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게임개발자의 고민 "꿈도 희망도 없다"

등록일 2014년03월12일 18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얼마 전 만난 한 개발자의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그녀는 2000년대 초반, 같이 게임을 즐기며 우연히 알게 된 개발자로 이제는 개발경력이 10여년이 넘는 어엿한 중견 개발자가 됐다. 처음 만났을 때 개발이라는 일을 왜 선택했느냐는 물음에 "회사 생활은 싫고 그렇다고 몸은 굴리기 귀찮아서 머리만 쓰면 될 것 같아 자기에게 적격이 아닌가 싶었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어제 일 마냥 생생하다.

업계에서도 나름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밀리거나 정체되지 않고 성공한 게임 프로젝트에도 다수 참여해 조금씩 착실히 진급해 이제는 개발에 집중하기 보다는 팀원을 독려하는 관리직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개발에 손을 뗀 것은 아니다.

모 회사에서 임원제의가 들어왔을 때 “돈 계산, 회사 전체를 볼 능력은 나에게 없고 귀찮기도 하다”며 단칼에 거절한 그녀의 모습을 볼 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뚝심’이 새삼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아직까지 결혼할 짝을 찾지 못하고 외로움에 떠는 모습을 보면 이것이 바로 개발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개발자들의 숙명인가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많은 개발사를 전전하고 크고 작은 게임을 개발하며 자신이 만든 게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근두근하고 가슴 설레는 일이라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그녀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자신이 개발한, 얼마 후 출시를 앞두고 있는 게임 때문이다.

“왜?”라고 물어보면서도 이미 그 내용을 짐작할 만한 익숙한 고민이다. 열이면 열, 모든 개발자들이 게임을 개발하며 수도 없이 고민하는 게임출시에 대한 걱정이다.

콘솔이 아닌 이상에야 완성된 게임을 시장에 선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개발사 역시 완성된 게임이 아닌 ‘완성되어야 할’ 게임을 선보이고 있으며 개발자가 꿈꾸는 게임의 최종 단계가 유저들의 기대심리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 소위 말하는 ‘대박’ 게임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완성되어야 할’ 게임의 기준이 제각기 다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출시 일정을 놓고 개발자와 관리자, 관리자와 임원들 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이들 간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회사의 규모나 업계의 위치에 따라 관계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 보다 더욱 허무하게 뒤바뀐다.

그녀가 만드는 게임 역시 준비가 된 게임이 아니었다. 그녀가 속한 개발팀 역시 완성된 게임을 선보이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딘가 부족해 지적당하고 싶은 게임은 만들기 싫어했다.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개발자의 애착이자 자존심인 것이다.

나름 업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어본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게임은 뼈대도 갖추지 못한 채 출시의 위기를 맞고 있다. 가장 기뻐해야 될 게임 출시의 순간이 누군가에게 비난 받지 않을까 두려움에 떠는 절망의 순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되지 못한 퍼즐의 한 조각 때문에 유저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빛을 보지 못한 게임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이런 게임들이 시장에서 버림받고 개발자들에게 부족한 게임성으로 인한 흥행 실패에 대한 책임이 지워질 때 마다 그들은 술집에서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거나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자괴감 속에 빠져 지낸다.

물론 게임에 대한 애착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세계에서도 낙하산으로 자리만 차지하거나 과거의 영광에 취해 앞을 보지 못하거나 자신이 가는 길이 게임 산업의 미래라는 착각에 빠진 개발자들이 존재한다. 경영진이 무조건 개발자들의 말을 신뢰하고 따를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물론, 투자자들과의 관계나 자금의 유동성, 다양한 외부 환경 요인 등 회사를 관리해야될 경영진들의 고민 또한 개발자들 못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임의 대가는 개발자들이 더 혹독하게 치른다. 대부분의 경우 팀 단위로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거나 해체가 되는데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것도 사실상 쉽지 않으며, 팀 해체는 곧 퇴사를 의미한다.

그녀 역시 곧 출시될 게임의 성적에 따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옮길 수도 있고 혹은 프리랜서도 전환할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술자리에서 나눈 그녀와의 대화 일부를 옮겨 실으며 이만 글을 줄일까한다.

"글로벌이다 뭐다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서 우리의 의견도 무시하고 우리도 모르는 해외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자료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고 출시할 그릇도 안되는 게임을 갖고 통계만 한번 쓱 읽고는 가능성 있다고 판단해 한번 해볼까 하는 모험심에서 하는 행동들이 우리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결국 책임은 누가 지는데? 왜 그들은 계약서에 서명하기 위해 든 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지 모르겠네. 이 바닥 나름 오래 해왔는데 이제는 내가 사장이 되면 모를까 이젠 꿈도 희망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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