 디지털 시장법이 논의되기 전인 2020년부터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에 외부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보다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에 구글과 애플은 자사 스토어에서 '포트나이트'를 퇴출 시켰다. 에픽게임즈는 애플의 반독점 위반 문제를 지적하며 소송에 나섰고, 애플은 독점 횡포를 부리지 않았다며 법정에서 맞섰다.
에픽게임즈와 애플의 소송전에 많은 기업들이 주목했다. 당시 페이스북, 스포티파이 등의 기업은 애플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를 지적하며 에픽게임즈와 연합했으며, 수수료 문제가 공론화 및 이슈화 되면서 법 제정 시도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후에도 에픽게임즈와 애플은 수년 동안 법정 공방을 벌였고 애플은 10개 쟁점 중 9개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았지만 법원은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앱 내 외부 결제 허용만큼은 에픽게임즈의 손을 들어줬다. 애플은 항소했지만 원심이 유지되는 판결이 나오면서 결국 외부 결제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에픽게임즈는 iOS 플랫폼에서 '포트나이트'를 서비스 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실상 승자 없는 싸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소송전의 의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구글, 애플의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강제적인 높은 수수료 부과, 인앱 결제 강제가 분명 타 기업과 이용자들에게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공론화 되었기 때문이다.
EU 디지털 시장법 전면 시행… 이어지는 빅테크 기업 규제
에픽게임즈와 애플의 소송전 이후, 점차 거대해지는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고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먼저 올해 3월 EU의 디지털 시장법이 전면 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시작됐다. EU는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큰 빅테크 기업들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규제한다는 내용의 초안을 2020년 12월 발표한 뒤 올해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외부 앱 설치나 타 앱 스토어의 설치를 금지해서는 안되며, 자사 서비스를 타사 서비스보다 우선 노출되도록 하는 행위 등도 위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애플 앱스토어와 같은 폐쇄적 생태계도 금지다. 다른 플랫폼이나 서비스의 진입을 허용하고 상호운용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디지털 시장법과 유사한 골자를 지닌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경쟁 촉진법'이 6월 중순 참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 법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용자로 하여금 다양한 서비스를 선택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공포일로부터 1년 6개월 이내 시행되며, 법 위반시 매출의 20%를 과징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기업의 앱 스토어 제공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검색 결과 표시 시 자사 서비스를 타사보다 우선 표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디지털 시장법과 마찬가지로 구글과 애플 등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 및 약화시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이에 맞춰 따라가는 추세다. 7월 2일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앱 마켓 사업자가 이용자 또는 콘텐츠 제공 사업자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앱 마켓 등 특정 앱 마켓을 통하지 않고 콘텐츠를 설치 및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다른 앱 마켓을 통해 설치한 앱의 구동을 제한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주 골자다.
조금씩 빗장 푸는 빅테크, 이상적인 공정 경쟁 체제 만들어질 수 있을까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콘텐츠 제공 사업자, 이용자들 모두에게서 큰 이익을 얻고 있는 구글, 애플을 주 타겟으로 한 규제는 수년 전부터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각국의 규제 법안이 속속 등장하고 조사도 이어지면서 빅테크 기업들은 내키지 않는 듯 매우 조금씩 빗장을 풀고 있는 모양새다.
디지털 시장법 등 유사한 법안이 각 국가별로 자리를 잡는다면 향후에도 빅테크 기업들의 독점적인 시장 점유 형태에 제재가 가해지고, 다수의 사업자들이 새로이 진입하거나 수수료를 낮추는 등 플랫폼 및 마켓 별 경쟁 체제가 만들어지는 이상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콘텐츠 제공 사업자 입장에서는 입점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지면 수수료와 피쳐드 등의 마케팅 구성에 따라 자유롭게 마켓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낮아진 수수료에 따라 이용자들도 마찬가지로 보다 저렴해진 인앱 결제 금액으로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예가 통신3사와 네이버가 합작해 만든 앱 마켓 '원스토어'다. 원스토어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30%보다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워 론칭, 국내 시장에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또 이 앱 마켓에 입점한 일부 게임들을 즐기는 이용자들은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할인 쿠폰이나 '페이백' 이벤트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강력한 규제 속 '꼼수' 우회는 우려… 이용자 확보라는 숙제도 존재
다만 반대로 단점도 부각될 수 있다. 너무 많은 앱 마켓 사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면 생태계 자체가 지나치게 파편화되어 접근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용자가 크게 분산될 수 있다.
앱 마켓과 같은 플랫폼이 가지는 힘의 대부분은 다수의 이용자와 앱 개발자에서 나오는 만큼 이용자 확보 자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데이터 집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부정확한 데이터가 난립하거나 애플의 주장처럼 보안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외에 직접적으로 규제에 영향을 받는 빅테크 기업들이 '꼼수'를 부리거나 우회로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남아있다. 실제로 애플의 경우 디지털 시장법을 준수하지 않고 우회하려고 하거나, 자사 제품 및 서비스 일부를 디지털 시장법이 시행 중인 EU에는 출시하지 않는 등 이용자들을 볼모로 잡는 등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또 애플은 '에픽게임즈스토어'가 애플 앱스토어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출시를 불허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EU가 반독점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예비 결론을 내리자 곧장 유럽에서의 제3자 앱 마켓 출시를 허용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은 에픽게임즈가 일부승소함에 따라 외부 결제를 허용하면서도, 개발사에 결제 건당 27%의 수수료를 부과해 사실상 큰 차이가 없도록 '꼼수'를 부렸다. 이에 에픽게임즈 팀 스위니 CEO는 반경쟁적인 수수료를 부과해 가격 경쟁을 무력화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구글은 '구글 갑질방지법' 등에 반발하여 게임 외 앱에도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인앱 결제 강제를 시도하거나, 외부 결제용 아웃링크를 제공하는 앱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삭제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는 등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잃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스페인 경쟁당국인 CNMC(Comisión nacional de los Mercados y la Competencia)는 애플이 앱 개발자들에게 불공정한 거래 조건을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앱스토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조사 결과의 발표는 최대 2년이 걸릴 전망이며, 만약 조사 결과가 사실로 드러나면 애플은 연간 매출의 10%에 달하는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23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에게 과징금 421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구글이 게임사로 하여금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원스토어의 동시 출시를 포기하도록 자사의 압도적인 지배력과 지위를 바탕으로 압박을 넣고 혜택을 제공한 것이 '갑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앱 마켓 후발주자인 원스토어는 점유율, 매출 등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효성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으나 디지털 시장법의 시행 후 억제 효과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법안과 규제를 통해 마켓 혹은 앱 마켓 사업자 간의 경쟁 구도와 공정한 시장 환경 만들어질 수 있을지, 또 이용자를 위한 실질적인 혜택이 피부로 와 닿을 수 있을지, 공정한 시장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그 이후 경쟁 구도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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