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단기 매출과 유입을 넘어, 게임 콜라보에도 정합성과 '로어프렌들리'가 필요하다

등록일 2025년08월27일 10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로어프렌들리(lore-friendly)’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게임 모드(Mod)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가운데 하나로, 게임의 세계관과 분위기 그리고 더 나아가 미학적 일관성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콘텐츠를 뜻한다.

 

예컨대 중세 판타지 RPG에서 역사적 고증 기반의 냉병기나 방어구를 추가하는 모드는 로어프렌들리를 잘 지켰다고 할 수 있지만, 같은 게임에 각종 총기나 빔 라이플, 광선검 따위의 무기를 추가하는 모드는 로어프렌들리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 구분은 단순한 장식의 문제를 넘어 세계관의 신뢰성과 몰입감이라는 핵심 가치와 직결된다.

 

수많은 게임 모드들을 공유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모드 커뮤니티 '넥서스 모드'
 

물론 게임 모드 영역에서의 로어프렌들리는 이용자들이 설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계관의 '톤앤매너'가 유지되길 원한다면 로어프렌들리 하지 않은 모드는 설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반대로 이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설치해서 즐기면 된다.

 

이러한 로어프렌들리라는 개념은 이제 비단 모드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게임업계에서 보편화된 콜라보레이션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외부 IP를 끌어오는 행위 역시 결국 '세계관 외부의 요소를 삽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협업이 '로어프렌들리' 한가, 즉 게임 고유의 세계관과 톤앤매너에 적절히 융화되는가는 콜라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총알 빗발치는 전장에 '메피스토'의 딸 '릴리트'? 무분별한 콜라보 남용
오늘날 콜라보레이션은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당연한 운영 및 수익 전략의 일부가 됐다. 모바일게임은 물론 콘솔 및 PC 게임들까지 앞다투어 외부 IP와의 제휴를 진행한다. '다음 콜라보는 무엇인가'가 하나의 마케팅 수단처럼 사용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콜라보가 이루어지면 실제로 '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점차 정합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남용도 이루어지고 있다.

 

'배틀필드 6'의 Shashank Uchil 디자인 디렉터는 최근 해외 미디어를 통해 '콜 오브 듀티'의 '니키 미나즈' 오퍼레이터 업데이트 사례를 들며 "스킨은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우리 게임에 '니키 미나즈'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군인들의 모습에 충실하며 현실성을 유지하고 진중한 분위기를 지켜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결국 (경쟁 게임에 대한 견제 의사도 있겠으나) 게임이 어느 정도는 지켜야 할 정합성이나 기조를 지키지 않고, 무분별하게 콜라보를 남발하는 게임들에 이용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개발자들 또한 잘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세계관의 정합성을 완벽히 무시한 콜라보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선사한 또 다른 사례는 '콜 오브 듀티'와 '디아블로 4' 콜라보를 들 수 있다. 총알과 폭탄이 빗발치는 밀리터리 슈팅 게임 '콜 오브 듀티'의 전장에서 악마 '릴리트'가 총을 들고 뛰어다니며 싸우는 모습은 그 괴리감 덕분에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콜라보는 '숫자'에 기여하지만 정체성을 잃는다
이처럼 최근 게임들의 콜라보는 장르와 맥락 그리고 이용자 경험과는 무관한 IP가 단순히 인지도가 높다는 이유로 성사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모바일게임과 웹툰 및 웹소설의 콜라보는 이제 너무나도 흔한 시대가 되었으며, 대형 게임들도 게임, 아티스트, 애니메이션, 영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콜라보를 남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게임이 유지하고 있던 세계관적 정합성이 흔들리고, 이용자가 그동안 경험해 왔던 몰입감이 손쉽게 무너질 위험이 있다. 본래라면 게임의 서사, 규칙성 속에서 유지되고 이어져야 할 플레이 경험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질적 콘텐츠 때문에 일종의 '광고적 소비'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로어프렌들리가 지켜지지 않은 콜라보라고 해도 단기적인 흥미 유발과 매출에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게임업계가 콜라보에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이용자들의 유입, 기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매출 발생 등이 그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실제로 콜라보가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콜라보에 매우 적극적인 일본 국민게임 '퍼즐앤드래곤'이 있다. 콜라보가 성사된 적이 없는 IP를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퍼즐앤드래곤'은 수많은 IP들이 참전한 게임으로, 사실상 콜라보가 게임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럼에도 '퍼즐앤드래곤'은 이례적으로 롱런하면서 여전히 순항 중이다.

 


 

하지만 '퍼즐앤드래곤'이 '이레귤러'일 뿐, 대다수의 게임이 선보이는 콜라보는 사실상 그 자체로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 일회성 매출 신장과 이용자 유입을 위해 이루어진다.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몇 가지 문제를 드러낸다.

 

우선 이용자들의 세계관의 몰입을 해친다. 게임은 하나의 자율적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며, 이용자는 그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질적이고 어울리지 않는 콜라보의 무분별한 남발은 이러한 몰입을 방해하며,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게임 세계’가 아닌 ‘일회성 매출을 위한 콘텐츠 업데이트’로 느껴지게 만든다.

