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와 국내 e스포츠 업계의 스타크래프트를 둘러 싼 소유권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자신들의 상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주장하는 개발사와 10여년이 넘게 사용해 왔으니 공공재에 해당한다는 업계의 주장이 맞물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양측의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결국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관련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는 국내 대표적 두 개의 게임전문 케이블방송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조만간 한국 e스포츠협회에도 소송을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타크래프트가 공공재에 해당한다는 e스포츠계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스타크래프트가 '공공재'라는 주장은 업계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 아마도 '국어'를 잘 모르는 e스포츠계 일부 인사들의 잘못된 발언일 것이라 여기고 싶다.
설마 다수의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는 국내 거대 케이블 방송사들과 굴지의 대기업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e스포츠협회(KeSPA)가 '공공재'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믿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엄연한 저작권을 지닌 다른 사람의 물건을 10년 동안 사용한다고 '공공재'가 될리는 만무하다. 실제로 또 스타크래프트라는 물건이 '공공재'가 될만큼 사회 모든 구성원의 삶에 기여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급되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물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e스포츠업계를 대변하고 있는 KeSPA가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에 관한 저작권을 인정하고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밝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게 된 것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e스포츠업계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e스포츠업계는 지난 10년간 스타크래프트라는 재화를 소재로 다양한 2차 콘텐츠를 발굴하며, e스포츠라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고 전 세계에 자랑할만큼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프로게이머를 비롯해, 게임방송사, 협회, 프로게임단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인력들이 e스포츠산업에 종사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지재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날아갈 수도 있는,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남의 물건을 무단으로 사용해 왔지만 자신들의 생존권이 걸려 있으니 어찌 쉽게 잘못을 인정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과연 이렇게 심각하게 문제가 불거질 때 까지 10년간 e스포츠업계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사실, 지금의 e스포츠는 e스포츠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스타크래프트 한 종목에 편중되어 있는것이 사실이다. 물론, 스타크래프트가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해도 e스포츠업계가 다른 종목 발굴은 등한시 한 채 그 높은 인기에 영합해서 쉽게 가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 하루 방송시간의 80%가 스타크래프트 방송인 게임방송사
우선 블리자드가 소송을 제기한 국내 양대 게임방송사를 살펴보자.
12월 3일(금) 현재, 국내 대표적인 게임방송사인 온게임넷의 편성표를 살펴보면 이날 하루 방송되는 총 15개의 프로그램 중 스타크래프트 관련 프로그램은 모두 10개로 전체 방송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5개 프로그램 마저도 2개의 프로그램은 스타크래프트 소식이 간간이 들리니 스타크래프트와 전혀 관계 없는 방송은 단 3개인 셈이다.
방송 시간을 살펴보면 더욱 놀랍다. 이날 온게임넷의 전체 방송시간은 오전 5시부터 익일 새벽 3시까지 22시간. 이 22시간 중 스타크래프트 프로그램이 방송되지 않는 5개 프로그램의 전체 방송시간은 단 4시간 30분 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방송시간의 80%를 스타크래프트에 할애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다른 게임방송사인 MBC게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스타크래프트 단 하나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은 5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스타크래프트 외에는 다른 콘텐츠를 제작할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의지가 없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KeSPA는 더욱 문제다. KeSPA는 자신의 콘텐츠도 아닌 남의 컨텐츠로 지난 10년간 마치 자기것인양 방송사나 게임단에 권리를 양도하고 이익을 챙겨왔다.
더군다나 KeSPA는 다른 e스포츠 종목 발굴보다는 스타크래프트 리그 활성화를 위해 구단 수 늘리기에만 급급했다는 비난도 듣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12개 프로게임단이 존재하고 있으나 이 10개 구단 중에 스타크래프트 외에 던파나 스페셜포스와 같은 국내 다른 종목 선수들을 운영하는 구단은 단 6개에 불과하다. KeSPA가 그런 비난을 들을 수 밖에 없는 모양새다.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는 기업도 이런 비난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e스포츠단을 갖고 있는 국내 모 게임사의 경우만 봐도 마찬가지다.
국내 굴지의 이 게임개발사는 자사의 e스포츠구단을 창단하면서 선수들의 대부분을 자사의 게임이 아닌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 등 블리자드의 게임 선수들로 구성했다. 물론, 기존의 게임단을 인수하는 형식이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 회사 구단의 대표적 게이머들은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이다.
비교하자면, 국내의 현대자동차가 자사의 레이싱팀을 만들고 몇 년간 자사의 소나타나 그랜저 대신 BMW로 경기를 한 셈이다.
게임업계 발전은 상관없이 자사의 이익만을 위해 게임단을 창단한 SKT나 KT 같은 비게임 관련 기업이야 그렇다고 해도 자사의 게임을 갖고 있는 게임기업마저 이런 상황이라는 사실은 정말 당황스럽다.
대체 지난 10년간 게임방송국을 포함해 e스포츠 업계가 비상식적으로 높은 스타크래프트 의존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 10년간 돈벌이와 시장 확대에만 급급해 자생 노력은 외면한 채 남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하며 이익을 챙겨놓고 이제와서 '스타크래프트는 공공재'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KeSPA에 대해 많은 네티즌들이 비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e스포츠가 무너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게임산업이다. 어찌됐든 전체 게임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프로게이머든 방송관계자든 구단 관계자든 게임과 함께 생활하고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셈이다.
그래서 e스포츠업계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못된 내용은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 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협상에 나서야 한다. 시간만 보내면서 자기 주장만 우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