 

또 정체성이 희석된다는 문제도 있다. IP가 쌓아온 고유한 톤과 무게감, 매력 포인트는 단순한 특징에 그치지 않으며, 오래 서비스 되고 인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롱런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외부 IP와의 무분별한 콜라보는 이러한 게임 고유의 정체성을 흐려지게 만드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단순 외부 노출을 넘어 콘텐츠 경험의 확장으로, 정합성 고려한 콜라보 사례
반대로 세계관적 정합성을 고려한 로어프렌들리 콜라보는 단순한 외부 노출과 매출 신장을 넘어 게임 이용자의 콘텐츠 경험의 확장으로 작동한다.

 

대표적인 좋은 예가 '스텔라 블레이드'와 '니어 오토마타' 콜라보다. 이미 '스텔라 블레이드'는 개발 단계부터 '니어 오토마타'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고, 콜라보 또한 김형태 대표의 지속적인 러브콜이 있었기에 성사된 사례다. 세계관, 비주얼, 분위기 등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콘텐츠 경험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로어프렌들리를 아주 잘 지킨 콜라보라고 할 수 있다.

 


 

'블루 아카이브'와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 T' 콜라보도 좋은 사례로 소개할 수 있다. 첫 콜라보였던 '하츠네 미쿠'는 서브컬처 문화를 대표하는 IP에 대한 리스펙트가 기반이 되었다면,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 T'는 (팬들은 해당 콜라보에 김용하 본부장의 팬심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학원 도시'라는 두 IP 간 공통된 핵심 설정을 적극 고려한 콜라보라고 할 수 있다. 이질감이 적고 게임과 잘 어우러진, 세계관적 정합성이 잘 들어맞는 콜라보 사례다.

 



 

이렇게 세계관적 정합성을 고려하고 지킨다면 두 가지 효과를 가진다. 우선 이용자는 해당 콜라보를 '게임 세계 안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며 게임에 대한 몰입을 이어갈 수 있다. 또 외부 IP 역시 단순 홍보가 아닌 서사의 일부로 기능하기에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의 브랜드 가치와 관심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일부 해외 개발사들은 '로어프렌들리 콜라보 전략을 핵심 원칙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헬다이버즈 2'의 개발사 애로우헤드 스튜디오는 콜라보 IP를 선정할 때 '헬다이버즈'와 1대1 매치에 가까운 정합성을 기준으로 삼으며, 이러한 협업이 곧 정식 설정으로 편입된다는 점도 강조한 바 있다. 또 이용자들의 몰입이 깨지고 IP가 희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기조도 갖고 있다. 애로우헤드 스튜디오는 최근 이 기준에 맞춘 '헤일로 ODST' 콜라보를 발표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 모드의 로어프렌들리 여부가 결국 이용자가 선택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콜라보레이션 역시 이용자가 선택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모드와 콜라보 업데이트의 구조적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모드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과 통제권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변주이지만, 콜라보레이션은 게임 전체 환경에 사실상 강제로 삽입되는 요소다. 스토리, 캐릭터, 미니 게임 등 이용자가 회피하기 어려운 여러 방식으로 게임에 포함된다. 심지어 현실적인 문제와 형평성을 이유로 모바일게임의 콜라보 캐릭터들은 성능이 다소 부족하게 설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반대로 극도로 높은 성능을 지녀 필수로 여겨지는 사례도 있다.

 

따라서 단순히 콜라보 콘텐츠를 즐기지 않는다거나 캐릭터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선택만으로는 세계관적 위화감과 정합성의 무시를 피할 수 없다. 결국 어울리지 않는 IP와의 마구잡이식 콜라보는 회피 불가능한 경험의 침식으로 작동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콜라보의 로어프렌들리 여부가 단순 취향 문제가 아니라 서비스 품질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세계관적 정합성, 장르적 통일성을 갖춰 콜라보를 해도 완성도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콜라보도 '로어프렌들리' 해야 한다
이제 게임업계가 고민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콜라보레이션은 여전히 강력하고 유효한 실질적 마케팅 수단이지만, 무분별한 콜라보는 지양하고 최소한의 로어프렌들리 검증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게임 세계관과 조화를 이루는지, 톤앤매너에 충실한지, 이용자 경험을 해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신중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IP 장기 생명력을 보장하는 전략적 선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유명하니까", "돈이 되니까"가 아니라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 설득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의 기호 차원을 넘어 게임을 콘텐츠 산업으로 바라본다면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단순히 게임 IP간 콜라보나 타 산업과의 콜라보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다. 최소한 게임 이용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또 사업적 결정에 앞서 어느 정도의 로어프렌들리를 고려한 필터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콜라보는 또 하나의 광고 내지는 일회성으로 업데이트 되는 콘텐츠로 휘발되지만, 정합성 있는 협업은 '새로운 경험'으로 오래 회자되며 환영 받을 수 있다. 결국 업계가 단기적 수치에 집착하지 않고, 몰입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콜라보는 단순한 일회성 판촉 행사가 아니다. 게임을 하나의 세계로 존중한다면 그 세계에 걸맞은 콘텐츠를 녹여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콜라보도 '로어프렌들리'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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